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류는 없다. 할리우드와 홍콩에 배우라
콜럼비아와 작품 계약을 맺은 영화사 봄의 오정완 대표는 “할리우드 메이저들의 전략은 그 나라의 영화제작 활성화가 미진할 때 미리 치고들어갔다가 점차 시장을 다 먹는 것”이라고 했다. 콜럼비아의 중국 전략이 딱 그렇다. 콜럼비아는 10년 전 베이징에 지사를 설립하고 홍콩과 양 날개 전술을 펼치며 가장 좋은 입지를 선점한 것으로 보인다. 세계무역기구(WTO)에 가입한 중국이 2005년 시장을 전면개방하는 날이 디데이다. 장이모의 <집으로 가는 길>이나 리안의 <와호장룡>은 세계가 인정하는 중국 감독을 기용한 경우이지만 ‘중국 내수용’ 감독을 키우는 공격적 움직임도 보인다. 북방식 베이징 유머를 구사하는 펑샤오강 감독을 선택해 도널드 서덜런드를 출연시킨 <대가의 장례식>이나 허핑 감독에게 <천지영웅>을 만들게 한 경우가 그렇다. <영웅>을 만든 미라맥스도 베이징에 지사를 만들었고, 워너브러더스는 상하이에 ‘파라다이스 워너 시네마 시티’라는 멀티플렉스를 시작으로 상하이전영집단공사와 HD영화 10편의 제작 계약을 맺었다. 가장 유리한 건 홍콩이다. 2003년 6월 홍콩은 중국 본토와 ‘긴밀한 경제 파트너십 협정’(CEPA)을 맺고 2004년 1월부터 실행에 들어간다. 이로써 중국과 홍콩의 합작영화는 인력과 제작비의 비율과 상관없이 무조건 중국영화로 대우받게 됐다. 이는 20편으로 묶여 있는 해외영화 배급 쿼터에서 홍콩이 자유로워졌다는 걸 의미한다.
이에 비해 한국의 중국 진출은 걸음마 단계에 가깝다. “<클래식>을 중국에 배급하면서 보니까 모니터이든 사후관리든 전혀 안 되더라. 박스오피스 매출보고서, 개봉 비용 등에 관한 리포트를 중국쪽에서 받기로 했는데 건네주는 시점도 아주 늦고 리포트가 얼마나 정확한지도 감을 잡을 수가 없다. 시장을 전혀 모르기 때문이다.”(최종윤 시네마서비스 이사)
한국의 처지를 이해하는 데에는 유영호 청어람 중국사업팀장이 보내온 편지가 유용할 듯싶다.
“대만대학 공부 당시 주식투자 행위를 2가지로 나눕니다. 투기와 투자. 이른바 개미군단은 투기 위주이고, 전문 주식투자사들은 말 그대로 투자를 합니다. 할리우드 영화사들이 중국 시장을 바라보고 추진하는 방향을 보면 이것은 투기가 아닌 투자라는 것은 쉽게 파악할 수 있습니다. 콜럼비아의 경우 연간 10편 정도의 아시아영화에 투자를 하고 있습니다. 그중 중국영화가 연간 2편 정도 됩니다. 콜럼비아는 중국영화 <천지영웅> <대가의 장례식> 등에 투자했는데 중국 내부에서만도 손익분기점을 맞추지 못하는 영화에 투자를 해왔다고 할 수 있습니다. <와호장룡> 한편으로 10년간 아시아영화에 투자할 수 있는 돈을 벌었다죠. 하나 콜럼비아가 사전에 <와호장룡>이 잘되리라는 예측을 하거나 기획을 하진 않았을 것입니다. 그들은 흐름을 알고 있습니다. 현재 중국 연간 박스오피스 규모는 1억달러(5천만명 수준)입니다. 낙후된 극장설비, 외자 배척, 엄격한 심의 제도 등…. 워너의 경우 10년 전에 이미 상하이에 합자극장을 설립한 적이 있습니다. 돈만 날렸지만, 올해 다시 정식으로 들어왔습니다. WTO 가입 뒤 중국 시장이 상당한 속도로 변하고 있으며 가까운 미래에 아시아 최대의 시장으로 부상한다는 예측은 누구나 다 할 수 있으나 어떻게 준비하냐는 방법론에선 자신에게 맞는 것을 선택해야죠.
한국 회사들은 투기를 좋아합니다. 중국 땅에 한류라는 바람이 불도록 만든 이들은 모두 보따리장수들입니다. 잘되니까 시장조사도 이해도 전혀 못하는 콘텐츠 소유사들이 보따리장수들을 팽개치고 무분별하게 진출을 하지요. 중국에 한류는 이미 사라진 지 오래입니다. 별동부대들이 시장을 개척해놓았으면 정규군은 그 시장을 잘 다져놓아야 하는데… 항상 아쉽네요.
한국 콘텐츠는 분명 경쟁력이 있습니다. <엽기적인 그녀> <조폭 마누라> 등등. 하나 비교경쟁력이지 절대경쟁력이 아닙니다. HOT가 중국에서 멋지게 랩을 부르던 시절이 2000년이었고 지금은 중국의 젊은 가수들도 남부럽지 않게 잘 부르지요. 몇년 전만 해도 홍콩 드라마가 중국에서 잘 먹혔지요. 편당 2만6천달러 넘게 팔렸으니까요(그때 당시 한국 드라마는 편당 800달러 수준). 지금은 오히려 중국 드라마가 홍콩에 수출되고 있는 실정입니다. SF와 액션이 할리우드의 절대경쟁력이라면 홍콩은 100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각종 스타일의 무협일 것입니다. 그럼 한국의 절대경쟁력은? <천녀유혼> 당시의 홍콩을 참고하는 것이 좋을 듯합니다. 조그만 홍콩은 해외진출이 필수적이었겠죠. 그리고 성공시대가 분명 있었습니다. 다행스럽게도 홍콩은 2가지 전제조건을 이미 갖추고 있었습니다. 하나는 문화코드(화교권 시장-대만, 중국, 싱가포르 등)이고 또 하나는 무협코드입니다. 홍콩의 배우들은 정말 경쟁력이 있습니다. 자국어인 광둥어는 기본이고 영어, 지금은 만다린까지 소화해내고 있습니다. 배우 지망생들의 이력서를 보면 할 수 있는 언어가 평균 3개입니다. 장르, 감독, 배우 등등 모든 것이 골고루 갖춰졌기에 홍콩의 전성시대가 열렸다고 봅니다. 중국의 최대영화사인 전영그룹에서 저에게 이러더군요. <클래식> 홍보차원에서 한국 여자배우가 왔는데 왜 그렇게 싸가지가 없냐구…. 다시는 초청 안 한다고 하더군요. 양조위와 유덕화의 최근 TV 초청회를 보면 정말 비교가 되더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