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1]
세계가 바라보는 한국영화 [7] - 호주
2004-08-10
호주인의 공감대에 '필'을 꽂아라

러셀 에드워즈/ <버라이어티> 평론가·<엠파이어> 기자

지난 10년간 한국영화의 양적·질적 발전을 고려한다면 호주와 같은 주요한 무역 파트너의 경우 한국영화에 뚜렷한 관심을 가졌을 것이라 생각해도 용서될 것이다. 결국 문화는 무역의 부산물이지 않은가? 우리는 석탄, 천연가스, 오렌지 등도 맞바꾸는데… 한국영화를 진지하게 살펴보고 있지 않을 이유가 있을까? 뭐, 우리 중 관심을 갖고 살펴보는 사람도 있지만, 대부분은 그렇지 않다.

호주에서 상업적인 극장 개봉을 한 마지막 한국영화는 장선우 감독의 <거짓말>로 2001년에 개봉했다. 이 영화에 대한 관심은 한국에서 왔다는 것 때문이기보다 성적인 주제 때문에 나타난 것이었고, 영화는 호주에서 흥행실적이 좋지 않았다. 그런데 이 영화가 성공하지 못한 것은 배급업자들이 다른 한국영화에 승산을 걸어보는 것을 피하게 만들었을 것이다.

<쉬리> 계기로 소규모의 영화 마케팅 시작되다

<쉬리>를 시작으로 일련의 소규모 회사들이 시드니에 거주하는 한국인들에게 한국영화를 마케팅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 성공을 되풀이하려는 소규모 회사의 수가 배로 늘어나면서 수익은 감소했으며, 또 한국어를 하는 호주인들은 큰 스크린(해적판 비디오나 DVD가 아닌)에서 영화를 보는 새로운 즐거움도 곧 잊어버렸다. 이런 어떤 것도 호주에서 한국어를 못하는 관객에게는 도움이 되지 않았다. 일반 호주인이라면 한국에 영화산업이 존재한다는 것 자체가 놀라울 것이다. 그렇지만 외국어 TV 채널을 점검한다면 그 존재의 증거는 분명히 있다. 필자가 본 기사를 쓰는 현재 〈TV가이드>를 보면, 한-일 합작 첩보영화 <케이티>(KT)가 sbs에서 오늘밤 방송될 예정이고, 내일 유료TV 외국어 영화 채널 <월드 무비스>(World Movies)에서는 무협영화 <비천무>가 2주째 방영될 예정이다. 물론 매주 이런 일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호주의 한국계 인구가 소수임을 감안한다면 공정하게 모습을 드러낸 것이라고 볼 수 있다.

1990년대 대부분의 한국영화 배급업자들은 (1900만명 인구가 있는) 호주에서 사용 가능한 자금과 (거의 3억 인구가 있는) 미국이나 (6천만 인구가 있는) 영국같이 인구가 더 많은 영어권 국가의 것 하고 구분짓지 못하는 것 같았다. 그 결과, 한국영화를 판매하는 회사들이 요청한 가격은 터무니없는 것으로 비쳐졌고, 호주시장을 봤을 때 재정적인 자살행위와 같아 보이기도 했다. 그렇지만 세계가 한국영화의 존재를 더 잘 알게 된 것과 마찬가지로, 한국 영화사들 역시 호주 방송사들이 적절히 지불할 수 있는 가격을 현실적으로 파악하기 시작한 것 같다. SBS의 현재 영화 구매 담당 브레난 워런은 “우리는 돈을 많이 제의하지는 않는다”고 솔직하게 말한다. “그렇지만 배급업자들을 직접 만나는 것은 도움이 된다.” 물론 이것도 사실이겠지만, 1998년이나 1999년 부산국제영화제에 참가한 SBS 스탭에게 도움이 되지 않은 것도 덧붙여야 할 것이다.

