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석 같은 마력을 지닌 젊은 그녀 >> 황진진(Wong Chun-chun)
▲ 성룡이 출연한 진목승 감독의 <뉴 폴리스 스토리>(사진 위). 한동안 연출 일선에 떠나 있던 그는 홍콩에서 큰 인기를 얻은 <쌍웅>(사진 아래)으로 연출에 복귀했다.
홍콩 영화계의 신성이라고 할 수 있는 황진진은 지난해 완성한 저예산영화 <육루후좌>(六樓后座, Truth or Dare: 6th Floor Rear Flat, 2003)를 통해서 홍콩 영화계에 대단한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영화는 흥청망청 몰려다니며 취한 채 ‘진실 혹은 대담’ 게임에 몰두하는 20대 젊은이들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는데, 목적없이 방황하는 동세대 젊은이들의 정서를 훌륭하게 포착해내며 뜻밖의 흥행 성공을 거두었다. 황진진은 직관과 수완을 갖춘 감독으로 독립영화 제작 방식으로 만든 <여인나화아>(女人那話兒, Women’s Private Parts, 2001)를 통해 처음 주목받은 뒤 저예산영화 <주화창>(走火槍, Runaway Pistol, 2002)에서는 배우로 출연하기도 했다. 그녀의 최신작은 얼마 전 개봉한 <견습흑매괴>(Protege de la Rose Noire, 2004)인데, 이 유쾌한 코미디를 통해 그녀는 자신에게 홍콩 젊은이들의 마음을 끌어당기는 어떤 자성이 있다는 사실을 입증해 보였다.
독특한 스타일리스트 >> 정보서(鄭保瑞, Cheang Pou-Soi)
홍콩의 새로운 영화인들 가운데 가장 돋보이는 존재 중 한명이라고 할 수 있는 정보서 감독은 1999년 DV로 작업한 영화 <제100일>(第100日, Our Last Day)로 데뷔했는데, 그는 이 작품에서 자신의 뛰어난 영화 테크닉을 과시했다. 몰락해가는 공동체에 관한 사실주의적 드라마였던 그의 2000년작 <발광석두>(發光石頭, Diamond Hill)는 비록 흥행과는 거리가 먼 작품이었지만 관객에게 신선한 자극을 던져주면서 그가 주류 상업영화인 <열혈청년>(熱血靑年, New Blood , 2002)을 연출할 수 있는 계기를 제공해주었다. <열혈청년> 역시 흥행에는 실패했지만(사실 그것은 작품보다는 마케팅 부재에서 기인하는 바 크다) 이 작품으로 자신만의 독특한 스타일을 갖춘 감독으로서의 입지를 다지는 데는 크게 기여했다. 지난해 그는 팝듀오 ‘트윈즈’가 캐스팅된 <고댁심황황>(古宅心慌慌 , Death Curse, 2003)의 연출자로 발탁되었고(‘트윈즈’의 출연은 그 자체로 일정 정도의 흥행을 보증한다고 볼 수 있다), 이 작품에서 호러의 틀 속에 코미디 요소를 훌륭하게 가미해냄으로써 자신이 젊은 감수성에 대해 확실한 이해를 가지고 있다는 점과 끊임없이 향상을 거듭하고 있는 주목할 만한 신진 기수라는 점을 확인시켜주었다.
