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1]
아시아 영화 네트워크, 불꽃놀이를 시작하다 [3]
2004-01-02
글 : 이성욱 (<팝툰> 편집장)

부산을 아시아 영상산업거점으로

아시아 네트워크의 구축은 결국 사람과 돈이 함께 섞이는 것이다. 영화제작으로 유입되는 외자 유치의 방식은 아주 다양해지고 있다. 아이픽쳐스는 최근 일본 엔터테인먼트 기업 어뮤즈와 50억원 규모의 공동펀드를 조성했다. 한국영화 제작과 한·일 합작에 대한 투자가 목적인데 작품 선정 단계부터 어뮤즈가 참여하며 한·일 동시 개봉을 원칙으로 한다. 최재원 아이픽쳐스 대표는 “한국영화의 제작자본이 제한적이다. 특히 극장 중심의 자본이 계속 만들어지고 있는 현실에서 외자 유입을 위한 파이프 라인을 만드는 데 1차적 목적을 뒀다”고 말했다. 할리우드 메이저영화는 대부분 컴플리션 본드(완성보증보험)를 통해 만들어진다(스크립과 캐스팅, 감독 등이 정해지면 제작사는 메이저 회사를 찾아간다. 메이저가 구입각서를 써주면 제작사는 컴플리션 본드에 가입하고, 은행은 구입각서와 완성보증보험을 근거로 제작비를 융자해준다). 아시아에선 홍콩 에드코사의 빌콩이 첸카이거의 <시황제 암살사건>을 시작으로 컴플리션 본드를 끌어들였고 <와호장룡>과 <영웅>도 이 방식으로 제작했다. 빌콩이 한국쪽 파트너로 택한 싸이더스HQ와 공동제작하는 <내 여자친구를 소개합니다>가 국내에선 최초로 컴플리션 본드로 만들어지는 영화다. 이건 또 다른 형태의 자본 유입이다. “한국에선 자본과 크리에이티브가 서로 이질감을 느낀다. 결국 시스템은 자본에서 나오는 것이고 투기가 아닌 투자 차원에서 자본이 안정적으로 굴러가려면 이 문제를 극복해야 한다. 컴플리션 본드가 한국영화에 관심을 가진 건 이런 차원에서 긍정적이다. 영화가 김치라는 한국적 본질을 갖고 있더라도 포장은 퓨전으로 해서 프로덕션에서부터 외국인이 접근하기 쉽게 만들고자 한다.”(정훈탁 싸이더스HQ 대표)

시네마서비스 역시 중화권을 타깃으로 한 마스터플랜을 만들고 있다. 최종윤 이사는 “빌콩과는 또 다른 비즈니스 방식을 고민하고 있는데 아직 구체적으로 말할 단계는 아니다”라며 “제작비와 P&A의 마케팅 비용이 급격히 상승하는 반면 시장의 성장에는 한계가 있는 국내 여건을 감안하면 해외 진출은 불가피하다”고 말했다.

<내 여자친구를 소개합니다>
<봄날은 간다>

영화사들의 각개약진이 소프트웨어에 국한돼 있다면 하드웨어 구축은 국가적 차원에서 이뤄질 전망이다. 이창동 장관은 청와대에서 “문화전쟁”에서 승리하는 방안의 하나로 2010년까지 총 6천억원을 투입해 10개 도시에 장르별로 특화된 지역클러스트를 개발하겠다고 발표했다. 이날 구체적인 방안까지 나오지는 않았으나 최소 1천억원이 소요될 ‘씨네-포트 부산’ 프로젝트가 이미 진행 중에 있다. ‘씨네-포트 부산’은 부산시와 부산영상위원회가 주체가 돼 부산을 “아시아 최적의 영상산업거점”으로 키우겠다는 야심찬 계획이다. 로케이션 인프라를 갖추고 세계적 경쟁력을 갖춘 종합후반작업 센터를 구축한다는 것이다. 부산영상위원회 운영위원장을 맡고 있는 박광수 감독은 “씨네-포트 부산은 문화적 측면과 산업적 측면이 합쳐진 것으로 부산을 아시아 영화산업의 정보집결지로 만드는 동시에 타이와 오스트레일리아 등에 분산돼 있는 후반작업 시장을 끌어오자는 것”이라고 했다. 씨네-포트 부산은 ‘미래 영화 마술의 품질증명서’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한창 건설 중인 홍콩의 ‘홍콩무비시티’나 ‘사이버포트’와 경쟁하게 된다. 씨네-포트 부산은 할리우드영화의 후반작업 물량을 상당 부분 소화하고 있는 캐나다의 레인메이커를 파트너 삼아 ‘기술과 브랜드 수입’을 진행 중이며, 부산영상위원회는 아시아 각국의 필름 커미션을 묶는 아시아필름커미션네트워크(AFCN)를 조직하고 있다. 김정현 부산영상위원회 팀장은 “11개국 75개 필름 커미션과 영화 관련 기관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벌이고 있는데 7개국 17개 필름커미션에서 응답이 왔고 절반 이상이 정보교류 등을 위한 조직 구성에 동의했다”며 “2004년 2월 중순 AFCN 준비위원회 국제회의를 열고 가을께 부산에서 AFCN 총회를 개최하는 수순을 밟고 있다”고 밝혔다.

아시아가 아시아를 이야기한다

아시아 네트워크를 이뤄가는 한국 영화인들의 발걸음이 급물살을 타고 있다. 이제 우리의 관심사는 아시아인을 대상으로 어떤 영화를 생산하고 소비하게 만들 것이냐로 모아진다. 적어도 “아시아가 아시아 자체를 타자화하고, 아시아가 스스로를 오리엔탈화하는 장이모의 <영웅>” 같은 영화는 곤란하지 않느냐는 게 이병원 부산영상위원회 영상산업연구소 연구원의 지적이다. 아시아가 아시아에 소구되는 영화들, 아시아가 아시아를 이야기하는 횡단의 영화를 꿈꾸자는 것이다. <쓰리2>가 한국, 일본, 홍콩에서 각각 자신들을 억압하는 게 무엇인지 호러 장르로 즐기면서도 서로를 들여다보는 계기가 되는 영화로 만들어지길 바라는 것 같은. 말하자면 이건 <인터-아시아 문화연구> 주간이자 대만 칭화대학 교수인 천쾅싱의 경험을 영화로 바꿔보는 것이다. “나는 대만과 한국의 역사경험이 무척 비슷하다는 것을 발견함으로써 대만의 문제를 상대화할 수 있게 되었다. 말하자면, 나는 한국이라는 새로운 시점을 통해 대만문제가 20세기 이래 계속된 지역사의 문제이며 반드시 지역사의 내부에서만 파악될 수 있다는 사실을 인식하게 되었던 것이다.”(<제국의 눈>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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