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1]
2004 여름을 책임질 한국 공포영화 다섯편 [6] - <인형사>
2004-04-20
글 : 오계옥
글 : 오정연
인형이라고 버리지마, 우리도 사랑받고 싶어<인형사>

Story● 외딴 숲속 미술관에 초대된 다섯명

외딴 숲속의 작은 미술관. 인형제작자(인형사)가 만드는 인형의 모델이 되기 위해 조각가, 여고생, 사진작가, 직업모델, 인형 마니아가 초대된다. 시간이 지나면서, 뭔가 석연치 않은 인물들, 미술관 곳곳에 위치한 인형들이 내뿜는 기운으로 인한 미묘한 불안감이 감지될 무렵, 첫 번째 희생자가 발생한다. 모인 사람들 중 누군가는 범인으로 지목되고, 그들 사이의 죽음은 끊이지 않는다.

Motive●● 구체관절인형

정용기 감독은 처음 인터넷에서 구체관절인형을 보았을 때, 인형의 아름다움 속에 배어 있는 무서움에 반했다고 한다. <인형사>에 등장하는 인형들은 모두 구체관절인형인데, 이는 신체와 동일한 움직임과 포즈가 가능하고, 안구교체, 가발착용, 메이크업 등이 가능하도록 제작된 인형을 말한다. 이 인형은 어떻게 치장하는지에 따라 그 이미지가 급변하는 것이 특징이다. 1980년대부터 일본 작가들에 의해 발전됐다는 구체관절인형은 많은 애호가들을 거느린 일종의 문화현상이라고 봐도 좋을 듯하다. 애호가들은 인형을 자신의 분신처럼 여기고 ‘입양한다’, ‘키운다’라는 표현을 쓰면서 사랑을 쏟는데, 감독은 이러한 현상에서 많은 힌트를 얻었다. <인형사>는 ‘제페트 할아버지의 사랑으로 생명을 얻은 피노키오가 무자비하게 버림받는다면, 피노키오는 다시 사랑을 얻기 위해 끔찍한 복수를 저지를지도 모른다는 가정’에서 출발한다. 복수 자체만 놓고 본다면 가해자와 피해자가 명확하지만, 애초에 원인을 제공한 것이 인간의 이기적 사랑임을 생각한다면, 어쩔 수 없이 복수하는 가해자의 슬픔을 외면하기는 쉽지 않은 일이다.

Model●●● <헌티드 힐> <장화, 홍련>

한정된 공간에 모인 등장인물 사이에서 사건이 벌어진다는 내러티브상의 형식은 <헌티드 힐>류의 하우스호러를 연상시킨다. 그러나 그렇다고 “CG를 남발하면서 관객을 놀라게 하는 데 중점을 준 영화는 아니라는 것”이 감독의 입장. 정용기 감독은 개인적으로 관객을 깜짝깜짝 놀라게 만드는 슬래셔무비는 별로 좋아하지도 않거니와 그런 영화의 중요한 장면들은 아예 보지도 못하는 타입이라고. 그가 선호하는 공포물은 심리적 공포를 다루는 <오멘>이나 <엑소시스트> 등이며 이러한 취향은 <인형사>에도 반영될 것으로 보인다. 공포영화라는 장르의 컨벤션을 따르는 영화이기에 자잘한 반전은 필수적이겠지만 결정적 반전 하나가 영화의 가장 중요한 요소가 되지는 않을 듯하다. 기존 공포물 중에서는 가까운 시기에 제작된 <장화, 홍련>과 같은 ‘서정적인 공포물’을 연상하면 될 것이라고 감독은 말한다.

Visual●●●● 복층구조의 앤티크고딕풍

주공간이 되는 미술관과 그 안의 곳곳에 위치한 구체관절인형이 중요한 비주얼을 결정하게 될 것이다. ‘짓다만 성당을 개조한 컨셉’으로 리모델링 중인 미술관은 언뜻 <장화, 홍련>의 집을 떠올리게 한다. 미술감독, 촬영감독, 조명감독과 함께 비주얼을 논의 중인 감독은 “세트의 미술을 중요시한다는 점은 동일하지만, <장화, 홍련>의 집이 일본식 목조건물이라면, 으스스한 마당 한켠으로 오래된 성모상이 자리할 <인형사>의 미술관은 복층구조의 앤티크고딕 양식으로 설계됐다”고 덧붙인다. 방마다 인형 장식이 놓여 있고, 심지어 구체관절인형의 제단까지 만들어질 예정이며, 이 인형들은 “중요한 순간마다 예상치 못했던 타이밍이 주는 공포의 원인이 될 것”이다. 등장하는 구체관절인형은 유명한 인형제작자들의 작품을 참고하여 극비리에 제작 중인데, 그중에서도 주인공격인 인형들은 실제 등장인물을 모델로 하고 있다.

Director's Commentary●●●●● 버림받은 자의 입장에서 이야기를 풀고 싶다

“사람들은 무책임하게 사랑을 하고 무책임하게 사랑을 버린다. 마치 애완동물을 키웠다가 싫증나면 버리는 것처럼 우리의 사랑은 점점 그 진실성을 잃어가고 있지 않나 싶다. 내가 원래 집착하는 습성이 있어서 그런지 모르겠지만, 버림받은 입장에서 이야기를 풀고 싶었다. 그러나 버림받은 자의 집착과 그로 인한 복수는 사랑으로 인정받을 수 없기에 더욱 슬프게 느껴진다.”

글 오정연 delphinus@hani.co.kr·사진 오계옥 klar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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