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병훈 프로듀서는 퇴직한 뒤에도 MBC에 책상과 컴퓨터가 그대로 놓여 있을 만큼 거물로 인정받는 인물이다. 83년부터 90년까지, 그가 직접 연출한 <조선왕조 오백년>의 에피소드만 해도 400편을 훌쩍 넘길 정도. 사극의 장인이라고 할 만하지만, 그는 90년대 접어들면서 현대적인 인물을 도입한 <허준> <상도>로 사극의 또 다른 경지를 개척했다. 97년에 쓴 논문에서 이미 2000년대 사극의 경향을 정확하게 예측한 이병훈 PD를 숨가쁜 <대장금> 촬영현장에서 만났다.
-장금은 조선왕조 실록에 아주 짧게 언급될 뿐이다. 어떻게 이런 인물을 발굴했는가.
=<허준>을 연출하면서 의녀에 관한 기록을 뒤졌다. 그중에서 1995년 중앙대 교육학과 박사논문이 장금에 관한 언급을 싣고 있었다. 중종이 “내 병은 여의(女醫)가 안다”라고 말한 거였는데, 이거 보통 일이 아니구나 싶었다. 의녀는 천민이었고, 의관을 보좌하는 역할이었다. 그런 의녀가 임금의 주치의가 됐던 것이다. 그렇게 믿을 정도라면 단순히 의녀로서가 아니라 여자로서도 중종에게 의미가 있었을 거라고 생각했고, 지금의 스토리를 만들기에 이르렀다. 작가와 의논하면서 넉달 동안 스토리를 구축했다.
-<허준> <상도> <대장금>은 모두 현대물로 옮겨도 무리가 없을 만한 캐릭터와 이야기를 가지고 있다. 굳이 사극으로 만들 이유가 있었는가.
=의도한 건 아니었다. 예전부터 사극을 주로 맡게 됐고, 그러다보니 사극 전문이 되는 것도 괜찮겠다는 생각이 들었을 뿐이다. <조선왕조 오백년>을 하던 무렵과는 스타일이 많이 달라지긴 했다. 80년대에는 독재 때문에 현대극 소재가 너무 제한돼 있었다. 정극만 해도 시청자를 확보할 수 있었는데, 90년대 들어 사회가 민주화되면서 사극도 픽션을 도입해야 할 필요가 생겼다. 또 정극은 인간적인 애환을 담는 데 어려움이 많기도 했다. 그래서 역사에 기록되지 않은 부분을 드라마로 만들기 시작한 거다. 내 드라마는 매회 사건이 넘치는데, 그렇게 스피디한 전개가 있어야만 하는 시대가 됐다. <대장금>을 예로 들자면, 실록에 장금이 보양식에 능했다는 문장이 있다. 보양식에 능했다면 다른 요리도 잘했겠구나, 이런 발상에서 장금이 원래 수라간 나인이었다는 설정이 나오는 식이다.
-경쟁 방송사 사극들과 달리 중인과 상민, 천민이 중심이 된다. 몇년 전에 쓴 석사 논문에서도 사극의 중심이 피지배계급으로 옮겨갈 거라고 예측한 적이 있다.
=궁중사극은 장소와 행동의 제약이 너무 심하다. 후궁을 주인공으로 삼는다면 죽었다 깨어나도 궁중 밖으로 나갈 수가 없는 거다. 하지만 어떤 사극이든 왕과 왕비가 나오지 않는 경우는 없다. 시청자들은 지배계급의 이야기를 좋아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앞으로는 궁중사극과 서민사극이 반반 정도로 균형을 이루지 않을까.
-주연인 이영애가 며칠 동안 하루 두 시간밖에 자지 못했다고 한다. 이대로 50부작까지 끌고 나간다면 너무 힘들 것 같다.
=아직은 드라마 초반이라 그렇다. 시청자들에게 드라마가 친숙해질 여지를 주어야 하니까. 연생이와 영노가 방문제를 두고 다투는 에피소드는 아역 시절이라면 엄두도 내지 못했을 텐데, 이젠 장금에게 부담을 덜 주어도 될 것 같다. 지금까지 장금의 비중이 70% 정도였다면, 앞으로는 50% 정도로 줄어들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