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1]
아시아 영화 네트워크, 불꽃놀이를 시작하다 [2]
2004-01-02
글 : 이성욱 (<팝툰> 편집장)

한국을 주목하는 아시아


2003년 부산영화제 PPP에서 부산상을 받은 구로사와 기요시의 <로프트>를 제작하는 미로비전은 무척 흥이 올라 있다. 이미 시나리오가 나왔고 2004년 봄 촬영에 들어가기 위해 국내, 일본, 유럽쪽으로 나눠 제작비를 조성 중이다. 또 <무간도> 시리즈를 공동연출한 홍콩 유위강의 신작 호러 <파크>의 세계배급 대행을 맡기로 했고, 중국과는 그 나라 감독을 내정해놓고 또 하나의 작품 제작을 진행 중이다. 애초 한국영화의 해외배급 대행으로 시작했던 작은 회사가 아시아 각국의 영화를 세계에 배급하고 합작을 통한 제작까지 그 폭을 넓히게 된 건 불과 2년 사이의 변화다. “한국영화만 전문으로 하는 게 장점이기도 하지만 그보다는 아시아권의 콘텐츠에 대한 허브 역할을 하는 게 전망이 좋다. 2년 전부터 이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아시아 각국이 우리에게 해외배급을 맡기는 건 요즘 잘 나가는 한국영화와 동반상승을 일으켜 세일즈에 보탬이 될 거라는 판단을 하기 때문이다. 한국영화에 대한 아시아 각국의 기대치가 너무 높아서 걱정이다. 지난주에는 두건이나 투자 의뢰가 들어왔다.”(미로비전의 채희승 대표)

한국영화 시장의 협소성을 일찌감치 깨달은 몇몇 제작자들은 발빠르게 아시아 차원의 영화를 기획했다. 가장 눈에 띄는 행보를 보이는 제작사 중 하나인 영화사 봄은 <쓰리>에 이어 한국, 일본, 홍콩의 감독들과 함게 2004년 6월 개봉을 목표로 <쓰리2> 제작에 들어갔다. 한편 PPP에서 부산상을 받은 구로사와 기요시의 신작 <로프트>는 미로비전에서 제작을 하고 있으며 국내, 일본, 유럽 쪽으로 나눠 제작비를 조성 중이다.

한국영화의 아시아 네트워크 구축이 급속도로 확장되는 데에는 아시아 각국의 호응이 크다. <와호장룡> <영웅> 등의 프로듀서를 맡았던 ‘할리우드통’ 필립 리, 아시아 최고의 영화 및 방송 장비회사 살롱필름즈 등 최근 홍콩 영화산업을 두루 접촉하고 돌아온 한 국내 관계자 역시 2년 전과 지금을 비교했다. “지금도 할리우드 메이저의 2∼3개 작품의 로케이션 제작을 대행하고 있지만 살롱필름즈는 굉장히 보수적으로 사고하는 영화사다. 2년 전만 해도 한국영화에 대해 ‘저러다 말겠지’ 하며 의구심을 품던 회사가 요즘 한국영화에 대해 확신을 갖고 국내 제작사와 합작을 진행 중이다. 이게 홍콩의 전반적 움직임이다. 적극적으로 사람들이 움직이고 있어 곧 가시적 성과들이 드러날 것이다.”

중국 대륙은 더이상 미개척의 소비시장이나 로케이션 장소로 기능하는 후방 기지가 아니다. 각종 경제활동이 빠르게 민간으로 이동하면서 한국영화를 선매하려고 하거나 합작을 원하는 ‘전주’들이 생겨나고 있다. 거대한 투자자로 변모한 것이다. 중국도 홍콩과 비슷한 움직임이다. “베이징전영집단공사의 한삼평 사장은 ‘아시아의 다른 나라는 필요없고 한국과의 합작만 원한다’고 말했다. 특히 한국의 시나리오, 배우, 감독에게 눈독을 들인다. <조폭 마누라2>에 장쯔이가 출연한 건 이런 중국의 의지의 표현이다. 공동제작을 하려고 했으나 폭력장면으로 자체 검열에서 통과가 안 되자 장쯔이만 우정출연시키며 호의적 제스처를 보인 거다.”(이병원 부산영상위원회 영상산업연구소 연구원)

