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1]
영화인들의 파병반대 선언 [3] - 봉준호
2004-07-20
노대통령, 한 번의 실수로 역사에 ‘파병 대통령’으로 남을 것

나의 개인적인 습관인데, 사람의 얼굴을 보면서 “저 사람은 꼭 누구누구와 닮았구나”라고 규정지으려는 집착이 있다. 김지운 감독님을 보면서 안토니오 반데라스를 닮았다고 생각하거나, 명필름 S대표님을 보며 여가수 N씨와 비슷하다고 느끼는 것처럼 말이다. 참으로 안 좋은 습관이긴 한데 아무튼 그런 관점에서 대통령 노무현님의 얼굴을 보자. 코미디언 한무씨와 똑 닮은 얼굴이다. 요즘은 활동이 뜸해서 얼굴보기가 좀 힘들지만, 386세대들은 다들 한무를 잘 알 것이다(기억이 가물가물한 분들은 옆사진을 참조하시라). 특히 그는 코미디언 정부미와 함께 가장 서민적인 정감을 풍겼던 희극인이었다.

그러고보니 ‘서민의 벗’이었다는 점에서도 노무현과 한무는 서로 닮은꼴이라 할 수 있다. 89년 TV생중계 청문회 현장으로 플래시백해보자. 지금은 고인이 된 정주영 현대 회장을 증인석에 앉혀놓고, 노무현 국회의원은 외친다. “그럼 우리 노동자들은, 아무렇게나 짓밟히고 다치고 끌려가도 괜찮다는 말씀입니까?” 아마도 현대중공업 파업 진압 사태와 관련된 질타였던 것으로 기억되는데, 그 순간 노무현님은 목이 메여 떨리는 음성에 물기어린 눈망울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것은 진짜였다!(만일 그것이 TV생중계를 의식한 연기였다면, 최민식 송강호 설경구는 모두들 노무현님 앞에서 무릎을 꿇어야만 할 것이다). 시위현장에서 노동자들과 함께 돌멩이를 던지고 약자의 편에서 변호사 활동을 해온 예전의 전력으로 보나, 그리고 늘 원칙과 소신을 중시하면서 기득권 보수층의 장벽을 정면돌파해온 이후의 행보로 보나, 그때 그 순간 노무현님의 눈물과 목메임은 진심일 수밖에 없었다.

서민의 벗, 서민의 아들들을 전쟁으로 내몰다?

그런 ‘서민의 벗’ 노무현님이 요즘은 서민의 아들들을 이라크로 보내겠다며 의지를 불태우신다. 본인의 의지대로 낙선 뒤에 이라크행을 준비 중이신 홍사덕 전 의원을 제외한다면, 이라크에 가게 될 청년들 대부분은 서민 집안 자식들일 것이다(애초에 군대란 곳 자체가 이회창씨 아드님 같은 분들은 좀처럼 들어가기가 힘든 곳 아닌가). 게다가 최근에는 이라크 파병에 대한 원칙과 소신을 확고하게 보여주시느라, 역시 서민 집안 아들이었던 김선일씨의 가느다란 목덜미를 향해 시퍼런 칼날이 시시각각 다가오는 와중에도 “추가파병 계획에 아무런 변함이 없다”라고 소리쳐 흉악테러범들의 염장을 질러버렸다. 아… 진심으로 ‘서민의 벗’이었던 노무현님에게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일까? 탄핵기간 중 청와대 뒷산을 산책하시다가 무슨 독초라도 캐잡수신 것일까?

흥분하지 말고 차분하게 한번 따져보자. 하기야 초강대국 미국과 패권주의의 최첨단 부시 행정부에 맞장뜬다는 게 ‘현실적으로’ 얼마나 힘든 일인지는 누구나 상상이 간다. 게다가 북핵문제, BIT, FTA 등등 얽히고 설킨 외교문제가 얼마나 복잡하고 난해할지 또한 한-미관계 전문가가 아니어도 어렴풋이 짐작은 간다. 그런 복잡한 상황 한복판에서 이라크 파병을 밀어붙이기까지 노무현님의 고뇌와 내적 갈등! 엄청났을 것이다. 그러나 더더욱 냉정하게 따져보자. 고뇌에 찬 파병 결정이건 아무 생각없이 한 파병결정이건 어찌됐건 결과는 똑같은 거다. 고뇌와 갈등이 많았다고 ‘정상참작’되는 거 전혀 없다 이 말이다. 그저 노무현님은 ‘이라크에 파병했던 대통령’으로 역사 속에 기억될 것이다. 마치 오늘날에 ‘닉슨’ 하면 ‘워터게이트’만 떠오르듯이 말이다. 일생일대의 오판 하나가 블랙홀처럼 모든 것을 집어삼키는 상황… 섬뜩하지 않으신가? 게다가 미국이 지금 어떤 상황인가? 연말에는 대통령 선거가 있다. 부시 행정부가 퇴장할 가능성? 상당히 높다. 케리가 대통령이 된다고 미국의 본질이 바뀌지야 않겠으나, 표면적 변화정도는 충분히 예상된다(하긴 부시 행정부처럼 노골적이고 뻔뻔스럽게 패권주의 행태를 일삼는 무리들이 역사상 다시 등장하기도 쉽지는 않을 것이다). 이제 미국 대선까지는 몇달 안 남았다. 이탈리아 축구팀처럼 공을 뱅뱅 돌리며 시간이라도 좀 끌어볼 생각은 없는가? 그리고 궁극적으로, 그 나라 선거야 어찌되건 노무현님 본인이 상식적으로 한번 판단해보시라. 요즘 미국 서머시즌 박스오피스 1위를 질주하는 영화가 마이클 무어의 <화씨 9/11>이다. 부시와 이라크 전쟁의 추악한 실체를 고발하는 이 영화에 미국 대중이 열광하고 있다. 전세계의 왕따였던 부시가 이제 미국 내에서도 왕따의 절벽으로 몰리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미국 스스로 이라크 전쟁의 명분이라며 내세웠던 구호들이 속속 붕괴하고 있다. 이라크 내 치명적인 살상무기? 결국 찾아내지 못했다고 미국 스스로 발표했다. 9·11 테러와 후세인 정권간의 직접적인 연관성? 그런 것은 없더라고 미국 스스로 보고서를 작성했다. 그런 미국에, 그런 이라크 전쟁을 지원하고자 서민의 아들들을 줄세워 이라크 땅으로 보내겠다는 노무현님의 확고한 의지…. 몹시 안타깝다. 노무현님이 다시금 올바른 원칙과 소신으로 결단을 내려서 짜릿한 대반전을 보여주시길 기대하는 마음에서, 쓰던 시나리오에서 잠시 손을 떼고 잡스러운 글 하나를 이렇게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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