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1]
4가지 욕망코드로 골라보는 제6회 서울여성영화제 [3]
2004-03-30
글 : 박혜명
code3가족·관계에의 욕망-1

불완전한 관계들의 상처

세상 끝까지> To thr other End of the World

<리사 마도에린 / 스위스 / 2003년 / 28분 / 베타 / 다큐멘터리 / 여성영상공동체

한국계 스위스인인 리사 마도에린 감독의 자전적 다큐멘터리 <세상 끝까지>는 자기 어머니의 과거를 통해 가족 또는 관계에 대한 여성의 욕망을 이야기한다. 30분이 채 되지 않는 이 짧은 다큐멘터리는 옛날 것으로 보이는 젊은 연인의 사진을 비추며 시작한다. 그들은 마도에린 감독의 친부모, 아키오 이치가와와 김명희다. 마도에린 감독은 클럽 가수였던 어머니와 당시 딸 셋을 둔 가장이었던 아버지가 어떻게 사랑을 시작했고 끝을 맺게 됐는지, 어머니와 주변 사람들을 인터뷰하며 하나하나 기록해나간다. “세상 끝까지라도 당신을 쫓아가겠어”라는 달콤한 사랑고백을 한 아버지와 그런 남자의 아이를 결국엔 혼자서 낳아야 했던 어머니. 그리고 딸은, 두 연인에 대한 이야기를 들으면서 자기 친아버지를 손에 잡힐 듯 머릿속으로 상상한다. 미혼모의 딸을 받아들이지 않는 이곳에서 감독은 서류상 외삼촌의 딸로 태어나 2년 뒤 한국에 사망신고서를 내고, 재혼한 어머니의 남자 국적을 따라 스위스에서 새로 태어났더랬다. 감독은 이러한 자신의 과거를 스치듯 말하고 지나간다. 말미에서 보여지는 건 아키오와 김명희의 믿지 못할 만큼 질기고 순수한 애정이지만, 보는 이에게 더 크게 다가오는 건 리사 마도에린 감독과 그의 어머니가 감추고 있는, 불완전한 관계들에 대한 상처다.

오타르가 떠난 후> Since Otar Left

<줄리 베르투첼리 / 프랑스 / 2003년 / 102분 / 35mm / 드라마 / 새로운 물결

모성애를 소재로 삼은 <오타르가 떠난 후>는 또 다른 관점에서 가족에 대한 여성의 입장을 이야기한다. 구소비에트 연방공화국의 일부였던 소국가 그루지야가 배경인 <오타르…>는 아들 오타르가 돈을 벌러 프랑스로 떠난 뒤 3대에 걸쳐 모녀만 남은 집에서 벌어지는 이야기다. 작고 통통한 체구에 어깨가 굽은 백발의 할머니 에카는 아들의 전화와 편지만을 목빠지게 기다리고, 그런 엄마의 편애가 서운한 마리나는 오히려 자신의 딸 에다에게 무관심하다며 에카의 잔소리를 듣는다. 대학생인 에다는 두 가족에게 최선을 다하면서도 자기 영역이 분명하다. 이 세 사람은 영화 속에서 이름만 등장하는 오타르의 죽음을 통해 성장하고 변한다. 에카가 충격을 받을까봐 오타르의 죽음을 애써 숨긴 채 가짜 편지를 써서 읽어주는 마리나와 에다 모녀. 그러나 엄마로서 이상한 낌새를 눈치챈 에카는 단호히 파리행을 결심한다. 이 영화에서 가장 사랑스러운 장면은 파리 여행을 결심하기 직전, 에카 할머니가 모처럼 혼자 여유로운 외출을 즐길 때다. 천천히 걷는 것조차 힘겨워보이는 몸을 이끌고 나와 우체국에서 아들에게 편지를 부치고 도서관에 들르고, 길에서 담배 두 개비를 사서 공원 놀이기구를 타며 기분좋게 연기를 빨아들이는 에카. 이 외출 뒤에 돌아와 파리행을 결심한다는 내용의 연결은 이 영화가 모성애에 관한 평범한 이야기가 아님을 알게 한다. 마리나와 에다의 관점에서는 아들에만 의존하는 연약한 늙은이지만 그녀는 사실 세 사람 가운데 가장 독립적인 여성인 것이다. 오타르의 죽음을 알고 나서도 그녀는 딸과 손녀에게 어떤 질문도 원망도 던지지 않는다. “파리가 보고 싶다”고 덤덤하게 말하는 에카. 그런 할머니와 감정적으로 많은 것을 교류했던 에다는 파리 여행의 막바지에 중대한 결심을 내리고, 세 사람 중 가장 강한 성격을 드러냈던 마리나가 오히려 노모의 부축을 받으며 드골 공항을 떠난다.

