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1]
아시아 영화 네트워크, 불꽃놀이를 시작하다 [1]
2004-01-02
글 : 이성욱 (<팝툰> 편집장)
성장하며 엮여가는 아시아와 한국영화에 대한 문화적, 산업적 고찰

도약은 부지불식간에 이뤄지고는 한다. 도처에서 조짐을 드러내는 아시아와 한국영화 사이의 질적 변화가 이런 사례가 아닐까. 좀더 솔직해진다면, 궁금증은 2003년 11월8일 예술의전당에서 시작됐다. ‘아시아스크린컬처 연구회’ 주관으로 열린 심포지엄의 주제는 ‘아시안 스크린 컬처 모빌 장르’였다. 국내외 학자들이 발표한 글들은 이런 것이었다. ‘아시아의 스타덤에 대한 몇 가지 질문’, ‘트랜스 아시아 미디어 연구를 위해서’, ‘모바일 혹은 유예된 내셔널 시네마: 국가/무국적/초국적’…. 왜 하필 아시아를 단위로 이런 일들이 벌어지는지 궁금해하자마자 그 의미를 애써 생각해보지 않았던 ‘사실’들이 밀려왔다. 왜 박광수 감독은 부산을 아시아 영화산업의 허브로 만들려고 하는지, 국내 최대의 매니지먼트 회사로 성장한 싸이더스HQ의 대표는 왜 밤낮 해외로 나돌아다니며 초국적 영화제작에 몰두하는지, <장화, 홍련>과 <스캔들-조선남녀상열지사>를 연속으로 흥행시킨 영화사 봄의 대표는 왜 “그래도 안심이 안 된다”며 틈만 나면 아시아 외유를 나가 <쓰리>의 후속 시리즈 제작에 힘을 쏟는지…. 그래서 2004년 신년호의 특집 주제를 ‘아시아 네트워크’로 잡았다. 한국 영화인들이 아시아를 무대로 벌이고 있는 것들이 무엇인지, 이를 문화적으로 어떻게 해독해야 하는지 살펴보는 작업이다.

지난 2003년 12월17일 오후 청와대 영빈관. <박하사탕>으로 감독 데뷔해 <오아시스>로 절정을 이루고 ‘휴지기’에 들어간 이창동 문화관광부 장관의 목소리가 또랑또랑하게 울려퍼졌다. “21세기는 문화산업에서 각국의 승패가 결정될 것이고 최후 승부처가 바로 문화산업입니다.” 이 장관은 피터 드러커의 말을 되뇌였다. ‘최후 승부처가 문화산업이다’라고 적힌 커다란 표어 아래 노무현 대통령, 경제5단체 대표와 경제부처 차관들, 문화·예술계의 주요 인사들과 각 지역 단체장들이 포진했다. “문화산업의 세계 시장규모는 약 1조4천억달러에 이르며 연 평균성장률은 전체 경제성장률 3.2%보다 훨씬 높은 5.2%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미국에서도 문화산업은 핵심산업으로 발전해 전체 수출액 중 1위를 차지하며, 마이크로소프트와 소니 등 세계적 기업이 문화산업 중심으로 전환하고 있습니다.” 이 장관은 영화, 게임, 방송, 음악 등에 걸친 문화산업의 비전과 육성방향을 차근차근 보고했고, 차승재 싸이더스 대표가 <살인의 추억>의 성공이 국내외에 일으킨 파급효과를 설명했다. “정치쪽도 이랬으면 좋겠다”며 흐뭇한 미소로 말문을 연 노 대통령은 “앞으로 5년 이내에 세계 5대 문화강국을 실현하겠다”고 다짐했다.

적어도 영화부문은 순조로운 항해를 시작했다. 소프트웨어와 하드웨어 양쪽에서 한국영화는 ‘한국’이라는 국경을 넘어 아시아를 겨냥한 야심찬 작업에 돌입했다. ‘전지현 브랜드’를 내세워 해외의 컴플리션 본드(완성보증보험)를 국내 최초로 영화제작에 끌어들인 초국적 영화 <내 여자친구를 소개합니다>(감독 곽재용)가 전자의 대표적 사례라면, 2004년부터 2006년까지 최소 1천억원의 국고를 들여 부산을 동북아 허브를 지향하는 영상산업클러스터로 키우려는 ‘씨네-포트 부산’ 프로젝트가 후자의 상징적 사업이다.

수면 위, 아래로 왕성하게 움직이고 있는 ‘트랜스 내셔널’한 한국 영화계의 움직임을 살펴보기 전에 아주 식상한 질문부터 던지지 않을 수 없다. 영화는 산업이기도 하지만 문화가 아니냐는. 그러니까 한국영화로 한국이 돈도 벌고 국위선양을 하기만 하면, 물론 이건 좋은 일이겠지만, 그걸로 끝이냐는 것이다. 예컨대 도쿄대를 나와 미국 코넬대 아시아연구과 교수로 재직하며 다언어잡지 <흔적>의 책임편집을 맡고 있는 사카이 나오키는 이런 이야기를 한다. “제가 <박하사탕>에 충격을 받은 것은 동포를 죽이도록 강제한 국민주의가 그려져 있기 때문입니다. 더욱이 이 영화에는 광주항쟁을 출발점으로 이야기를 전개하며 내전이라는 요소를 가미했습니다. 동아시아에 만들어진 미국의 군사체제는 교묘한 용병체제이지만, 이러한 체제가 어떻게 한국의 개인을 내부에서부터 썩게 했는지를 제시했습니다.”(<국민주의의 포이에시스>, 창비 펴냄) 사카이 나오키는 일본인이지만 ‘일본의 지식인’이길 절대적으로 거부한다. 이건 국민주의(내셔널리즘)가 국민국가 속의 소수자에 대한 다수자의 폭력을 정당화하고, 나아가 현재의 미국이나 과거의 일본처럼 제국주의의 원동력으로 기능하는 이중성을 다루는 그의 연구 태도에서 비롯한다. 질문을 다시 던지자. 한국이란 국적을 가지고 그 국적을 넘어서는 ‘트랜스 내셔널’한 영화를 만들려는 의욕적인 움직임들을 우리는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 한국이란 ‘타자’를 이해하고 연구하는 데 <박하사탕>을 하나의 텍스트로 삼는 사카이 나오키가 힌트를 준다면, 김소영의 ‘동방불패: 아시아영화를 상상함’이란 글은 분명한 시각을 제공해준다. 그곳에 이르기 전에 ‘아시아 네트워크’를 구축하려는 한국 영화인들의 이모저모부터 들여다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