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리포트]
[할리우드 코메디 클래식] - 상영작 14편 소개
2004-02-16
글 : 유운성 (영화평론가)

  상 영 작 소 개

낙원에서의 곤경 Trouble in Paradise감독 에른스트 루비치 1932년 흑백 83분

빼어난 솜씨를 지닌 도둑 커플에 관한 로맨틱코미디로 알라다르 라즐로의 희곡을 영화화한 것이다. 베니스에서 만나 서로의 놀라운 기술을 보고는 첫눈에 빠져들게 된 가스통(허버트 마셜)과 릴리(미리엄 홉킨스)는 파리의 향수회사의 소유주인 콜레 여사의 집에 위장 잠입해 그녀의 보석을 훔칠 계획을 세운다. 그러나 가스통은 점점 콜레 여사에게 연정을 품게 되고 릴리는 질투심에 사로잡힌다. 독일에서 활동하다 할리우드에 건너와서도 뛰어난 솜씨를 발휘했던 에른스트 루비치의 대표작 가운데 하나로 그의 전작을 통틀어 루비치 스스로가 가장 좋아했던 영화이다. 루비치 영화에서 보여지는 유머와 통렬한 비애의 병치, 모호하고도 정교한 스타일, 대담한 성적 암시를 지칭하기 위해 통용되곤 하는 ‘루비치 터치’(Lubitsch Touch)를 확인할 수 있는 가장 좋은 예로 간주되는 코미디 걸작.

덕 수프 Duck Soup감독 레오 매커리 1933년 흑백 70분

영세국가 프리도니아가 위기에 처하자 거부인 티스데일 여사는 루퍼스 파이어플라이(그루초 막스)를 대통령에 앉히면 정부에 돈을 빌려주겠다고 제안한다. 그런데 정작 대통령 자리에 앉은 파이어플라이는 각종 기행으로 각료들의 불만을 사게 된다. 맥 세네트, 찰리 채플린, 버스터 키튼, 해롤드 로이드, 그리고 로렐과 하디 등과 더불어 할리우드 슬랩스틱코미디, 혹은 익살광대극(burlesque)을 대표하는 인물인 막스 형제(그루초, 하포, 치코, 제포 막스)가 출연하는 영화로 <오페라의 밤>(1935)과 함께 그들의 대표작으로 꼽힌다. 숨쉴 틈없이 이어지는 그루초 막스 특유의 ‘냉소적인 헛소리들’과 극중에서 스파이로 출연하고 있는 하포와 치코 형제의 환상적인 콤비플레이는 보는 이의 넋을 빼놓을 정도다.

마이 맨 갓프리 My Man Godfrey감독 그레고리 라 카바 1936년 흑백 94분

부랑자인 갓프리(윌리엄 파웰)는 어느 날 자선파티가 내건 게임에서 승리하기 위해 부랑자를 찾아 빈민굴로 온 여인 아이린(캐롤 롬바드)에 이끌려 자선파티장에 따라가게 된다. 이후 그는 아이린의 호의로 그녀 집의 집사로 일하게 된다. 계급적 차이가 있는 두 남녀를 주인공으로 내세움으로써 그 둘 사이의 관계에서 코믹함과 로맨스를 이끌어내는 할리우드 로맨틱코미디의 관습을 보여주는 전형적 사례 가운데 하나로 꼽히는 작품이다. 또한 주인공 갓프리가 하층계급 사람들과 어울려 살고 있지만 실은 명문가의 자손임이 밝혀지는 것은 주인공 남성의 감춰진 (계급적이건 정신적이건) 고귀함을 드러냄으로써 주인공 여성과의 결합을 성공적으로 이끌어내기 위한 장르적 장치이기도 하다.

