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7년 이후 ‘홍콩 시네마’의 흐름
홍콩영화 자체가 쇠락했기 때문이겠지만 우리는 ‘홍콩 시네마’의 흐름을 97년 부근까지만 면밀하게 ‘추적’해왔다. 그 이후의 흐름을 어떻게 일별해보느냐 하는 과제는 그들의 육성으로 풀어보고자 한다. 어떤 선입견이 가져오는 섣부른 재단을 피하기 위해서다. 그래서 홍콩국제영화제 프로그래머 제이콥 왕과 홍콩필름아카이브의 연구주임 웡 아이링의 인터뷰를 그들의 목소리로 재조립했다. 당연히 특별한 ‘첨가물’은 없지만, 영화라는 텍스트를 읽어내는 디테일과 서술방식이 아무래도 다를 두 평론가의 생각을 마구 섞은 결례는 피할 수 없을 것이다.
▲ 제이콥 왕과 웡 아이링 (위부터)
97년 이전의 홍콩영화들에서 반환 이후의 미래에 대한 불안한 심리가 어떤 식으로 반영됐을 터이니 그걸 읽어내고야 말겠다는 식의 영화읽기는, 지금 생각해도, 우려스럽다. 그런 사회학적 관점에서의 접근은 잘 쓰면 재밌으나 자칫 잘못하면 굉장히 문제가 많다. 영화가 어떤 집단적 의식이나 욕구, 정서를 반영한다는 점에서 보면 임호의 <홈 커밍> 정도가 홍콩 반환에 대해 직접적이고도 은유적으로 다룬 영화다. 홍콩인의 집단적 기억에 대해 말한 거의 유일한 작품이 아닐까 싶다. 나머지 모든 영화는 반환에 대해 이야기했다기보다 그렇게 읽힌 것이다. 당시 그런 식의 비평을 펼쳤던 논자들은 상당히 ‘심각한’ 사람들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중국 반환의 불안이라고? 그건 당신들의 생각!
2000년대 중반으로 접어드는 요즘 영화들의 경향은 도피주의와 판타지다. 이번 설영화로 개봉한 <매직 키친>이 이런 트렌드를 대표한다. <섹스 & 시티>를 신데렐라 신드롬, 섹스, 성공에 대한 욕망이란 관점에서 홍콩식으로 재조립한 영화다. 말하자면 판타지영화다. 단순화를 무릅쓰면, 영화계는 물론이고 경제가 지속적으로 어렵다 보니 영화의 주제나 내용이 판타지에 집착한다고 생각해볼 수 있다. 영화는 기본적으로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예술이다. 요즘의 중산층은 홍콩영화를 보지 않는다. 타깃 관객의 특징은 스스로 중산층이 될 만큼의 경제적 능력이 없거나 대학교육을 아직 마치지 않은 혹은 아예 받지 않은 사람들이다. 사실 이들이 스스로 판타지를 원하는 것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프로듀서가 관객이 원할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물론 예외도 있다. 진가신 감독이 프로듀서를 맡은 <골든 치킨2>는 대중적 코미디이지만 홍콩의 여러 문제를 잘 건드리고 있다. 너무 지역적이어서 해외에서는 어떤 반응을 보일지 모르겠으나 말이다.
97년 이후의 테마와 캐릭터에서 각별해 보이는 건 중국이란 존재다. <무간도> 1, 2, 3편 내부의 변화 자체가 홍콩영화 전반에 스며드는 중국의 비중 변화를 보여주는 한 예이거나 메타포다. 3편을 보면 떠오르는 중국시장을 겨냥해 시나리오에 변화가 생기고, 중국의 유명 스타가 출연한다. 영화 끝에 유덕화가 어떤 마비의 증상을 보이는 반면 중국 스타는 유일하게 살아남아서 복수를 담당하는데, 의도했는지 모르겠으나 비평가의 입장에서 보면 유덕화의 마비가 한 시대의 끝과 시작을 상징하는 것으로 보인다. <소림축구>도 비슷한 구석이 있다. 어느 도시인지 분명히 알 수는 없으나 중국의 도시를 배경으로 이야기가 펼쳐진다. 홍콩은 분명히 아니다. 여자주인공 조위(미???)도 중국의 유명 배우다.
