<다모>의 처연한 칼바람이 휩쓸고 간 자리에 또 다른 칼바람이 불고 있다. 말 달리는 벌판 대신 도마 위에서 불어오는 칼바람의 진원지는 조선조 중종 때의 대전 수라간. 신분과 성의 멍에를 뛰어넘어 의녀로 대성한 실존 인물 서장금의 일대기를 그린 MBC 50부작 드라마 <대장금>(연출 이병훈, 극본 김영현)은 일사천리로 대중의 입맛을 휘어잡았다. 달포 전만 해도 신비한 악기인지 희귀한 비단인지 알쏭달쏭했던 ‘대장금’이라는 이름은 금세 ‘장금이’로 친숙하게 회자되고 있으며, 10월14일 방영된 10회분 시청률은 38.4%(AC닐슨 집계)에 이르러 애초 경쟁구도가 부각됐던 다른 방송사의 궁중사극을 멀찌감치 앞서나갔다.
TV사극의 진화를 운위하게 만든 일련의 드라마 가운데, 지극한 순애보와 함축적 대사, 감각적인 액션과 비주얼로 젊은 시청자를 사로잡은 <대망>과 <다모>를 한 갈래로 묶을 수 있다면, <대장금>은 같은 연출자의 작품인 <허준> <상도>의 계보를 잇는다. <대장금>은 <대망>과 <다모>가 탁월함을 과시했던 인물과 심리의 곡진한 묘사보다 흥미진진한 상황을 연달아 꿰어나가는 플롯의 추진력에 승부를 건다. 주무대는 주방이요, 주요 액션은 식재료를 다듬는 일인 터라 화면도 다분히 정적이다. 덧없는 청춘의 피가 부르는 절절함과 비장미 넘치는 낭인의 정서가 <다모>의 것이라면, <대장금>은 어찌됐든 열심을 놓지 않고 마음 붙일 곳을 찾아 종종거리며 사는 분주한 생의 눈부심을 한 여성의 입지전을 빌려 말한다. 많은 전통 궁중사극이 그랬듯 <용의 눈물> <여인천하>가 ‘살아남아야 한다’를 지상명제로 삼는 서바이벌 게임이었다면, <대장금>에서도 생존은 몹시 중요하다. 산중에서 비명에 죽어가며 장금의 어머니는 딸에게 묻는다. “넌 이제 어찌할 것이냐? 굶어 죽을 것이냐? 병들어 죽을 것이냐?” 어린 딸이 산딸기를 따먹고 약초를 캐먹고 살아남겠노라 약조한 뒤에야 박 나인은 숨을 거둔다. 박 나인의 동무 한 상궁은 “죽느니 관비로라도 살아야 하지 않겠느냐”면서 목숨이 위태로워진 친구를 의금부에 고발한다. 그러나 <대장금>의 인물들은 망가지지 않은 채 자존을 안고 살아남으려 한다는 점에서 궁중 암투에 휘말린 여인들과 조금 다르다. “자기를 포기하지 않고 지키면서 살아남는 방식을 시도한다”고 김영현 작가는 자신이 창조한 인물들에게 부여한 소임을 설명한다. 작가의 자평대로 따분하게 말하면 건전하고, 좋게 말하면 진취적인 드라마 <대장금>의 재미를 추려본다.
재미 하나. 귀여운 여인
<대장금>은 16세기판 천재명랑소녀 성공기다. 이 활극의 영웅인 장금을 무엇보다 빛나게 하는 성격은 세상을 온전히 이해하고자 하는 겁없이 줄기찬 호기심이다. “제가 보는 하늘을 요런 모양으로 쓰는 것이 저는 참으로 신기하옵니다”라며 하늘 천자를 흙바닥에 쓰는 장금에게 자연을 이해하려는 열의와 책에 대한 집착은 같은 욕망이다. 호기심으로 말미암아 성장을 멈추지 않는 장금은 어른이 된 뒤에도 지켜보기 심심치 않다. 물동이를 드는 벌이 힘겨워 눈물을 쏟다가 타박을 듣자 “물동이 들고 있으랬지 울지 말란 말씀은 없었다”고 되받아치는 맹랑함도 기가 차다. 희망없이도 살아갈 방도를 생각하는 초연함보다 악착같이 희망을 구하는 인생관을 선호하는 <대장금>의 태도를 함축하는 장금의 성격은, 친구를 돕다가 다재헌(약초 재배하는 궁궐 채마밭)으로 쫓겨난 에피소드에서 잘 드러난다. 장금에게 최악의 고문은 목표를 뺏기는 것이다. 그녀에게 목표는 그 자체로 숭엄한 것이라기보다 삶을 지속하기 위한 도구다. 궁내 낙오자들이 모여 있는 다재헌의 책임자 정주부는 “마치 이곳에 희망이라도 있는 양 종종거리고 다니지 마라”고 명하나, 장금은 “풀 한 포기에라도 희망을 걸지 않으면 저는 지금 정신을 놓게 됩니다”라고 고집을 피운다. 흙덩이라도 들쑤셔 뭔가를 얻어내려는 장금의 의욕은 철없는 것이지만, 체념과 절망에 익숙한 사람까지 흔들어놓는다.
