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1]
4가지 욕망코드로 골라보는 제6회 서울여성영화제 [6]
2004-03-30
글 : 남완석 (우석대 영화학과 교수)
code4정치적 욕망-2

이중구속을 뛰어넘어 서로를 만나는 여성들

뉴저먼 시네마의 어머니, 마가레테 폰 트로타 특별전

<독일 자매>

1981년 / 106분 / 35mm / 드라마 / 감독특별전

‘이상을 위한 폭력’이라는 모순에 대해 트로타가 해답으로 제시하는 것은 여성의 유대를 통한 폭력적 상황의 극복이다. 이 영화부터 일관되게 제시되는 트로타의 여성적 유대는 단순한 친밀감의 차원을 넘어서 독일 현대사의 상흔과 모순을 극복할 수 있는 대안적 성격을 띤다. 그녀에게 국제적인 명성을 가져다준 작품인 <독일 자매>(1981)는 이같은 트로타의 생각이 더욱 구체화된 작품이다. 영화는 페미니스트 언니와 테러리스트 동생의 상반된 길을 보여준다. 결국 동생의 투옥과 의문의 자살을 통해, 언니는 사회적 정의를 실현하려는 자매의 행동이 가부장적 질서에 대한 반항이라는 어떤 공통의 뿌리에서 나왔음을 이해하게 된다.

<로젠슈트라세>

2003년 / 136분 / 35mm / 드라마 / 감독특별전

다른 동시대 감독들에 비해서 비교적 고전적인 서사를 고수하는 트로타의 영화에는 유독 회상장면이 많이 등장한다. 현재의 삶 속에 칼날처럼 끼어드는 그 기억들은 이제 고립과 반목을 넘어서 여성 주인공들에게 새로운 유대와 현실 인식을 위한 다리가 되는 것이다. 나치에 의해서 감금된 유대인 남편들을 구하기 위해 거리에 나선 독일인 아내들의 이야기를 다룬 최근작 <로젠슈트라세>(2003) 역시 아버지의 죽음이라는 현재에서 유대인 감금이라는 역사적 사건을 회상하면서, 시간과 세대를 초월하여 진정 서로를 ‘만나는’ 여성들을 다룬다.

<약속>

1994년 / 110분 / 35mm / 드라마 / 감독특별전

<약속>에서 분단과 냉전으로 만남과 헤어짐을 반복하는 남녀의 엇갈린 사랑은 단지 역사적 격변뿐만 아니라 전통적인 남녀 관계를 고수하는 독일사회에도 그 원인이 있다.

<완전히 미친>

1983년 / 105분 / 35mm / 드라마 / 감독특별전

여성간의 유대가 무조건적인 사랑으로까지 승화되는 <완전히 미친>에서 트로타는 가족이나 연인 같은 전통적인 관계를 이상적인 사랑을 방해하는 요소로 그린다.

<로자 룩셈부르크>

1986년 / 122분 / 35mm / 드라마 / 감독특별전

여기서 트로타가 문제삼는 것은 남성이 아니라 남성적 이데올로기이다. 그녀는 여성을 자신의 소유물이나 부속물로 간주하는 가부장 제도와 권위주의를 모든 사회문제의 근원으로 본다. 원래 파스빈더가 추진했던 프로젝트인 <로자 룩셈부르크>에서 트로타는 전설적인 여성 혁명가라는 역사적 인물의 복원이 아니라 남성성을 요구하는 혁명가이자 동시에 여성이어야만 했던 룩셈부르크가 처한 모순과 갈등에 역점을 둔다. 결국 나치에 의한 그녀의 죽음은 개인의 죽음만이 아니라 여성의 입장에서 역사를 만들고 여성의 연대를 통해 폭력적인 남성의 역사를 극복하려 했던 어떤 가능성의 죽음이기도 하다. 이렇듯 트로타는 여성적인 시선에 정치적이고 사회적인 시선을 포개놓는다. 여성이 처한 현실을 넘어서 그 현실의 근원을 거대한 독일역사의 비극에서 찾고자 했던 것. 그것이야말로 이 여자, 마가레테 폰 트로타의 두 번째 깨달음은 아니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