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1]
4가지 욕망코드로 골라보는 제6회 서울여성영화제 [5]
2004-03-30
글 : 김현정 (객원기자)
code4정치적 욕망-1

살아가기 위해 싸운다

<우리 시대> Our Times…

릭샨 바니 에테맛 / 이란 / 2002년 / 75분 / 35mm / 다큐멘터리 / 새로운 물결

2001년 이란 대통령 선거에서 모티브를 얻은 <우리 시대>는 개혁의 순간을 기록하려는 의도에서 출발해 한 여성의 생존투쟁을 지켜보며 끝을 맺는다는 점에서 여성영화제에서만 발견할 수 있는 정치의 의미를 가장 잘 보여준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도시의 허울 아래서>가 지난해 여성영화제에 초청됐고 이란의 대표적인 여성감독 중 하나이기도 한 락샨 바니 에테맛은 혼란에 빠진 독백으로 영화를 시작한다. 그녀는 카메라를 들기로 결심했지만, 어디에서부터 촬영을 시작해야 할지 알지 못한다. 에테맛은 개혁주의 성향을 가진 현 대통령 모하마드 하타미를 지지하는 자신의 딸과 그 친구들을 인터뷰하다가 정부로부터 출마를 금지당한 48명의 여성 후보에게 관심을 갖게 된다. 그렇게 만난 여자가 홀로 어린 딸과 눈먼 어머니를 부양하는 25살의 이혼녀 아레주 바얏. “나 자신이 가난과 실업, 약물중독에 시달렸기 때문에 모든 이들을 이해할 수 있다”고 후보 등록의 이유를 설명하는 바얏은 흥분한 군중이 거리를 메운 선거기간 동안 이사갈 집을 찾기 위해 테헤란 거리를 헤매고 다닌다.<우리 시대>는 여성이 권력을 가져야 한다고 강변하는 영화가 아니다. 에테맛은 여성의 권리를 역설하는 한 후보에게 “그렇다면 남성의 권리는 어떻게 되는 거죠?”라고 물어 그녀를 당황하게 만들기도 한다. 어차피 실패할 거라는 걸 알면서도 후보 명부에 등록해야만 했던 48명의 여성 후보들의 심정과 그보다 더 많은 여자들의 현실에 공감할 수 있는 까닭은 어디에서나 쉽게 들을 수 있는 그런 말 때문이 아닐 것이다. 남편이 없는 탓에 욕실 딸린 방 한칸을 구하지 못하는 바얏의 발걸음, 간신히 방을 구했지만 직장에서는 모욕당하고 쫓겨난 바얏의 눈물이 화려한 구호를 넘어 관객의 마음을 움직인다. 남자가 아니라는 이유만으로, 날마다 밤늦도록 일해도 언제 길거리로 나앉아야 할지 모르는 차별. 에테맛은 영화 처음에 던진 “왜 그들은 대통령 후보가 된 걸까?”라는 질문에 결코 직접적으로 대답하지 않으면서도 그 말없는 진원으로 관객을 끌어들인다. 세상에는 말이 너무 많고, 듣거나 볼 줄 아는 사람은 적기 때문에 정치 한복판을 떠나 소외의 순간에 주목하는 <우리 시대>는 더욱 돋보이는 미덕을 가진 영화다.

<평화만들기: 국경 위의 여성들> Peoce by peoce : Women on the Frontines

리사 헤프너 / 미국 / 2003년 / 86분 / 디지털 베타 / 다큐멘터리 / 여성영상공동체

제시카 랭이 내레이터로 등장하는 이 다큐멘터리는 아프가니스탄과 보스니아, 부룬디, 미국을 종횡하면서 평화롭게 살고자 하는 여성들의 소망과 실천을 기록한다. “평화는 전 지구적으로 바라보아야 한다. 그래야만 우리 조국도 평화로워질 수 있다”는 한 인권운동가의 말처럼, 자신의 조국에서 활동하는 여성들은 가늘지만 질긴 실을 타고 서로의 국경을 넘나든다. 아프가니스탄과 부룬디, 보스니아는 폭력적인 외국 세력이 물러난 뒤 종교나 민족에서 비롯된 내전으로 상처입은 국가들이다. 성(性)을 구분하고 그 각자의 상황을 따질 여력도 없는 이 나라들에서, 여성이라는 건 대체 어떤 의미가 있을까? 답은 모두 다르지만, 그 울림은 비슷하다. 수십만명의 시체가 쌓인 황량한 땅을 딛고, 그녀들은 글쓰기를 배우고 버려진 터를 잡아 농장을 꾸리고 쓰린 상처를 털어놓으며 서로를 보듬는다. 파괴가 남자들의 몫이라면 건설은 여자들의 몫으로 남은 것이다. 미국 남자들이 9·11 테러의 보복으로 아프가니스탄에 폭탄을 뿌릴 때, 무역센터빌딩에서 가족을 잃은 미국 여자들은 그 폐허를 위로하려는 것처럼. 전쟁터가 정해져 있던 재래식 전투와 달리 무차별 폭격이 기선을 잡는 결정타로 작용하는 현대전은, 희생자의 80∼90%를 무고한 시민으로 채우고 있다고 한다. 그리고 그 대부분은 여자와 아이들이다. 이처럼 비관적인 통계로 시작되는 <평화만들기: 국경 위의 여성들>은 또 다른 통계, 소액대출을 받아 가계를 일으키는 주체의 70% 역시 여자들이라는 희망으로 발을 옮긴다. 폭력을 감수하는 평화가 아닌, 평화에 의한 평화. 이 영화의 원제가 바로 그것(Peace by Peace: Women on the Frontlines)이다.

