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1]
<씨네21>의 추석 선물세트 [4] - ‘귀향’을 다룬 DVD타이틀 6편
2004-09-25
글 : 김종철 (익스트림무비 편집장)
글 : 이용철 (영화평론가)
글 : 조성효
‘귀향’ 소재 다룬 DVD 타이틀 6편, 가족에게 말해주세요 “사랑한다고”

<마빈스 룸> Marvin’s Room

1996년 l 제리 잭스 l 98분 l 1.85:1 비아나모픽 l DD 5.1 영어 l 한글, 영어 자막 l 스펙트럼

베시는 아버지와 고모를 모시면서 독신으로 살아왔다. 돌아가신 엄마처럼 백혈병에 걸린 그녀는 20년간 헤어져 살던 여동생 그리고 아이들과 재회한다. <마빈스 룸>에 등장하는 가족은 산산이 부서지고 초라할 뿐 새로 가족을 이루기엔 힘들어 보인다. 침대에서만 지내는 병든 아버지와 TV 속 세상에 빠진 철없는 고모, 마음의 문을 열지 않는 아이들 앞에서 두 자매는 오랜 세월 미워하고 무관심했던 자신들의 모습을 마주한다. 존재 그 자체로만 가족이 될 수는 없는가 보다. 현실은 서로가 서로에게 짐이 되기만 하는데, 힘들게 보낸 세월 속에 얻은 지혜와 사랑으로 그들을 묶으려는 베시의 노력이 아름답다. 베시의 아버지 마빈의 방에선 거울이 마법을 부린다. 영화의 마지막, 거울로 비춘 햇살을 좋아하는 아버지 옆으로 일가족이 둘러서 있다. 작은 기적을 이룬 그 방에서 우린 가족간에 나눌 수 있는 최고의 선물이 사랑임을 깨닫게 된다. 쉽지만 모르고 지내는 게 진실이다. 아카데미 주연상에 빛나는 다이앤 키튼, 메릴 스트립, 로버트 드 니로와 레오나르도 다카프리오 등 배우들의 앙상블이 좋은 <마빈스 룸>은 모스크바영화제 대상 수상작이다.

<아브라함 아저씨> Monsieur Ibrahim et les fleurs du Coran

2003년 l 프랑수아 듀페롱 l 95분 l 1.85:1 아나모픽 l DD 5.1 프랑스어 l 영어 l 콜럼비아(미국)

1963년 파리. 어린 모세에겐 어머니가 없다. 애정이 있었던 건 아니지만 아버지마저 실직 뒤 약간의 돈만 남긴 채 집을 나간다. 이제 모세에게 남은 건 집근처 구멍가게의 아브라함 아저씨(오마 샤리프)뿐이다. 삐뚤한 성격의 모세에게 그는 “행복이 미소를 만드는 게 아니라 미소가 행복을 만든다”고 얘기하며 기꺼이 아버지가 되어준다. 그러던 어느 날 가게 앞에서 <경멸>을 촬영하던 고다르와 브리지트 바르도 (이자벨 아자니)를 보던 아브라함은 ‘율리시스’를 생각했음인지 모세와 함께 고향 터키로 떠날 것을 제안한다. 빨간색 컨버터블과 함께 스위스, 알바니아, 그리스를 지나며 아브라함은 모세에게 삶에 대해 이야기해준다. 마침내 터키에 도착한 두 사람. 결국 아브라함은 터키에서 평화로운 죽음을 맞이하고 모세는 파리로 다시 귀향하여 아브라함의 구멍가게를 맡는다. 이름은 이슬람식의 모모로 바꾼 채…. 에릭 에마뉘엘 슈미트의 자전적 소설을 영상화한 영화는 지난해 베니스영화제 비경쟁부문에 초청받아 관객으로부터 뜨거운 반응을 얻었다. 김기덕의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봄>과는 또 다른 형태의 순환구조 속에서 영화는 인생을 설법하고 종교간의 경계를 허물어버린다(영화 속 주인공 이름이 아브라함과 모세인 것도 그 때문). 60년대의 주옥같은 음악을 O.S.T로 사용한 사운드가 흥겨우며 DVD에는 오마 샤리프의 구수한 코멘터리가 수록되었다.