디즈씨 도시에 가다Mr.Deeds Goes to the Town감독 프랭크 카프라 1936년 흑백 115분

미국 작은 마을의 시인이자 튜바 연주자이며 소방대원이기도 한 디즈는 어느 날 갑자기 벼락부자가 된다. 뉴욕에 살고 있던 얼굴조차 모르던 친척이 거액의 유산을 남기고 죽었는데 바로 디즈가 그 유산의 상속자로 지목되었기 때문이다. 이후 영화는 뉴욕으로 간 그가 도시적 삶에 염증을 느끼게 되어 가난한 이들에게 재산을 거저 나누어주다 법정에까지 서게 되는 과정을 보여준다. 게리 쿠퍼가 연기한 디즈씨의 모습에는 전형적인 카프라적 주인공의 모습이 담겨 있는데 이 영화의 성공에 힘입어 카프라는 비슷한 캐릭터와 플롯을 지닌 <스미스씨 워싱턴 가다>(1939)를 제작하게 된다. 아카데미상 5개 부문에 후보로 올라 카프라에게 감독상을 안겨주었던 작품이기도 하다.

놀라운 진실 Awful Truth감독 레오 매커리 1937년 흑백 91분

할리우드 로맨틱코미디의 주요 소재 가운데 하나인 재결합하는 커플에 관한 영화이다. 장 르누아르는 “레오 매커리는 다른 어떤 할리우드 감독보다도 인간을 잘 이해하고 있다”고 평가한 바 있다. 한편 하워드 혹스는 존 포드, 에른스트 루비치와 더불어 레오 매커리를 가장 좋아하는 감독으로 꼽았다. <놀라운 진실>은 르누아르와 혹스의 평가가 허언(虛言)이 아니라는 걸 입증하기에 충분하고도 남음이 있는 레오 매커리의 대표작이다. 여기서 각각 여주인공의 전남편과 새로 사귄 애인 역으로 등장하는 캐리 그랜트와 랠프 벨라미는 혹스의 <히스 걸 프라이데이>에서도 똑같은 역할을 맡아 연기하는데, 혹스는 자신의 영화 초반에 <놀라운 진실>에서 따온 것이 명백한 식당장면과 대사 등을 삽입함으로써 매커리에게 존경을 바치기도 했다.

베이비 길들이기 Bringing Up Baby감독 하워드 혹스 1938년 흑백 102분

다양한 장르에 걸쳐서 고르게 재능을 발휘한 하워드 혹스의 스크루볼코미디 가운데 가장 잘 알려진 영화이자 할리우드 고전기를 대표하는 걸작 가운데 하나로 꼽히는 영화지만, 개봉 당시에는 비평적으로 크게 인정받지 못하였고 흥행에도 실패해 제작사 RKO에 손실을 가져다주었던 작품이다. 고생물학자 데이빗(캐리 그랜트)과 수잔(캐서린 헵번), 그리고 그녀의 애완용 표범을 중심으로 펼쳐지는 로맨틱한 모험담을 다루고 있다. 할리우드 로맨틱코미디에 관한 저서를 낸 스탠리 카벨은 혹스의 이 영화를 두고 두 남녀 인물을 내세워 목적없는 유희에 몰두하는 로맨틱코미디의 특징을 보여주는 가장 순수한 사례로 꼽았다.

히스 걸 프라이데이 His Girl Friday감독 하워드 혹스 1940년 흑백 92분

루이스 마일스톤의 <프론트 페이지>(1931)를 리메이크한 작품이다. 여기서 혹스는 마일스톤의 영화에서 남자로 설정되어 있던 기자 역할을 여기자로 바꾸어놓았다. 유능한 기자로 이름을 날렸던 힐디는 약혼자와 함께 전남편인 신문사 편집장 월터를 방문한다. 월터는 짐짓 아무렇지도 않은 듯 행동하지만 실은 힐디의 결혼을 막기 위한 계략을 짜내기에 여념이 없다. 능글맞지만 결코 밉지만은 않은 캐릭터인 월터 역을 맡은 캐리 그랜트와 자신감에 넘치는 힐디 역의 로잘린드 러셀의 더할 나위 없이 빼어난 연기가 빛을 발하는 영화다. 혹스적 대사 운용의 묘미가 넘치는 작품으로 첫 시사 당시 마일스톤의 영화와 함께 상영되어 원작을 훨씬 능가하는 대사처리 속도로 기자들에게 놀라움을 안겨주기도 했다고 한다.

