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n’t It Cool News.Com 2003년 12월 9일 <올드보이>
관객에게 연발 사격을 해대는 놀라운 영화 - 해리 놀즈/ AICN 운영자
어이 여러분, 해리입니다… 누가 박찬욱의 작품이 뭐라고 얘기해준들 별 도움은 안 됩니다. 그는 오늘날 활동하는 세계적인 영화인 가운데 안 알려진 최고의 감독입니다. 천재랍니다. 한국에서 온 작품들은 뛰어난데, 그중 그의 작품들은 최고 전성기의 프리드킨이나 스코시즈나 폴란스키에 버금갑니다. 얼굴 표정 하나 안 변하고 장담할 수 있습니다. 올해, 아니 앞으로 수년간 미국에서 나올 현대물들보다 광년은 앞서요. 그야말로 위대한 영화를 사랑한다면 이 영화를 찾아내서 치아보호대를 끼세요. 정말 이빨 날아갈 정도로 한방 맞을 테니까!
박찬욱에 대해 많은 얘기를 들었었다. 대부분은 Ain’t It Cool 단골들한테. 지난해 <복수는 나의 것>에 대해 논의가 활발했었는데 볼 기회가 없었다. 지금 와서는 왜 진작에 찾아보지 않았는지 후회막심이다. <올드보이>는 만든 이의 다른 작품들도 찾아보고 싶게 만드는 그런 영화다. 내가 앨프리드 히치콕에 대해 들어본 적 없던 12살에 처음 <북북서로 진로를 돌려라>를 봤던 그때처럼. 이 감독의 다른 작품들을 찾아보고 최대한 빨리 보고 싶어 마음이 급해지는 것이다.
<올드보이>는 바로 그런 영화, 모든 면에서 놀라운 영화이다. 시작은 너무나 간단하다. 한 남자가 납치되어 15년 동안 감금당한 채 외로움에 서서히 미쳐간다. 해설이나 배경설명이 거의 없다. 박 감독은 대신에 힘있게 죽 밀고 나가고 주인공 오대수(최민식이 눈부신 연기를 보여준다)가 이야기를 알아가는 동시에 관객에게도 그 전모가 드러나도록 하고 있다. 그리고 그 이야기란 정말 대단한 이야기다. 줄거리를 너무 깊이 파고들 거란 걱정일랑 마시라. 이 영화는 발견해서 즐기고 소화시킬 그런 작품이다. 줄거리를 너무 많이 밝혀주는 건 이 영화를 찾아보려는 이에게 못 할 짓일 거다. 그리고 말이 나온 김에 말이지 자존심 있는 영화광이라면 마땅히 찾아봐야 할 테다.
<올드보이>의 핵심은 복수극이다. 억울하게 당한 사람의 심정과 게임의 끝을 보려는 그의 고단한 시련 속으로 파고드는, 사방으로 뻗어나가는 폭력적인 서사이다. 박찬욱은 주인공을 일련의 피눈물나는 사건들을 겪도록 한다. 그건 그가 모르는 이우진이라는 남자(유지태가 싸늘한 연기를 보여준다)가 조종하고 있는 게임이다. 이 작품은 마지막 5분에 악당이 밝혀지고 그 행태에 대해 깔끔하게 설명을 종합해서 제공해주는 그런 영화가 아니다. 박찬욱은 악한을 일찍이 드러내고 오대수가 영화 내내 그가 누구인지, 왜 15년 동안 자신을 괴롭혀왔는지 어렵게 알아나가도록 만든다.
박찬욱은 솜씨가 좋은 감독이다. 생생한 감정, 거친 분노, 순전한 고통의 장면을 전달해낼 줄 안다. <올드보이>의 인물들은 비극적이고 어딘가 결함이 있다. 이 점이 이 영화를 도저히 거부할 수 없게 만든다. 박찬욱은 다른 감독 같으면 얼굴 돌릴 순간들을 눈 하나 깜짝 안 하고 그대로 보여준다. 오대수가 장도리로 간수의 이를 뽑는 고문을 하는 것을, 박찬욱은 그대로 보여준다(이를 지켜보기란 제길 고통이다). 뒤이어 오대수가 바로 그 장도리 하나를 무기로, 깡패 무리한테 당할 때도 남김없이 보여준다. 하지만 분할해놓는 식의 전통적인 싸움장면이 아니라 적당한 미디엄 숏 하나로 말이다. 그렇게 아슬아슬 도박을 하면서도 대부분의 경우 판을 건지는 이 영화에는 뭔가 만족스러운 데가 있다. 이 영화를 망칠 수 있는 부분들이 정말 많았다. 논란거리의 내용이 오버연기로 돌아설 수 있는 부분들, 실력이 조금이라도 덜한 감독이었다면 샛길로 빠져버렸을 비틀고 꼬인 이야기 전개 같은 것 말이다. 박찬욱은 오대수처럼 장도리를 치켜들고 마무리해낸 것이다.
그런데 정말로 이 영화는 연발사격을 해대는 영화이다. 놀라운 출연진, 재주가 좋은 감독, 흥미진진한 촬영, 뛰어난 각본이다. 이 영화는 관객이 있을 자격이 있고도 남는다.
<버라이어티> 2004년 2월 16일자 <사마리아>
‘죄’에 대한 차분하고 초월적인 접근 - 데릭 엘리/ 영화평론가
<봄 여름 겨울 가을 그리고 봄>의 영적 관문을 통과한 한국의 김기덕 감독은 열 번째 작품인 <사마리아>로 더 성숙하고 자신있는 관점을 유지한다. 성실한 10대 딸이 부업으로 몸을 팔고 있다는 사실을 버거워하는 한 경찰에 대한 다소 추상적인 이야기는 더 공격적이던 김기덕의 전작, 특히 <나쁜 남자>(2001)의 주제들을 많이 담아내고 있는데, 강렬한 소재가 예전보다 침착하고 초월적인 방식으로 다뤄지고 있다. 예술영화 팬들은 <사마리아>를 진흙 속 진주로 여기게 될지 모르나 일부 관객은 김 감독의 색다르고 무비판적인 접근을 여전히 어려워할 수도 있겠다.