호주인이 한국영화를 볼 수 있는 통로- 호주의 3대 영화제

<인정사정 볼 것 없다>

그래서 한국어를 못하는 호주인이 한국영화를 볼 수 있는 주된 기회는 영화제를 통해서다. 확실히 제일 많이 한국계 인구가 있음에도, 시드니에서 열리는 영화제는 호주의 3대 영화제 중 열정이 제일 저조한 편이었다. 브리스베인 국제영화제의 프로그래밍은 항상 아시아 영향이 강한 편이었고, 멜버른 국제영화제 역시 한국영화를 아주 잘 나타냈다.

올해 시드니 영화제는 6월11부터 26일까지 개최됐고, 김기덕 감독의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봄>을 비롯해 <살인의 추억> <스캔들-조선남녀상열지사> <바람난 가족>, 그리고 옴니버스 영화 여섯개의 시선>을 상영했다.

브리스베인 국제영화제(7월27일∼8월8일)는 올해 <바람난 가족>과 <사마리아>를 비롯해 아직 지명되지 않은 두편의 한국영화를 상영할 예정이다. 또 한국 다큐멘터리 <송환>을 상영할 것이다. 지난 몇년간 그래왔듯이, 호주에서 한국영화의 주요 쇼케이스는 멜버른 국제영화제(7월21일∼8월8일)다. 이 도시에서 볼 수 있는 한국영화의 메뉴는 훨씬 더 풍부하다. 영화제는 김기덕의 마지막 두 작품 <봄 여름…>과 <사마리아>와 함께 최근 칸 수상작 <올드 보이>와 <바람난 가족> <내츄럴 시티> <실미도> <장화, 홍련> <여자는 남자의 미래다> <살인의 추억> <청풍명월> <여섯개의 시선> 등을 상영할 것이다.

<올드보이>

한국영화를 선보이는 또 다른 호주 영화제는 시드니의 아시아태평양 영화제다. 나머지 세 군데보다 훨씬 작은 영화제지만, 시드니 아시아태평양 영화제는 2000년도 첫 영화제 개막작 <인정사정 볼 것 없다>를 상영했을 때부터 항상 강하게 한국에 포커스를 맞춰왔다.

한국인이 아니면서 호주에서 한국영화를 좇는 사람들은 작지만 커가고 있는 집단이며, 어떤 때는 모두가 호주에서의 주된 한국영화 전문가인 것처럼 자처하는 것 같을 때도 있다. (필자마저도!) 확실한 것은 부산국제영화제가 호주에 한국영화에 대한 인식을 늘리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는 것이다. 부산국제영화제 없이 우리 중 대부분은 할 얘기가 없을 것이다.

한국영화와 호주 관객 사이에는 접점이 필요

한국영화가 호주 영화제 순회로 밖의 관객들의 관심을 자극하려면, 일종의 교차로 같은 요소가 요구된다. 무엇인가 이국적일 만큼 다르면서도 모든 경계를 초월할 만큼 정서적인 힘이 큰 것 말이다.

필자는 <공동경비구역 JSA>가 그 영화가 될 줄 알았는데, 틀렸다. 어쩌면 <집으로>도 UIP쪽에서 좀 공격적인 마케팅을 했다면 될 수도 있었겠지만, 그 다국적 기업의 호주 지사는 너무 게을렀던 것이다. 대신 UIP는 자막 없는 프린트를 전문으로 다루는 작은 배급업자한테 그 영화를 맡겼다. 또 마치 한국인이 아닌 사람들 사이에서 우연히 히트치는 것도 막겠다는 식으로 UIP는 계약상으로 그 한국인 회사가 영문 신문에 광고를 내지 못하게 하기까지 했다.

뉴질랜드에 본부를 둔 배급업자인 리알토는 <내츄럴 시티> <살인의 추억> <올드 보이> 등의 판권을 샀다. 2004년에 개봉 예정일을 둔 영화는 <올드 보이>밖에 없지만, 이 한편이 성공한다면 다른 작품의 개봉도 곧 이어질 것이다. 하지만 할리우드의 거대 조직이 계속 앞으로 굴러가는 만큼, 단 한편의 실패작만 나타나도 “한국영화는 호주에서 안 된다”는 생각이 다시금 양식화된 지혜처럼 되기 십상이다.

