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1]
세계가 바라보는 한국영화 [1] - 미국 ①
2004-08-10

이즈음 한국영화가 세계 3대 영화제에 초청되고 수상하는 일이 잦아졌습니다. 특히 올해 칸영화제에서 박찬욱 감독의 <올드보이>에 심사위원 대상이 돌아가고 나서, 한국영화의 위상이 부쩍 높아진 게 사실입니다. 일본과 중국 등의 아시아권에서는 한국 스타들이 인기를 누리면서, 그들의 출연 영화가 줄줄이 개봉되는 중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언제부턴가 우리는 ‘세계영화의 중심에 한국이 있다’고 자부하게 됐습니다. 그런데 그 믿음은 얼마나 정당한 것일까요? 영화제 수상과 한류 붐이 과연 그렇게 자신할 만한 근거가 될 수 있을까요? 어쩌면 우리는 오해를 하고 있거나 착각을 하고 있거나 비약을 하고 있는 건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우리는 세계 각지에서 ‘그들의 눈’으로 바라본 한국영화에 대한 감상과 비평을 ‘그들의 입’을 통해 들어보고 싶었습니다. 먼저 한국영화통으로 알려진 미국과 호주의 저널리스트들에게 그들이 바라보는 최근의 한국영화에 대한 총평을 부탁했습니다. 그리고 미국과 프랑스, 일본에서 개봉됐거나 영화제에 소개된 한국영화에 대한 다양한 시선을 엿볼 수 있는 현지 리뷰들을 곁들였습니다. 해외에서 공수한 귀한 글들로 꾸민 <씨네21>의 식단이, 여러분의 안목을 살찌우고 균형을 잡아가는 데 보탬이 되길 기대해봅니다. * 이 특집 기사에 실린 해외 리뷰는 전문 게재 허락을 받은 것이거나, 기사 일부를 발췌·정리한 내용들입니다.

리처드 제임스 하비스 영화평론가의 총평

한국영화는 세계적 스타가 필요하다 - 리처드 제임스 하비스/<할리우드 리포터> 영화평론가

미국 배급업자들은 외국영화가 미국영화를 닮았을 때 선택할 가능성이 가장 높다. 미국에서 배급되려면 외국영화는 관객이 알아볼 만한 구조를 갖추고, 쉽게 감지할 수 있는 장르에 속하고, 내장된 마케팅 포인트를 갖추고, 미국 관객이 원산지 국가에 대해 갖고 있는 선입관에 맞아떨어져야 한다. 좋든 싫든 간에 미국 배급업자들은 자기 관객의 취향과 요구에 대해서는 전문가다. 어쩌면 이들이 배급하기 위해 선택하는 한국영화들이 미국 관객이 보고 싶어하는 한국영화의 종류라 가정해도 좋을 것이다.

이런 폭넓은 방책으로 어떤 한국영화들은 미국 관객에게 다른 한국영화보다 더 좋은 반응을 얻는다. 이 상황을 재빨리 개관한다면 미국 관람객이 한국영화에 대해 좋아하는 것과 좋아하지 않는 것을 조금 조명할 수 있다. 평단에서든 상업적으로든 미국에서 반응이 좋았던 한국영화에는 임권택 감독의 <춘향뎐>, 김기덕 감독의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봄>, 장선우 감독의 <거짓말>, 그리고- 비디오 가게에 출현한 초창기 한국영화 중 하나인- 박철수 감독의 〈301 302>가 있다. 한국 관객으로서 더 잘됐을 것이라 예상할 만한 영화에는 강제규 감독의 <쉬리>와 장윤현 감독의 <텔미썸딩> 등이 있었다.

<봄 여름…>, 익숙한 형식으로 호응을 얻다

현재 미국에서 성공적인 개봉을 맞고 있는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봄>부터 먼저 이야기하는 것이 적절할 것이다. 이 영화가 여기서 성공한 이유는 무엇일까? 한 가지 이유는 구조적인 것이다. 내용은 이국적이라 할 수 있겠지만, 감독은 이야기를 미국인들에게 매우 친숙한 방식으로 전개시킨다. <봄 여름…>은 <화엄경>이나 <유리>와 같은 한국 불교영화들보다 훨씬 덜 비교적(秘敎的)이다. 이 영화에서는 촬영과 편집이 초월적인 느낌을 불러일으키기 위해 사용되는 일이 없다. 감독은 시간의 비선형성에 대한 불교사상을 표현하기 위해 영화를 편집하지는 않는다. 영화는 잘 시작해서, 인생에 커다란 실수를 저지르고, 마지막에는 개인적 희생을 통해 죄를 구제받는 인물에 대한 선형적인 이야기로 축약될 수 있다.

미국에서는 이런 구조를 고전적인 미국의 것으로 간주한다. 이 나라의 모든 시나리오 강좌에서 가르치는 것이고, 관객은 영화들이 이렇게 전개되기를 기대한다. 그래서 <봄 여름…>의 구조는 미국 관객이 익숙한 형식으로 동양 종교에 대한 영화를 쉽게 감상할 수 있게 한다. 그럴 리 거의 없겠지만 만일 미국인이 한국 불교에 대한 영화를 만들 경우 아마도 <봄 여름…>과 같은 구조를 갖추게 될 것이다.

장르적 특성은 구조만큼이나 중요하다. 〈301 302>가 좋은 예다. 극장에서 별로 흥행하지는 못했지만, 비디오로는 질긴 수명을 발휘해왔다. 비예술영화로서 미국에서 비디오로 출시되기는 처음이었을지도 모른다. 영화는 로만 폴란스키류의 강렬하고 다소 번뜩이는 심리스릴러다. 완전하게 장르의 규칙을 따르는데, 바로 이것이 미국에서 성공한 비결이다. 비디오 배급업자들은 이 영화를 알기 쉽게 좋은 심리스릴러로 홍보했고, 한국에서 왔다는 것은 무시했다. 결과적으로 이 영화의 인기가 일반 ‘아시아 컬트영화’ 관객의 범위 밖으로 좀더 확장될 수 있었던 것이다.