설리반의 여행 Sullivan’s Travels감독 프레스톤 스터지스 1941년 흑백 90분

할리우드에서 코미디를 만드는 영화감독인 존 설리반(조엘 매크리)은 좀더 진지하고 사회적인 영화를 만들길 원한다. 급기야 그는 주위 사람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영화의 소재를 찾기 위해 거리의 부랑자 차림을 하고 길을 떠난다. 할리우드 스크루볼코미디의 가장 높은 수준을 대변하는 영화감독 프레스톤 스터지스의 대표작으로, 그가 여기서 보여준 영화 만들기에 관한 자의식과 날카로운 유머, 그리고 심오한 통찰력은 세월이 지난 지금에 와서 보아도 여전히 놀랍기 짝이 없다. 극중에서 주인공 설리반이 만들고자 하는 영화의 제목은 <오 형제여, 어디에 있는가?>인데, 코언 형제가 만든 동명의 영화가 스터지스에 대한 오마주라는 건 쉽게 짐작할 수 있다.

존 도우를 만나요 Meet John Doe감독 프랭크 카프라 1941년 흑백 121분

<디즈씨 도시에 가다> <스미스씨 워싱턴 가다>에 이은 3부작의 마지막 영화이자 시나리오 작가인 로버트 리스킨이 마지막으로 참여한 카프라 영화기도 하다. 신문사 경영진이 교체되어 해고될 위기에 처한 여기자 앤(바버라 스탠위크)은 시청 옥상에서 뛰어내려 자살함으로써 사회적 부조리에 항거하겠다고 공언한 존 도우라는 남자의 이야기를 날조하여 칼럼에 싣는다. 이 이야기가 세간의 화제가 됨으로써 앤은 다시 회사로 돌아올 수 있게 되는데, 그녀는 신문사 간부들을 꼬드겨 존 도우 역을 맡을 인물을 찾아낸 뒤 그를 이용할 것을 제안한다. <멋진 인생>(1946)과 더불어 전작들에 비해 좀더 음울하고 비관적인 비전을 보여주는 카프라 영화이지만, 토머스 샤츠는 카프라식의 소박한 인민주의의 한계를 드러낸 작품으로 꼽기도 했다.

교수와 미녀 Ball of Fire감독 하워드 혹스 1941년 흑백 111분

순진하고 세상물정 모르는 언어학자인 버트램 포트 교수는 일곱명의 동료학자들과 함께 백과사전을 편찬하는 일에 종사하고 있다. 어느 날 그는 자신이 담당하고 있는 속어(slang) 부분을 좀더 정확한 최신의 자료에 근거해 집필하기 위해 거리로 나서는데, 그 과정에서 클럽 여가수인 캐서린을 만나게 된다. 프랭크 카프라의 <존 도우를 만나요>에서 공연했던 게리 쿠퍼와 바버라 스탠위크가 여기서도 다시 등장하고 있다. 빌리 와일더가 원안을 쓰고 각본을 담당한 영화이며 당대 최고의 촬영감독인 그렉 톨랜드가 촬영을 맡았다. 한편 혹스 자신의 재즈에 대한 선호가 녹아 있는 영화기도 한데, 그가 몇년 뒤에 만든 <음악의 탄생>(1948)은 바로 이 영화를 리메이크한 것이다.

사느냐 죽느냐 To Be or Not to Be감독 에른스트 루비치 1942년 흑백 95분

1939년 폴란드의 바르샤바를 배경으로 삼아 삼각관계에 놓인 연인들에 관한 대중적 코미디와 나치즘에 대한 정치적 비판을 결합시킨 작품. 에른스트 루비치의 걸작 가운데 하나이지만 당대에는 관객으로부터 외면당했던 비운의 영화이다. 당대의 관객은 (이보다 조금 전에 나온 채플린의 <위대한 독재자>(1940)는 받아들일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히틀러와 나치 독일의 위협을 소재로 로맨틱코미디를 만든 루비치의 태도를 용납할 수 없었던 것이다. 하워드 혹스의 (1934), 그레고리 라 카바의 <마이 맨 갓프리>, 그리고 앨프리드 히치콕의 <스미스 부부>(1941) 등에서 뛰어난 연기를 보여주었던 여배우 캐롤 롬바드의 유작으로 그녀는 이 영화 개봉 직전에 비행기 사고로 사망했다.