재미 둘. 주객전도
<대장금>은 궁중사극이면서 서민의 사극이다. <대장금>의 주인공은 보통 궁중사극에서 가구나 비품처럼 전각 귀퉁이에나 붙어 서 있던 상궁 나인, 내의원, 금군 병사들이다. 처음 입궁한 어린 생각시들이 왕의 행차에 연예인 보듯 탄성을 지르는 장면은 상징적이다. 여기서 궁궐은 왕족의 처소가 아니라 다양한 직분을 가진 사람들의 직장이다. 10회까지 왕족은 음식맛을 볼 때에나 얼굴을 내밀고, 많은 사극이 힘주어 그렸던 폐비 윤씨의 사사는 한 내금위 군관의 삶을 뒤흔든 기억으로 스쳐간다. “원자를 불러오라”는 폐비의 오열보다 “어찌하여 그런 영이 내게…”라는 군관의 번민이 마음을 친다. 덕분에 궁중사극 하면 곧장 떠올랐던 왕과 비를 중심에 붙박은 숨막히는 화면구도가 깨졌고, 극 전개에 유효한 한마디가 나오기까지 상투적 대사가 예닐곱번 오가던 기다림이 덜어졌다. 앉아서 논쟁하는 사람들 대신 노동하는 자들이 주연이 되니 참신한 캐릭터와 에피소드가 등장하는 것은 당연지사다.
재미 셋. 여자의 드라마
큰 인물을 뜻하는 ‘대’(大)자를 여성의 이름에 붙인 <대장금>은 제목부터 동시간대 SBS 사극 <왕의 여자>와 상극이다. 그러나 ‘크게 출세한 비범한 여성의 일대기’라는 점이 <대장금>을 여성극으로 보고 싶은 이유의 전부는 아니다. <대장금> 1, 2부는 장금의 아버지 서천수가 고명한 도사에게 들은 예언의 실현과정이다. 서천수에게 죽인 여인, 그가 살린 여인, 그를 죽게 할 여인이 차례로 등장하는 설정은 초반 흥미를 돋우는 장치이지만 <대장금>에서 운명의 실을 잣는 것은 여자라는 사실도 예고한다. 초반의 주요 무대인 궁녀들의 세계는 남자들의 개입없이도 극적인 사건이 풍부한 프로페셔널의 일터다. 그들은 글자 그대로 ‘왕의 여자’이지만, 때로 그것은 명분을 가장한 울타리로 보인다. ‘군림하나 지배하지는 않는 남편’격인 임금의 여인이라는 핑계로 사가 여자들이 짊어져야 할 짐을 벗고 전문적 기량을 닦고 일하며 녹봉을 받는 처지. “다른 여인들처럼 제 몸이나 찌르라고 주는 것이 아니다”라며 아버지가 장금에게 건넨 장도처럼, 명분 뒤에 주체적 목적을 따로 숨긴 존재로 비치는 것이다. 한편 여자들끼리의 동료애와 우정은 남녀간의 정을 압도한다. 궁녀들은 “임금을 배신하는 것만큼 동무의 의를 저버리는 것은 큰 죄다”라는 계율을 익힌다. 한 상궁과 박 나인의 재회는 박 나인이 가는 길에 미리 징검돌을 놓는 서천수의 배려보다 뜨거운 호응을 샀다. “민정호가 등장했지만 아직 남자가 장금이의 관심 뒷전이라 은근히 통쾌하더라”는 한 30대 여성 시청자의 반응은 서로 경쟁하고 아껴주는 옛 여성들의 드라마가 발휘한 신선한 매력을 짐작게 한다.
재미 넷. 먹고 마시는 일의 중함
어린 딸이 씹어주는 열매를 입에 넣고 운명한 장금 어머니의 마지막 말은 “맛있구나”였다. 음식 구경거리는 <대장금>이 누린 초반 인기에 큰 몫을 했다. 계삼웅장이니 맥적이니 하는 궁중요리 스펙터클은 드라마의 보기 좋은 고명이다. 하지만 <대장금>의 각본이 긴 호흡으로 알게 모르게 강조하는 것은 미식 취미가 아니라 널리 이로운 음식이다. 독약을 마신 두 여자의 이야기로 출발한 <대장금>은 먹고 마시는 일을 죽고 사는 일의 근본으로 바라본다. 장금은 왕의 수라가 백성의 음식을 이끄는 밥상이라고 공공연히 말한다. 귀하고 비싼 밀가루를 잃어버리고 육수에 맞는 값비싼 부위의 고기를 뺏긴 어선경연의 난국을 그녀는 백성의 빈궁한 살림이 빚어낸 궁여지책의 지혜로 돌파한다. 어선경연의 시제가 제갈량이 저 살자고 인명을 해할 수 없어 만든 음식인 만두였던 것도 허투루 보이지 않는다. 무엇보다 “살아남아야 한다”는 사극 특유의 지상명제 못지않게 “살려야 한다”는 명제가 중한 사극이라는 점에서 <대장금>은 <허준>이 발휘한 대중적 호소력을 이어받을 법하다.
50부작 <대장금>은 앞으로 다섯달을 내처 달려간다. 반정공신 오겸호에게 돈과 무사를 대며 정치적 비호를 약속받은 최 상궁 가문의 움직임은 극성스러워지고 장금은 의녀로 제2의 생에 진입할 것이다. 요리 명인의 자긍심을 버리느니 차라리 후궁이 되기로 결심한 금영과 하룻밤 승은을 입고 고독하게 사는 연생의 이야기는 또 다른 궁중 여인의 역사를 그릴 예정이다. 장금이 적들을 감복시키며 한 계단씩 전진하리라는 것은 만백성이 알고 있는 예정된 이치. 정작 구경꾼을 마음 졸이게 하는 구경거리는 장금이가 매주 곤경을 어떻게 극복할 것이냐가 아니라 <대장금>이 ‘장애물 경주’식 구성의 숨가쁜 리듬에 치이지 않고 초심을 잊지 않는 사극, 발칙한 말을 다소곳하게 하는 드라마로 꾸준히 호흡을 고를 수 있을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