범아시아 프로젝트들이 움직인다

이런 외부의 변화보다 훨씬 앞서 움직인 건 ‘한국영화 시장이 너무 좁다’는 걸 일찌감치 깨달은 일부 제작자들이다. 96년 크리스토퍼 도일에게 촬영을 맡긴 <모텔 선인장>을 해외에서 30만달러어치 팔고, <깡패수업>을 일본에서 찍고 그곳에다 10만달러 받고 파는 “당시에는 상상도 못할 수출액”을 기록하면서 차승재 싸이더스 대표는 “해외에 팔 수 있는 유니버설한 영화를 해야겠다”고 맘먹게 됐다. 해외에 좋은 네트워크를 구축하면 제작 리스크를 줄일 수 있겠다고 본 것이다. 현재 <역도산>의 제작비 절반을 일본에서 펀딩했고, 황석영 원작의 <무기의 그늘>과 이제 막 초고가 나온 SF영화를 홍콩, 일본 등과 공동제작할 예정이다. 그는 “아시아 차원의 영화를 만들 때 일본에서는 쉽게 파트너를 찾을 수 있을 정도가 됐다”고 했다.

영화사 봄도 빼놓을 수 없다. 한국, 홍콩, 타이의 3개국 합작품 <쓰리>에 이어 2004년 6월 개봉을 목표로 <쓰리2> 제작에 들어갔다. ‘봄’은 한국의 박찬욱, 일본의 미이케 다카시, 홍콩의 유위강을 모았다. 허진호, 이와이 순지, 진가신의 3각 구도로 멜로 버전의 <쓰리3>도 준비 중이다. <쓰리3>보다 먼저 들어가는 건 할리우드 메이저 콜럼비아와 계약한 영화가 유력해 보인다. 제2, 제3의 <와호장룡>을 노리는 콜럼비아가 한국에서 ‘봄’을 파트너로 택한 것이다. “처음에 왜 <쓰리> 같은 걸 하느냐는 사람들이 있었다. 옴니버스로 합작영화를 만드는 것이 당장 돈은 안 될지 몰라도 그 경험과 네트워크가 10년 뒤 나의 모습에 결정적인 영향을 끼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궁극적으로 해외시장에 대해 알아가야 한다는 의지의 시작이었다. 지금 한국 시장이 좋지만 아주 어려운 시절에 영화를 시작한 나로서는 안심할 수 없다. <장화, 홍련>과 <스캔들-조선남녀상열지사>를 성공시킨 지금, 영화사 2기를 어떻게 펼칠지 이와 맞물려 고민 중이다.”(오정완 영화사 봄 대표)

명필름이나 국내 3위의 배급사 자리를 놓고 경합하는 청어람은 암중모색 중이긴 하나 이미 발걸음을 뗐다. 명필름은 피디연합회가 창구가 돼 중국과 계약을 맺은 음반, 게임, 방송 프로덕션 중에서 영화쪽 네트워크를 차지했다. 중국에서 DVD 제작과 유통의 8할 이상을 차지하고 있는 구주프로덕션과 공동제작 등에서 우선적 권리를 갖는 계약을 맺었다. “아시아 시장 공략에 대한 방향을 잡기 위한 연구를 전사적 관점에서 시작했다. 내가 일본을 다니고 심재명 대표가 중국을 다니고 하는 식으로.”(이은 감독)

청어람은 7개월 전 중국에 지사를 개설했다. 대만 국적이지만 한국에서 성장했고 삼성영상사업단과 중국에서 영화 비즈니스를 경험한 ‘트랜스 내셔널’한 직원을 현지에 두고 인적 네트워크와 아이템 개발을 진행 중이다. “중국은 아직 외국인이 가서 일할 만큼 개방돼 있지는 않으나 시간을 들여 미리 포스트를 만들어놓아야 곧 벌어질 국내외의 메이저들과의 경쟁에 대비할 수 있을 것이다. 큰 그림을 그려가고 있다.”(최용배 청어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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