<나쁜 남자>가 여대생에게 복수하려고 창녀로 만들어버리는 남자를 다루었다면 이번 영화는 거의 그 이면을 보여주는 것 같다. 여기서 (정확한 나이가 끝까지 밝혀지지 않는) 주인공 여고생은 친구의 죽음에 대한 죄책감을 덜겠다는 이유만으로 남자들과 섹스를 한다. 고통은 거의 그 아버지의 몫이다. 영화가 특정 종교와 무관하긴 하지만 죄, 속죄, ‘성스러운 창녀’ 증후군 같은 종교적인 테마가 꽤 다루어지고 있어서 천주교 같은 서구의 신앙체계와 연관지어볼 수 있다.
각각 30분짜리 세부로 이루어진 영화는 한 매춘여성의 손님들이 모두 불교 신자가 되었다는 인도의 전통 이야기인 <바수밀라>에서 출발한다. 유럽여행 갈 돈을 모으고 있는 여진(곽지민)과 단짝 재영(서민정※)이 등장한다. 예쁘고 만사에 낙천적인 재영은 돈을 위해 여관방에서 남자들과 자는 건 아무렇지 않아 하고(“남자들은 섹스할 때 다 애기 같거든”) 여진은 재영의 매니저 역할을 한다.
여진은 상대남자들이 다 “개새끼”라고 생각하고 친구의 몸을 만진다는 것에 불편해하지만 재영은 만남을 즐기고 그중 한 사람인 음악가(오용)한테 반한다. 경찰의 현장단속 중 재영이 창문으로 뛰어내리고 여진이 피흘리는 그녀를 병원으로 데리고 간다. 재영의 마지막 소원은 음악가를 다시 보는 것이다. 친구에 대한 애정으로 여진은 껄끄러워하는 손님이 죽어가는 재영을 보러가게 하려고 자신의 처녀성을 바치고 만다.
김기덕 감독의 감정적 극단의 세계에 처음 발을 들여놓는 사람들은 이쯤 되면 영화에 공감하거나 배척할 것이다. 그의 전작들에 비하면 소재가 상당히 다른 방식으로 다루어지고 있다. 현명하게도 김 감독은 섹스장면은 보여주지 않는 것으로 처리했고 공원에서 같이 놀거나 목욕탕에서 함께하며 우정을 다지는 소녀들을 그려내는 장면들에는 (순하고 서정적인 음악과 함께) 부드러움이 깃들어 있다.
한국의 가을이 갖는 서늘하고 강한 빛에 잠겨 있는 영화의 시각적 스타일은 단순하지만 다소 추상적인 느낌을 주어서 관객이 다가가기만 한다면 진행되는 사건들은 받아들일 만하다. 영화 내내 김 감독은 그의 전작에서 이어지는 관객의 기대를 갖고 논다. 다음에 무슨 일이 전개될지 작가 겸 감독인 그가 예전의 더 격렬한 스타일로 돌아갈지 알 수 없게 한다.
(‘성모 마리아’와 ‘사마리아인’을 동시에 연상시키는) <사마리아>라는 제목의 2부에서 여진은 재영이 번 돈을 손님들에게 전부 돌려주기로 작정한다. 그 결과 여진은 그들과 자고 나서 어리벙벙한 그들에게 관습과는 정반대로 돈을 내주는, 아이로니컬하게 웃기는 장면들이 나온다. 그러나 중간쯤 와서는 영화의 초점이 홀아비인 여진의 아버지 영기(이얼)로 돌아간다. 그는 잔뼈 굵은 경찰로 우연히 자기 딸이 매매춘으로 학교를 결석하고 있다는 것을 발견하고, 그녀는 모르게 거리에서 손님들을 하나씩 대면한다.
여기서, 그리고 마지막 부분(<소나타>)에 영기는 자신이 알고 있다는 사실을 밝히지 않고 여진이 몰래 저지른 행동을 고백할 기회를 열어놓으면서, 긴장이 최고조에 이른다. 마지막 순간까지 관객은 아버지와 딸이 자신들이 품고 있는 감정의 수류탄의 핀을 뽑을 것인지 손에 땀을 쥐며 지켜보게 된다.
두 여주인공 곽지민과 서민정은 실제로도 고등학생인 초보 연기자로서 어려운 배역을 훌륭하게 소화해낸다. 서민정은 재영이 엿보이는, 살짝 광기어린 순진함과 솔직함의 조화를 정확하게 전달하여 영화의 약간 초현실적인 차원에서 재영을 개연성 있는 인물로 그려내고 있다. 재영보다는 평범하게 생겼지만 성실해 보이는 겉모습 속에 날카로운 혀를 숨기고 있는 여진을 연기하는 곽지민은 영화가 전개됨에 따라 상당히 폭이 넓어지는 모습을 보인다. 출연진 중 유일하게 알려진 얼굴인 이얼(<와이키키 브라더스>)은 차분한 아버지 연기로 강렬한 인상을 주고 있다.
기술적인 측면에서 영화는 김기덕의 초기작으로 돌아가 간소하고 꾸밈없는 저예산식이다. 본인이 관람한 판에는 대화장면에서 가끔씩 소리가 없어지는 경우가 발견되었으나 쉽게 손볼 수 있는 부분들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