10대 아이돌, 감독이 되어 돌아오다 >> 풍덕륜(馮德倫, Stephen Fung Tak-lun)
오랜 연기 경험을 갖춘 10대 아이돌 스타 출신의 풍덕륜은 대중문화 속에서 연기자와 대중 가수로 굳어진 자신의 위치를 벗어나 한동안 ‘드라이’라는 밴드의 일원으로 활동했고, 이후 솔로 활동을 통해 더 큰 반향을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대스타의 반열에 올랐던 것도 아니고 자신의 연기력을 크게 인정받은 것도 아니었지만 수려한 외모와 깔끔한 이미지 덕분에 그는 홍콩의 팝컬처 속에서 줄곧 탄탄하게 자신의 위치를 유지해왔다. 그가 영화 만들기에 관여하기 시작한 것은 2001년작 옴니버스영화 <연애기의>(戀愛起義, Heroes in Love)를 통해서인데, 여기서 그는 동료 틴 아이돌 스타인 사정봉(謝霆鋒, Nicholas Tse)과 함께 공동으로 라는 에피소드의 시나리오를 쓰고 연출을 맡았다. 대단히 인상적인 작품은 아니었지만 이 작품을 통해 그는 자신이 영화 언어에 대한 기본적인 이해를 갖추고 있음을 입증해 보였고, 다시 자신의 첫 장편 연출작이 될 <엔터 더 피닉스>(4월 개봉예정)를 통해서 진정한 감독으로 평가받기를 기다리고 있다.
▲ '트윈즈'가 주연했던 정보서의 <고댁심황황>
사랑에 대한 섬세한 시선 >> 엽금홍(葉錦鴻, Riley Yip Kam-Hung)
오랜 기간 영화업계에 종사해왔지만 엽금홍 자신의 작품을 만든 것은 아주 최근의 일이다. 그는 1980년대 초반 쇼브러더스의 직원으로 업계에 들어와 이후 주로 프로듀서로서 일해왔는데 관금붕 감독의 <지하정>(1986)의 총괄 프로듀서를 맡기도 했다. 그는 로맨틱 코미디영화 <비일반애정소설>(飛一般愛情小說, Love is not a Game, but a Joke)을 통해 1997년에 감독으로 데뷔했는데, 이 시기는 홍콩 영화계가 액션 일변도에서 점차 가벼운 소재들로 방향을 전환해가던 시기였다. 이러한 환경의 변화는 액션 연출보다는 사람들간의 관계 묘사에 좀더 치중하는 그에게는 절호의 기회를 제공해주었고 후속작 <반지연>(半支煙, Matade Fumaca, 1999)을 통해 두 주인공 증지위와 사정봉 사이의 긴밀한 교감을 절묘하게 포착해 각광받았다. 엽금홍 감독은 2000년작 <라벤더>에서도 화려한 미술과 유려한 촬영술을 통해 감상적인 사랑 이야기를 섬세하게 그려냈고, 여성 관객의 열광적인 호응을 이끌어냈다. 그의 최근작인 <일록자>(一碌蔗, Just One Look ,2002)는 1970년대를 관통하는 향수 어린 여정의 드라마인데 이 작품 역시 관객으로부터 상당한 호평을 받았다.
이외에도 <파리소녀>(Glass Tears, 2001)와 <연지풍경>(戀之風景, The Floating Landscape, 2003)을 연출한 여묘설(黎妙雪, Carol Lai), 감독이자 소설가와 시나리오 작가 등으로 다방면의 활동을 펼치고 있는 팽호상(彭浩翔, Edmond Pang)(그는 <너는 찍고, 나는 쏘고>(You Shoot, I Shoot, 2001)와 <대장부>(大丈夫, Men Suddenly in Black, 2003)를 연출했다), <맥두 이야기> 시리즈를(<맥두고사>(麥兜故事, Life as McDull, 2001)와 곧 개봉될 <맥두무당>(麥兜武當, McDull, Pineapple Bun Prince, 2004)) 만든 시나리오 작가 겸 프로듀서 사립문(謝立文, Brain Tse)과 감독 원건도(袁建滔,Toe Yuen Kin To) 팀, 친숙한 드라마 연출로 주목받고 있는 임애화(林愛華, Aubrey Lam) 감독(<십이야>(Twelve Nights, 2000)와 연출) 등을 홍콩 영화계의 주목할 만한 신진 세력으로 지목할 수 있을 것이다.
*미국 국적을 지닌 샘 호(Sam Ho)는 홍콩, 휴스턴, 텍사스를 오가며 평론가 및 프로그래머로 일하고 있다. 지난해 11월에는 홍콩에서 한국고전영화 특별전을 프로그래밍하기도 했다. 또 그는 홍콩중문대학 영화과 교수로 재직하며 최근 이란 책을 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