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1]
4가지 욕망코드로 골라보는 제6회 서울여성영화제 [4]
2004-03-30
글 : 김의찬 (영화평론가)
code3가족·관계에의 욕망-2

가족-근대성-여성, 삼각축의 불가해한 매력

미조구치 겐지에서 이치가와 곤까지 일본 고전영화 속의 여성

Ten Dark Women

이치가와 곤 / 1961년 / 103분 / 35mm / 아시아특별전

한 남자가 있다. 아내와 9명의 정부 사이에서 줏대없이 왔다갔다하는 TV 프로듀서 카제 마츠키치는 그의 정부들이 자신을 죽일 음모를 꾸미고 있다는 공포에 시달린다. 그는 급기야 호색한 남편을 일찌감치 포기하고 사업에서 즐거움을 찾던 아내에게 도움을 구한다. 영리한 아내는 덜미를 잡기 위해 치밀한 계획을 세우고, 정부들은 자기 꾀에 빠져 여기에 걸려들고 만다. 누아르풍의 화면을 보여주는 〈1명의 아내, 9명의 정부>는 1960년대 영화라는 것을 믿기 힘들다. 정교한 유머감각이 그렇고 스타일이 그렇다. 열명의 여성들이 한 남자를 실질적으로 ‘공유’하면서 때로 라이벌이 되고 때로 친구가 되기도 한다. 게다가 TV방송사라는 배경은 여성의 노동, 근대성의 상징으로 비춰 더욱 흥미진진하다. 남녀의 성역할이나 사랑이라는 미혹의 감정을 재치있게 표현하는 것도 영화의 재미. 이치가와 곤 감독은 고전기 스타일리스트로서 이름을 날렸던 인물. 시노다 마사히로 감독은 “그는 오로지 순수 쾌락을 위해 영화를 만든다”라고 말한 적 있는데 〈1명의 아내, 9명의 정부>를 보면 그 이야기에 공감할 수 있다.

< 기온의 자매들> Sisters of Gion

미조구치 겐지 / 1936년 / 68분 / 35mm / 아시아특별전

시대를 거슬러, 1930년대는 미조구치 겐지가 작가적으로 성숙한 시기였다. 당시 만든 <기온의 자매들>은 이후 미조구치 작품들의 원형에 해당한다. 봉건적 사회에 속박당한 여성들이 겪는 문제, 아버지나 연인이라는 남자들의 욕망에 저항하는 강한 여인상 역시 당시 영화들에서 어느 정도 확립되었다. <기온의 자매들>은 특히 여성을 육체적으로, 경제적으로 착취하는 제도에 대한, 가부장제 사회에서의 차별에 대해 고찰한다. <기온의 자매들>은 대조적인 성격의 게이샤 자매의 이야기다. 언니 우메키치는 자신의 여자로서의 삶에 순응한다. 반면, 동생 오모차는 게이샤라는 직업은 담담히 받아들였지만, 자신의 운명만은 남성의 뜻에 맡기지 않는다. 평론가 요모타 이누히코는 야마다 이스즈라는 여배우에 대해 “이 천재 여배우에 의해 미조구치 감독의 관념은 영화적으로 실현되었다”고 논했다. 긴 트래킹 숏으로 일관하는 영화의 시각 스타일은 또한 일본의 고전회화를 연상케 한다. <기온의 자매들>은 일본 멜로드라마에서 중요한 작품이며 일본 여성들의 고단한 삶을 관찰하는 역작임에 분명하다.

하나오카 세이슈의 아내> The Wife of Seishu Hanaoka

<마스무라 야스조 / 1967년 / 99분 / 35mm / 아시아특별전

마스무라 야스조의 영화에 등장하는 여성들은 이전까지 일본영화와는 구분된다. 자립적으로 스스로의 욕망에 충실한 여성들이 등장하는 것이다. 마스무라 야스조 영화에 등장하는 여성 캐릭터들은 고전 일본영화보다는 유럽적 전통에 더 가깝다. <하나오카 세이슈의 아내>는 18세기 의사이자 마취수술의 선구자 하나오카 세이슈의 이야기를 그의 실험에 희생당한 여성들의 시각으로 그린 영화다. <하나오카 세이슈의 아내>는 며느리와 시어머니, 두 여성의 갈등관계에 무게를 둔다. 이야기의 대부분이 하나오카 세이슈를 사이에 두고 그의 어머니인 오츠기, 세이슈의 아내 카에의 질투와 라이벌 관계를 보여주는 것. 이 영화는 클래식보다는 컬트에 근접한다. 기괴한 이야기와 음산한 분위기, 그리고 배우들의 연기는 기묘한 시공간으로 관객을 이끈다. 가족이라는 울타리에서 벌어지는 여성들간의 심리적 대립과 반목은 최근의 어느 영화보다도 생생하고 또한 예리하다.

곡예사의 사랑> The Water Magician

<미조구치 겐지 / 1933년 / 102분 / 35mm / 아시아 특별전

<곡예사의 사랑>은 여성 곡예사의 비극적인 사랑 이야기이다. 한 여성이 우연히 길에서 만난 남자와 사랑에 빠지고, 그를 법대에 보낸다. 하지만 운명은 가혹하게도 둘을 살인사건 법정에 세우고, 영화는 비극으로 끝을 맺는다. 전형적인 일본 멜로드라마다. 무성영화인 탓에 사와토 미도리의 변사공연이 상영에 덧붙여진다.

향기로운 꽃> Koge

<기노시타 게이스케 / 1964년 / 202분 / 35mm / 아시아 특별전

<향기로운 꽃>은 육체적으로 착취당하는 모녀의 이야기. 20살에 미망인이 된 이쿠요는 딸 토모코를 두고 곧 재혼을 한다. 하지만 운명의 장난처럼, 어머니는 매춘부로, 그 딸은 게이샤 견습생으로 요정에서 다시 만난다.

<카르멘 사랑에 빠지다>

기노시타 게이스케 / 1952년 / 103분 / 35mm / 아시아 특별전

<카르멘 사랑에 빠지다> 역시 기노시타 게이스케 감독작으로 전후 일본사회를 풍자한 드라마다. 주인공 카르멘이라는 여성은 특유의 자유분방함으로 위선적인 일본사회, 근대화의 과정을 풍자하고 비웃는다. 여배우 다카미네 히데코의 연기가 빛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