<사국> 死國

1999년 l 나가사키 슌이치 l 102분 l 1:85:1 아나모픽 l DD 5.1 l 한글 l 비트윈(1장)

15년 전 야쿠무라 마을을 떠나 도쿄로 떠났던 히나코. 그녀는 어린 시절 함께 자란 친구 사요리와의 만남을 기대하며 마을 축제가 한창인 고향으로 돌아온다. 그곳에서 히나코는 오랜 친구였던 후미야와 재회하며 뜻밖의 이야기를 전해 듣는다. 반도 마사코의 동명의 원작소설을 영화화한 <사국>은 작가의 고향이기도 한 시코쿠 지방을 배경으로, 사랑과 질투라는 복잡한 감정의 실타래를 조금씩 풀어나간다. 영화는 남녀간의 애정에 관한 이야기를 담고 있지만, 기실 영화에서 가장 매혹적인 순간은 시코쿠 지방의 아름다운 자연 풍광을 접하면서 자연스럽게 일어나는 고향에 대한 향수다. 히나코가 마을 곳곳을 걸어 다니면서 머무는 시선 너머에는, 어린 시절의 소중한 추억들이 빼곡히 자리잡고 있다. 푸근한 산골 마을의 정취, 바닥이 들여다보일 정도로 깨끗한 강물, 우거진 수풀, 그리운 얼굴들이 15년의 세월이 지났음에도 어제 일처럼 선명하게 떠오른다. 여기에 서정적인 음악의 선율을 통해, 고향 마을에 대한 그리움의 감정을 한껏 자극한다. 특히 <원령공주>의 주제가로 유명한 메라 요시카즈가 부른 영화의 엔딩곡 <나는 비가 되고 별이 된다>를 듣노라면 마음은 벌써 고향으로 향하는 듯하다.

<샤워> 洗澡

1999년 l 장양 l 94분 l 1.66:1 아나모픽 l DD 5.1, 2.0 베이징어 l 영어 자막 l 콜럼비아(미국)

예전엔 명절이 되면 동네 목욕탕이 사람들로 꽉 차곤 했다. 사람들이 우글거리는 틈새에서 움직이는 건 무척이나 힘들었으며, 그 와중에 옷 벗은 채로 인사를 나누는 어른들이 신기하게만 보였다. <샤워>에 나오는 목욕탕 ‘청수지’는 예전 우리네 공중목욕탕을 다시 기억하게 한다. 사람들간에 대화가 오가고, 놀이와 장기를 즐기며, 안마를 받는 그곳은 일종의 동네 휴게소이자 모임의 장소다.

남자가 집으로 돌아온 사연은 이렇다. 정신지체자인 동생이 보낸 그림엽서엔 아버지가 돌아가신 것처럼 보였는데, 알고 보니 그 엽서는 형을 몹시도 그리워한 동생이 생각해낸 것이란다. 그리고 돈과 성공을 좇아 집을 떠났던 남자는 베이징 변두리의 목욕탕에서 인생의 갈림길에 선 자신을 보게 된다.

<샤워>는 현재 중국영화의 두 경향을 대표하는 장이모나 지아장커의 작품과는 또 다른 모습이다. 소박하면서도 대중성을 잃지 않고 있는 <샤워>는 그야말로 잔잔한 감동을 안겨준다. 근대화에 떠밀린 지금의 중국 속에서 아주 옛날 전설 같은 이야기와 부자지간의 정을 연결하는 감독의 마음이 따스하게 다가온다. ‘같이 있는 것만큼 중요한 건 없다’는 대사가 그래서 살갑다.