복합적이면서 몰입하게 하는 <텔미썸딩>은 이보다 덜 순조로운 길을 걸었다. 배급업자는 공포영화로 마케팅해야 할지 스릴러로 마케팅해야 할지 확신하지 못했다. 문제는 영화가 경찰스릴러라고 하기에는 너무 파편적이었음에도 공포영화로 통하기에는 집중된 충격의 양이 부족했다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미국 관객은 외국영화의 장르를 확인할 수 있는 것을 좋아한다. 그래서 배급업자들은 장르를 혼합하는 외국영화를 마케팅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다. 예를 들어 강우석 감독의 <공공의 적>은 아주 웃기는 경찰코미디면서도 굉장히 강하고 생생한 경찰드라마이기도 해 마케팅하는 데 어려울 것이다.

예술 혈통의 시대 드라마 <춘향뎐>, 이국미로 시선을 사로잡다

시대드라마는 미국에서 좋은 대접을 받을 수도 있는데, 예술영화 족보를 갖고 있어야 하는 것이 조건이다. 역사물의 다채로운 의상과 옛날 배경 세트는 종종 미국 관객이 아시아 국가들에 갖는 고정관념을 확인해주곤 한다. 더욱이 미국 평론가들이 오랫동안 일본영화에 집착한 덕분에 관객은 아시아에서 온 역사드라마에 익숙해져 있다. 관객이 ‘한’과 같은 한국적인 개념이나 회선상의 줄거리 등을 이해하지 못한다 하더라도 그냥 예쁜 의상에 경탄할 수 있는 일이다.

그래서 임권택 감독의 <춘향뎐>이 여기에서 잘된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었다. 줄거리는 명백했고, 제작 작업의 질도 흠잡을 데 없었으며, 승화됐으면서도 때때로 폭력적인 에로티시즘은 관객을 추가로 끌어들이는 역할을 하기에 충분히 이국적이었다. <취화선>에 대한 평단의 평도 마찬가지로 좋았다. 그렇지만 영화의 세심하고 정교하게 만들어진 줄거리는 미국 관객에게는 너무 인상주의적이고 문화적 특수성이 강한 것이었기에 극장 흥행은 <춘향뎐>보다 훨씬 덜했다. 그래도 역사적 디테일과 기교는 줄거리에 관심이 없는 이들에게도 인상적이었던 듯하다.

액션영화에 관해서라면, 한국 액션물은 미국에서 비디오로 적게나마 볼 수 있는 상황이다. 미국에서의 아시아 액션영화는 홍콩과 일본이 지배하고 있다. 홍콩은 무술과 현대 액션으로 선도하고, 일본은 액션/판타지와 섹시 액션을 확보해뒀다. 다른 아시아 국가들이 깨고 들어가기에 어려운 독점 상황이다. 특히 많은 팬들이 이 두 나라에서 온 영화에 대한 정통한 지식에 자신의 미숙한 위신을 걸기 때문이다.

만일 많은 사람들이 예상한 대로 <와호장룡>이 미국에서 검술영화 트렌드를 개시했다면, <무사>나 <천년호> 같은 신나는 액션서사극들이 그 파도를 탈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그런 일은 없었다. 사실 한국 제작자들이 미국의 액션영화 시장을 깨려고 한다면 아마도 시간 낭비를 하고 있을 것이다. 아시아 컬트영화 팬들이 <쉬리>를 꽤 잘 받아들였고, 영화는 극장 흥행도 상대적으로 잘된 편이다. 아시아영화 팬들이 <쉬리>가 아시아에서 획기적인 성공의 위신을 지녔음을 알고 있는 것이 도움이 됐다. 그러나 아시아에서 성공한 것처럼 여기서 성공한 것은 확실히 아니었다. 한국 액션영화들이 더 탄탄한 플롯을 갖추긴 했지만, 액션장면에서는 홍콩영화에서 관객이 즐기는 역동성이 부족했다.

한국 영화계에도 세계적 거장이 나와야

미국에서 한국영화가 진지하게 받아들여지는 것은 사실이다. 예를 들어 뉴욕의 현대미술박물관(MoMA)은 신상옥 감독과 임권택 감독 두 사람의 광범위한 회고전을 각각 프로그래밍했다. 그런데 한국영화는 이곳에서 아직 세계영화의 맥락에서 변두리적인 위상을 지키고 있다. 미국에서 진정 인정받는 세력이 되기 위해서 한국영화에 필요한 것은 세계 영화계에 확고한 흔적을 남기는 감독이다. 예를 들어 이란에는 압바스 키아로스타미 감독이 있었고, 대만에는 허우샤오시엔 감독이 있다.

물론, 이런 한국 감독이라면 천재적인 임권택 감독이 있긴 하다. 뭐라 해도 <서편제>는 지난 20년간 세계영화의 가장 좋은 표본 중 하나다. 그렇지만 무슨 이유에서인지 임 감독은 마땅히 그래야 할 만큼 세계 영화계의 중심에 있다고 여겨지고 있지 않다. 한국 감독이 세계적으로 인정받게만 된다면 한국영화는 미국에서 세계영화 가운데 더 중심적인 위치를 차지하게 될 것이다.

* 리처드 제임스 하비스는 뉴욕에 거주하며 <할리우드 리포터>와 <홍콩 사우스 차이나 모닝포스트>의 영화평론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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