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1]
아시아 영화 네트워크, 불꽃놀이를 시작하다 [6]
2004-01-02
글 : 김소영 (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원 교수)

아시아 문화산업의 재편

최근 <인터-아시아 문화연구> 2003년 봄호에 아시아영화에 대한 특집을 기획, 편집하면서, 미국의 새로운 웹진 <트랜스-아시안 스크린즈>(Trans-Asian Screens)에 초청 편집자로 참여하면서, 공동 편집자인 아쉬쉬 라쟈디약샤 그리고 크리스 베리 교수와 함께 아시아영화의 쟁점이 무엇인가를 집중적으로 생각하게 되었다.

첫 번째 쟁점은 문화산업의 재편이다. 즉, 이제까지 영화산업에 대한 영화연구가 산업자본이라는 틀 속에서 이루어졌다면, 할리우드 블록버스터만이 아니라 아시아의 지역 블록버스터들을 다룰 수 있는 틀은 금융자본이며 이것은 문화산업을 3H, 즉 고비용, 고도의 기술, 고도 투기의 장으로 급속히 변화시키고 있다. 충무로 양식이 한국형 블록버스터로, 또는 황실주도의 영화제작이 타이형 블록버스터로 그리고 인도의 소자본 영화산업이 발리우드로 변하는 것이 그 예일 것이다. 그래서 <인터-아시아 문화연구>의 아시아영화 특집으로 ‘문화산업, 정치사회 그리고 시네마’라는 제목으로 인도의 B급영화 배급 유통에서 컬트화되는 홍콩 액션영화, 인도영화의 발리우드라는 글로벌화와 지역적 정치 쟁점의 소멸, 스리랑카 텔레드라마가 보여주는 인종적 갈등, 마르코스 이후의 필리핀의 정치영화 및 대만의 여성영화제, 한국의 김동원과 오가와 신스케의 아시아적 양식의 다큐멘터리 등을 다루었다. 그리고 한국형 블록버스터와 발리우드 그리고 타이 블록버스터 등과 뉴 할리우드 블록버스터와의 경합에 주목했다.

문화산업의 재편에 이어 두 번째 논점은 아시아 내부에서 유통되는 문화상품과 영화의 문제다. 일본, 홍콩, 한국과 같은 곳의 대중문화가 아시아의 젊은 문화에 많은 영향을 끼치면서 제작과 배급에 동아시아의 공동 프로젝트들이 날로 증가하고 있다. 트랜스 아시아 미디어 연구를 제안하는 고이치 이와부치 교수는 메이저 광고회사에서 실시한 2001년 조사는 동아시아 도시들의 젊은이들이 일본 소비문화와 상품을 미국 소비문화의 상품보다 “쿨”하게 여긴다고 말한다. 아시아라는 지역에서 미국 주도의 대중문화의 탈중심화가 이루어지고 있는 셈이다. 영화쪽으로 보면 인터-아시아적 교류의 역사는 사실 전면화되거나 역사적으로 중요하게 다루어지지 않아 그렇지 이보다 훨씬 앞서 시작됐다. 60년대 홍콩 캐세이영화사와 일본 도호영화사의 합작인 홍콩 삼부작 또 정창화 감독과 호금전으로 대표되는 한국과 홍콩의 합작영화들이 그것이다. 또, 60년대 일본 닛카쓰영화사의 사무라이 활극이 홍콩 액션영화만이 아니라 타이, 필리핀 등에 끼친 파급력은 현재 일본 팝(J-pop), 재패니메이션만이 아니라 인터-아시아적 교통이라는 면에서 보자면 한류의 전사(pre-history)를 이루고 있다. 한국, 홍콩, 타이 3개국의 감독들이 참여한 <쓰리>와 같은 영화는 인터-아시아의 흐름을 보여주는 좋은 예다. 또한 최근 대만의 허우샤오시엔 감독이 만든 일본의 오즈 야스지로에 대한 오마주 영화는, 산업적 관점을 떠나 아시아영화의 정신적 지형과 유산을 그려내는 의미있는 작업이다.

아시아간 대화의 틀

아시아 영상문화에 관계된 세 번째 쟁점은 영화라는 매체를 넘어 각종 스크린들을 포함하는 확장된 영화연구, 스크린문화연구의 필요성이다. 즉 이제까지의 시각 혹은 영상문화연구가 지나치게 추상적이고 확대된 영역을 상정했다면 스크린문화연구는 전자 스크린 위의 영상문화, 즉 모바일영화나 LCD 스크린과 같은 것을 다루게 된다. 특히 일본, 한국, 대만의 인터넷과 모바일폰 문화의 급성장과 확장은 이러한 새로운 스크린문화를 다룰 수 있는 연구의 틀을 필요로 하고 있다. 이 스크린 문화의 특징은 영화와 디지털 기술을 횡단한다는 것이다. 트랜스-스크린 문화연구는 지역 블록버스터영화들(홍콩, 중국, 인도, 남한)과 아트하우스영화(대만과 이란영화)를 포함한 급증하고 있는 인터-아시아 문화적 교통, 스크린 문화에 대한 인식이자 그에 대한 반응이다. 특히, 인터-아시아 블록버스터들은 재구성되고 있는 할리우드 문화산업에 대한 도전이며 지역적 또는 하위-글로벌(regional)한 흐름을 재고하게 한다. 알려진 바와 같이 영화적 장치의 계보학은 산업 자본주의하에 구축되었다. 우리는 글로벌 공간의 변화하는 정치경제와 그것의 변형들과 관련하여 이 장치를 다시 정의할 필요가 있다. 그때 한국이라는 지정학적 입장에서 보자면 인터-아시아라는 매개항은 새로운 방법이며 지도이며 꿈이다.

‘동방불패’라는 것은 영화에서 신화로만 존재하지만, 제국주의와 냉전도 침묵시키지 못한 소란한 역사의 유령은 이제 아시아간의 소통으로 깨어나고 있다. 허우샤오시엔이 오즈 야스지로에게 말을 걸 때, 그리고 일본 전후 사회를 통렬하고 재기있게 비판했던 기노시타 게이스케의 작품을 보고 김기영 감독의 작품을 생각할 때, 19세기 말 이후 단절되었던 아시아간의 대화는 시작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