<나는 집으로 간다> Je rentre a la maison/I’m Going Home

2001년 l 마뇰 드 올리베이라 l 83분 l 1.66:1 비아나모픽 l DD 2.0 프랑스어 l 영어 l 이미지(미국)

영화의 역사만큼이나 나이를 먹은 올리베이라 감독은 4년 전 영화 한편을 찍으며 묘한 경험을 하게 된다. 이탈리아어를 할 줄 안다던 브라질 출신 배우가 촬영 도중 그만 언어장벽에 부딪혀 집에 가버린 것. 이 황당한 경험은 바로 다음 영화의 소재가 된다. 갑작스런 사고로 딸 내외와 아내를 잃어버린 질베르 발랑스(미셸 피콜리)는 어린 손자와 함께 소일거리를 보내는 존경받은 노배우다. 수년간 마음에 드는 시나리오가 없던 차에 그는 미국의 거장감독(존 말코비치)이 <율리시스>를 영화화한다는 말을 듣고 출연을 결정한다. 문제는 <율리시스>가 영어더빙 영화였다는 점. 수많은 NG를 낸 뒤 발랑스는 결국 “집으로 가서 쉴래”라는 말을 남기고 세트를 떠나버린다. 여기서 감독은 무성영화 형태로 영화를 연출하고 연극을 삽입함으로써 영화의 본질과 초심으로 돌아가고자 한다(<나는 집으로 간다>는 어린이를 출연시켜 만든 감독의 장편 데뷔작 <아니키 보보>(Aniki Bobo)처럼 마지막을 어린이의 시선으로 끝맺는다). 2분 이상 미셸 피콜리의 다리만 보여주는 롱테이크는 놓치지 말아야 할 장면. 고향을 등졌던 오타르 요셀리아니가 최근 집 나가는 영화들을 찍었다면 최근 고향 포르투갈 못지않게 외지에서 많은 작업을 하고 있는 올리베이라는 귀향 혹은 귀가하는 영화들을 찍고 있다. DVD에는 뉴욕영화제 집행위원장 리처드 페나의 코멘터리와 감독의 인터뷰가 수록되었다. 시네필인 당신, 이 영화를 이미 DVD로 보았다고? 그렇다면 잠시 플레이어를 끄고서 한가위 동안 발랑스 할아버지처럼 가족들과 쉬는 것이 어떨까?

<레인맨> Rain Man

1988년 l 배리 레빈슨 l 133분 l 1:85:1 아나모픽 l DD 5.1 l 영어 l MGM(1장)

오랜 시간 집을 떠나 돌아올 생각조차 하지 않던 아들이 집을 찾을 때는 어떤 이유에서일까? <레인맨>에서 톰 크루즈가 연기한 찰리는 돌아가신 아버지가 남긴 유산을 상속받기 위해서 집으로 돌아온다. 그의 첫 번째 귀향은 불순한 생각 때문인데, 예상치 못한 결과가 그를 맞이한다. 자신은 전혀 모르고 있었던 형 레이몬드가 대부분의 유산을 물려받게 된 것이다. 이제 찰리는 두 번째 귀향을 시도한다. 첫 번째와 마찬가지로 동기는 불순하지만, 결과는 전혀 다르게 나타난다. 자폐증을 앓고 있는 형을 이용해 재산을 모두 가로채는 것이 원래 계획이었지만, 그는 형과 함께 여행하면서 같이 먹고, 자고, 일방적으로 얘기를 하는 평범한 과정을 통해 돈보다 더 소중한 것을 배우고 깨닫게 된다. 각본의 뛰어남과 자폐증을 앓고 있는 형 레이몬드를 연기한 더스틴 호프먼의 명연기는 ‘피를 나눈 가족보다 더 소중한 게 있을까’란 당연한 진리를 억지스러움이 아닌, 자연스럽게 마음에 와닿게 한다. DVD 타이틀은 일반판도 있지만 스페셜 에디션을 권한다. 아무래도 부록이 좀더 많은 쪽이 더 낫지 않을까? 화질은 무난한 편이지만, 돌비디지털 5.1채널로 듣는 엘튼 존의 노래가 유난히 인상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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