한국영화에 끌리는 세 가지 이유 - 한국영화의 치명적인 매혹

한국영화에 끌리는 이유는 무엇일까? 위험한 질문이지만 어느 곳에서 왔든 좋은 영화의 애호가로서 질문을 더 적절히 바꿔 말하면 “오늘날 한국영화의 무엇이 외국인들마저도 그 진가를 알아볼 수 있을 정도로 흥미로운 것인가?”

필자는 1999년 이전에 한국영화를 드문드문 보긴 했지만, 특별히 인상적인 것은 못 봤다. 이명세 감독의 <인정사정 볼 것 없다>는 새로운 영화의 세계를 열어줬는데, <송어>와 <박하사탕>과 나란히 본 것이 한편에 그치는 신기한 히트 정도가 아니라 탐구할 만한 가치가 있는 국가 영화라는 것을 깨닫게 했다. 시드니의 한국영화 비디오 가게들을 급습하면서 이전에 <나의 사랑, 나의 신부> 같은 이명세 영화들뿐만 아니라 전설적인 <쉬리>나 <투캅스> 등을 보면서 한국 감독들이 예술영화뿐만 아니라 장르의 요건도 꽉 잡고 있음을 이해하게 됐다. 1999년 이전에 내가 한국영화들을 잘못 골라 보고 있었던 것이 명백해졌다.

한국영화의 장점 : 기술적 우수함 + 배우의 연기력 + 솔직한 정서

이 모든 영화의 공통점은 기술적인 우수함이었고, 이는 문화적 경계의 침범을 더 수월하게 해준 것이다. 모든 국가의 영화는 어느 한 시점이 되면 열기가 가시게 마련이다. 그런데 내일 당장 모든 한국영화들이 형편없어진다 해도 겉보기엔 멋질 것이라고 거의 단언할 수 있다.

그렇지만 <집으로>(거의 다큐멘터리 같은 분위기에 비전문가들을 출연시켰음에도 너무도 완벽한 작품), <눈물> <플란다스의 개> 등과 같이 세련되지 않은 작품들마저도 기술적인 한계점을 넘어선 장점이 있다.

한국 배우의 연기력 질 또한 인상적이었다. 박중훈, 안성기, 강수연, 송강호 등은 스크린에서 놀라울 정도다. 이 모든 배우들은 (그리고 다른 이들도) 거의 눈길을 줄 수밖에 없게 한다. 필자는 작가주의에 기우는 편이고 임권택, 김기덕 감독 같은 이들의 작품을 즐기지만, 실질적이지 못한 연기만큼 감독의 노고를 침식하는 것은 없다. 질 높은 연기가 갖춰지면 연출자가 다뤄야 할 문제들 반쯤이 풀리는 것이다.

그런데 필자가 한국영화를 좋아하는 것을 집약적으로 보여주는 영화는 <공동경비구역 JSA>이다. 장르적 요소가 강하고, 강렬하게 정치적이며, 흠잡을 데 없는 연출력에 원숙한 연기력을 지녔으면서도 인상적인 액션 요소들이 있는 가운데 압도적인 슬픔과 따뜻함과 진정한 위트의 순간들이 있다.

그렇지만 필자가 대부분의 한국영화에서 볼 수 있고 또 좋아하는 것이 있다면 (그리고 <공동경비구역 JSA>는 최근 몇년간 어디서 왔든 최고의 영화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한국 민족이 보인다는 것이다. 필자는 외부인으로서 밖에서 안을 쳐다보는 상황이라 한국인의 정서를 이해한다고 자처할 수 없지만, 스크린에서 보이는 모습은 한국을 방문하고 한국인들을 만날 때 접하는 것과 일치한다(이는 다른 나라에 꼭 해당하는 사항이 아니다). 밖에서 보면 한국영화는 솔직하게 느껴진다. 어떤 나라의 영화는 더 일관성 있게 시적이거나 유머러스한데, 솔직함은 예술과 엔터테인먼트를 부양하는 것이고, 한국영화가 그것을 유지할 수 있는 한 필자는 장르와 상관없이 수준 높은 한국영화가 번창할 것이라 확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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