투샤 할머니> Granny

<리디아 보브로바 / 러시아, 프랑스 / 2003년 / 97분 / 35mm / 드라마 / 새로운 물결

<투샤 할머니>의 주인공 투샤 할머니는 자신의 몸이 머무는 곳곳에 무조건적인 사랑을 적셔대는 헌신적인 어머니상이다. 사실 이 영화의 드라마는 어떤 면에서 거북할 만큼 작위적이다. <투샤 할머니>는 자식과 손자들에게 물질적, 육체적, 정신적 사랑을 모두 쏟아부은 어머니가 바로 그네들에 의해 버림받아가는 과정을 직접적으로 표현한다. 사위는 제 아들 앞으로 투샤의 연금을 지급받고 있으면서도 “내 상관할 바 아니”라며 외면하고, 손녀 역시 투샤에게서 물려받은 돈으로 호화아파트에서 살지만 할머니의 존재를 달가워하지 않는다. 투샤를 데리고 그녀의 자식들과 손자들 집을 일일이 돌아다닌 조카조차 투샤의 사랑을 받고 자란 사람들이 모두 변했다며 흐느끼면서도 정작 자신이 모시겠다고 나서지는 못한다. 결국 투샤 할머니가 얻는 보상은 아무것도 없다. 모든 곳에서 외면당한 투샤 할머니는 그 누구의 도움없이 길을 떠난다. 시작부분에서처럼 끝부분에도 유모의 노랫가락을 흘려내는 이 영화는 궁극적으로 완벽한 모성애와 어머니상을 제시하고 그것을 성화(聖化)시킨다. 이견을 낳는다 하더라도, <투샤 할머니>의 감동이 그 성스러운 얼굴에 있음을 부정하긴 어렵다.

<가족의 초상> Shara

리가와세 나오미 / 일본 / 2003년 / 99분 / 35mm / 드라마/ 새로운 물결

<가족의 초상>은 여성의 입장에서 조금 비켜나 한 소년의 성장기를 담아내고 있다. 성실, 자상하고 대외적 평판도 훌륭한 아버지와 묵묵하고 현명하게 집안을 내조하는 어머니 사이에서 열아홉살 슌의 가정환경은 나쁘지 않다. 슌의 학교친구이자 그림 그리길 좋아하는 슌의 모델이고, 엄마와 단둘이 살고 있는 동네 여자친구 유 역시 엄마와의 관계만 놓고 보면 슌이 서글프게 부러워할 만큼 행복한 아이다. 그러나 우리 가족의 초상은 언제나 그렇게 원만하지 않다. 슌은 어릴 적 동네 골목길에서 함께 놀다가 사라져버린 형 케이에 대한 기억을 가슴에 묻어두고 있다. 유는 자기가 얼굴도 본 적 없는 아빠와 친엄마라는 어떤 사람, 그리고 지금의 엄마 사이의 관계에 대해 감당키 어려운 이야기를 듣는다. 영화는 이런 진실들을 5분 이상의 롱테이크로 묵묵히 응시하거나 혹은 힘껏 달릴 때 양 옆에서 스쳐 지나가는 배경처럼 흘려버린다. 중요한 것은 이런 진실들을 본인도 의식할 수 없는 상처로 갖게 된 가족들에게 치유가 행해진다는 점이다. 유는 마을 축제 때 행렬 맨 앞에 서서 또렷한 표정으로 춤을 추며 웃고, 슌은 엄마의 세 번째 출산을 지켜보면서 쉼없이 눈물을 흘린다. 이 두번의 순간에 슌과 유의 가족은 모두 모여 말로 전달되지 않는 화해의 느낌을 땀과 눈물로 교환하고, 그것이 축제와 출산이기 때문에 가장 보편적인 감동도 더없이 적절하게 전해져온다.

<이사 소동> Tommorow We Move

샹탈 애커만 / 벨기에, 프랑스 / 2004년 / 112분 / 35mm / 코미디 / 새로운 물결

샹탈 애커만의 신작 <이사소동>은 이사할 계획으로 집을 알아보러 다니는 두 모녀와 이들의 집을 보러 온 손님들간의 복잡한 대화를 통해 개개인의 단순하지 않은 욕구와 취향 그리고 논리적으로 이해하기 어려운 변덕과 모순까지도 적나라하지만 유머러스하게 묘사하고 있다. 결말에 몇몇 ‘커플’이 만들어지긴 하나 근본적으로 이 영화는 통상적인 개념의 관계들을 보여주지 않는다. 개성 뚜렷한 개인들만이 가득할 뿐이다. 그들은 긴밀하게 유대하지도 첨예히 반목하지도 않은 채 상호이해의 차원을 넘어서서 청자가 아닌 발화자로서만 존재한다. 특이한 세계지만 가족관계에의 욕구를 지향하는 여성들과는 정반대의 지점에서 생각을 던지는 영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