홍콩영화가 정점을 이룬 90년대는 아주 특수한 시기였다. 다른 문화적 코드가 별도로 존재했다기보다 홍콩영화의 문화 자체가 홍콩 영화산업과 거의 완벽하게 일치를 이루는, 기적적 시기였다. 기적적이라고 할 만큼 아주 희귀한 경우이기에 다시 반복되기 힘들다고 본다. 하지만 지금의 영화는 오락으로서도, 예술로서도 그 이전만큼의 비중을 갖고 있지 않다. 영화 자체가 바뀌었기 때문인데 이런 점에서 80년대처럼 사회적, 정치적 문제를 거론하면서 예술성을 실험했던 시절은 다시 오기 힘들 것이다. 설사 다시 오더라도 그건 아마도 다른 방식으로 올 것이고, 우리는 그걸 인식하지 못할 수도 있을 것이다. 영화라는 것 자체가 미래에는 좀더 오락적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진지한 영화들의 위치는 아마도 현재의 순수문학과도 같은 처지가 되지 않을까.
이건 세대론적으로 따져도 명백해 보인다. 80년대 뉴 웨이브 시절의 영화는 젊은 대중에게 가장 중요한 오락수단인 동시에 예술 형태였다. 물론 외국에서 교육받은 당시 감독들은 영화가 단순한 오락산업이 아닌 중요한 예술이라고 분명히 인식했다. 80년대 뉴웨이브를 주도했던 세대에게 공통점이 있다면 그들의 부모 세대가 모두 홍콩인이 아니고 외부에서 왔다는 것이다. 부모 기준으로 봤을 때, 왕가위는 상하이 출신이고, 진가신은 타이 출신이며, 서극은 베트남 출신이다.
▲ 브로드웨이 시네마테크와 병설돼 극장 옆에서 운영되는 ‘큐브릭’에선 국내외의 각종 영화서적 판매와 고전·예술영화 DVD, 비디오를 대여해준다.
▲ 뜻밖에도 홍콩영화의 긴 역사에 비해 필름을 복원·보관하는 작업이 시작된 건 최근이었다. 2001년에 지어진 홍콩필름아카이브 내부.
새로운 영화세대의 특징들
이들의 삶은 부모의 삶과 함께 가면서도 다를 수밖에 없다. 예컨대 언어적으로 풍족하고 문화적으론 복합적이며 정서적으로는 예민하다. 그들의 예민함은 급속한 변화의 시기를 겪던 60∼70년대 홍콩에서 성장한 데서 연유한다. 이들이, 곧 우리 세대가, 사회로 나오던 80년대는 영화뿐 아니라 모든 분야가 융성하던 시기여서 이전과 이후 세대에 비해 상대적으로 손쉽게 많은 기회를 잡을 수 있었다. 말하자면 물려받은 재능과 기회가 많아 무엇이든 빨리 시작하고 성취할 수 있었던 미국의 베이비붐 세대, 히피 세대와 일맥상통한다고 볼 수 있다. 그에 비하면 이후 세대의 특징은 단순성이라고까지 할 수 있으며, 주어지는 기회도 많지 않다. 영화로 봐도 젊은 감독들이 자기가 하고 싶어하는 것을 만들기에는 너무 힘든 여건이다. 저예산의 공포영화이든 엉망진창인 코미디물이든 일단 그런 영화부터 시작할 수밖에 없다.
그렇지만 80년대를 거친 세대들이 지금의 홍콩영화에서 중추를 차지하고 있다는 건 중요해 보인다. 비록 방육평, 임호 등이 감감무소식이긴 해도 왕가위, 두기봉, 서극, 진가신 등은 홍콩의 역량있는 감독으로 더욱 다양해진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진가신이 대표적인데 자기 작품은 물론이고 다른 감독의 작품에 프로듀서를 겸하며 작업한다. 이런 면에서 이 시기는 작가영화 시대의 종결이자 감독 겸 프로듀서 시대의 도래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또 한 가지 특징은 이들이 항상 어울려 일하는 자신들만의 그룹을 이뤄 지속적으로 작업한다는 것이다. 이건 넓은 의미의 개인적 작업 혹은 도제적 작업이다. 여기서 뭐가 나올지는 아직 알 수 없다. 다만 두기봉 그룹과 유위강 그룹은 서로 무척 친하며 많은 걸 공유한다. 장르적인 것, 굉장히 상업적인 영화를 만들면서 그 안에서 뭔가를 바꾸고 스스로 좋아하는 취향을 집어넣으려고 한다. 여기서 크리에이티브의 힘이 나오며 그것이 업계에 강한 영향력을 끼친다. 예를 들어, 유위강 그룹이 만든 <무간도> 시리즈를 장르적 관점에서 보면 연속성과 단절성이 동시에 읽힌다. 연속성은 두 인물간의 대결구도라는 점이다. 장철, 오우삼, 두기봉, 유위강으로 이어지는 영화의 공통된 특징이다. 탈피 요인은 액션 장르에 속하지만 오우삼이 액션에 방점을 찍었다면 유위강은 액션을 무시했을 만큼 드라마에 방점을 찍었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