희망의 거리 The Talk of the Town감독 조지 스티븐스 1942년 흑백 118분

<젊은이의 양지>(1951), <셰인>(1953), <자이언트>(1956)로 잘 알려져 있는 조지 스티븐스가 연출한 흥미로운 로맨틱코미디. 그는 이 영화가 개봉된 해에 캐서린 헵번과 스펜서 트레이시가 처음으로 콤비로 등장하는 <올해의 여성>(1942)을 함께 발표하기도 했다. 여기서는 혹스의 <천사만이 날개를 가진다>(1939)에 이어 다시 한번 캐리 그랜트와 진 아서가 호흡을 맞췄다. 공장노동자이자 운동가이기도 한 레오폴드는 방화 및 살인 혐의로 체포되어 감방에 갇히고 만다. 재판에서 사형이 언도된 뒤 그는 자신의 무죄를 입증하고자 감방을 탈출, 학창 시절 친구였던 노라의 집으로 향한다. 스릴러와 코미디가 적절히 섞인 작품으로 영화 속에 나름의 사회적 메시지를 담고자 했던 1940년대 할리우드의 한 경향을 보여주고 있다.

세인트 메리의 종 The Bells of St. Mary’s감독 레오 매커리 1945년 흑백 126분

가수이기도 한 빙 크로스비가 출연하는 영화로 <나의 길을 가련다>(1944)의 속편에 해당하는 작품이다. 어렵고 가난한 환경의 아이들을 모아 교육시키는 세인트 메리 학교에 새로 부임해온 오맬리 신부(빙 크로스비)는 부임 초기부터 교육관의 차이로 원장수녀 베네딕트와 마찰을 일으키게 된다. 한편 베네딕트 수녀는 세인트 메리 맞은편에 건설 중인 고층빌딩이 언젠가 세인트 메리의 학생들을 위해 기부되리라는 헛된 망상에 사로잡혀 있다. 영화의 전반부에서는 레오 매커리의 빼어난 코미디 감각이 유감없이 발휘되고 있다. 한편 이 작품은 좀더 비관적이고 냉소적인 시선으로 미국사회를 바라보는 전후세대의 영화들이 나오기 이전에 만들어진, 미국적 삶에 대한 낙관적인 비전을 간직한 마지막 시기의 영화로도 간주된다.

게이샤 보이 The Geisha Boybr>감독 프랭크 타시린 1958년 컬러 98분

딘 마틴과 콤비를 이루어 50년대에 할리우드 익살광대극의 대표작들을 내놓았는가 하면 <너티 프로페서>(1963)와 같은 걸작 코미디를 직접 연출하기도 한 제리 루이스 주연의 영화. 이 영화에서 그는 일본으로 향하는 위문공연에 나선 마술사 길버트 울리 역으로 등장한다. 그와 콤비를 이루었던 딘 마틴은 등장하지 않지만 대신 울리의 토끼 해리가 보여주는 놀라운 마술들과 연기(?)를 감상할 순 있다. 연출을 맡은 프랭크 타시린은 삽화가이자 동화작가로 아동용 책을 펴내기도 했던 인물로 통상 이류의 감독으로 치부되곤 했으나 장 뤽 고다르는 타시린을 할리우드 코미디를 혁신한 인물은 아니지만 색다른 코미디를 창조한 인물이라 부르면서 채플린, 루비치, 카프라에 비견할 만한 감독으로 치켜세우기도 했다. 그는 이외에도 <화가와 모델>(1955), (1956) 등 제리 루이스 주연의 영화를 다수 연출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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