lt;소금-철도여성노동자이야기> Salt-Korean Railway Woman Workers St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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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숙 / 한국 / 2003년 / 54분 / 6mm 디지털 / 다큐멘터리 / 여성영상공동체

생존의 문제는 또한 우리 바로 곁의 투쟁을 돌아보게도 만든다. <소금-철도여성노동자이야기>는 모성의 권리를 획득하고자 분투하는 철도여성노동자들의 싸움에 관한 다큐멘터리다. 매표와 열차 승무, 서무 보조를 아우르는 이 영화는 전통적으로 남자들의 영역이었던 수송 부문에서 일하는 김남희씨의 이야기로 시작을 열고 끝을 맺는다. 철도는 3교대 근무를 하는 지하철과 달리 24시간 맞교대 근무를 한다. 밤을 새워 일해야 하고, 열차는 끊임없이 흔들리고, 레버를 당겨 철로를 바꿀 때마다 아랫배에 힘이 들어간다. 그렇게 일하다가 4년 만에 들어선 아기를 4개월 만에 유산한 김남희씨는 모성을 배려하지 않는 노동조건을 여성부 웹사이트에 올렸다는 이유로 보복성 인사조치를 당하기까지 했다. 50%에 달하는 유산율을 극복하고 아이를 낳더라도 맞교대는 아이 얼굴을 이틀에 한번밖에 보지 못하도록 내몬다. <소금-철도여성노동자이야기>는 단조로운 인터뷰와 감상적인 풍경으로 채워진 단점을 가지고 있지만, 그렇다고 진실의 힘까지 무시할 수는 없다. 총파업이라는 배수진을 친 투쟁에서도 전체를 위한다는 명목 아래 묻혀질 수밖에 없었던 모성의 권리. 이 영화는 태어나지 못하고 죽은 아이들과 태어났으나 홀로 잠드는 아이들을 위한 노래를 들려주면서 1500명 여성노동자가 소수로 취급받아선 안 된다는 사실을 일깨운다.

<잊혀진 여전사> Forgotten Warriors

김진열 / 한국 / 2004년 / 90분 / DV / 다큐멘터리 / 여성영상공동체

여성들의 투쟁 앞에는 잊혀진 과거가 있었다고, <잊혀진 여전사>는 말한다. 통일을 기원하는 집회가 있을 때마다 운동장 앞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일군의 할머니들은 누구였을까. 그중 한명인 박순자 선생은 지리산 빨치산으로 활동하다가 1954년 체포되었고 10년 뒤 출소하고 나서도 통일운동가로 살아왔다. 그리고 아내이자 어머니로. <잊혀진 여전사>는 좌익 성향이 강했던 집안에서 태어나 “잘은 모르겠지만 아마도 오빠 때문에” 전사가 돼야 했던 한 여인의 일생에 귀를 기울여준다. 수십년이 지나 다시 찾은 지리산에는 그녀만 있진 않았다. 마음에 둔 남자 동지와 악수도 한번 하지 못하고 헤어진 추억, 총알을 맞고도 “그래도 살아야 하니까”라며 이를 악물고 뛰었던 기억, 노래를 부르며 같은 감방 동지를 떠내보낸 아픔. 그동안 볼 수 없었던 여성 빨치산들, 지금도 통일이 되어 북으로 간 선생들을 만날 때까지는 살아야 한다고 스스로를 단련하는 늙은 여인들이 이 영화에는 있다. <잊혀진 여전사>는 웃으면서, 따뜻한 심성으로도, 열심히 싸울 수 있다고 마침표를 찍듯 가르쳐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