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1]
부산국제영화제 결산 [6] - <피와 뼈>의 최양일 감독
2004-11-08
글 : 정한석 (부산국제영화제 프로그래머)
사진 : 조석환

“기타노 다케시가 아니면 이 영화는 없었다”

아시아 감독과의 조우1 - <피와 뼈>의 최양일 감독

최양일은 <달은 어디에 떠 있는가>로 한국 관객에게 잘 알려져 있는 감독이다. 그러나 그 이해에는 오해도 섞여 있다. 일본 내 재일한국인 문제를 풍자적으로 풀어나가는 감독이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지만, 그의 관심사는 그보다 더 굽이치는 편이다. 2000년대 들어 최양일은 감옥을 무대로 한 <형무소 안에서>로 “조용한 웃음”이라 부를 만한 요소를 표현해보려 노력했고, 한편으론 <퀼>처럼 “감정의 고양도, 형식의 정형도 없는 방식으로 개와 인간의 공생관계를 생각해보는 영화”에 관심을 표했다. 이런 근황을 두고 일본의 평단은 최양일이 “전향했다”는 말들을 하지만, 그의 판단은 다르다. “흔히 일본에서는 나이를 먹을수록 좁고 깊게 주제를 가져가면서 그걸 평생의 일로 삼는 경우가 있는데, 나는 예외인 것 같다. 왔다갔다하는 시계추, 또는 어디로 튈지 모르는 핀볼 같다는 생각을 한다”고 그는 말한다. <달은 어디에 떠 있는가>에 이어 양석일의 소설을 다시 원작으로 하고 있는 새 영화 <피와 뼈>에서 일각을 볼 수 있을 것이다. 예컨대 <피와 뼈>를 재일조선인 1세대 김준평에 관한 이야기라고만 말한다면, 그건 민족 정체성에 관한 질문으로 가득 찬 영화라는 오해를 일으킬 것이다. 그러나 최양일은 지금 거대한 역사의 시류에조차 휘둘리지 않고 악마적 의지를 사방으로 뿜어내는 인물 자체에 매혹되어 있는 것처럼 보인다. 강간과 폭력으로 가족과 마을을 번성시키고, 또 지배한 김준평의 미스터리한 마적 개인사, 또는 생존본능에 가까운 악행에 영화는 140분간을 바친다.

-달은 어디에 떠 있는가>에 이어 10여년 만에 양석일의 소설 <피와 뼈>를 다시 영화로 만들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

=양석일의 원작은 시대배경에 대해서 굉장히 상세하게 기술되어 있는 역사소설, 또는 대하소설이라 할 만하다. 하지만, 그 소설을 충실히 재현하겠다는 생각을 한 건 아니다. 소설 안에서 내가 끌렸던 건 김준평이라는 인물이다. 김준평과 직접 관련있는 부분만 고려하고, 시대에 대한 규정은 손대지 않고 놔둔 편이다.

-김준평의 삶과 역사의 움직임 사이에 일정한 거리를 두겠다는 의도가 보인다.

=그렇다. 한 시대의 물결에 휩쓸린 피해자가 역설의 발로로 인해 폭력을 휘두른다고 이해하는 방식이 있을 수 있지만, 내가 그런 식으로 이해하거나 바라본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오히려 그와 상관없이 살아간다는 점에서 김준평의 캐릭터에 더 관심이 갔다. 시대상황이 가족에게 끼치는 영향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김준평 같은 경우는 그런 영향을 받았다는 것에 대한 자각조차 없는 사람일 거다. 그래서 그 인물에게 매력을 느끼기도 하는 것이다. 물론 가족과 개인이 시대의 영향하에 있는 것이 사실이지만, 그것을 자각하면서 살아가는 것보다는 오히려 당장 눈앞에 있는 생활과 인간관계에 더 중요한 영향을 받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한다. 사회적인 것에 영향받지 않을 수 없지만 좀더 직접적으로 살아남기 위해서 무엇을 하는가의 문제는 그와 좀 다른 것 같다.

-당신의 영화에서는 대개 ‘소란’이나 ‘소동’, 또는 ‘난투극’이라 부를 만한 싸움들이 벌어진다. 그 이유를 생각해보면, 집단과 개인의 관계, 마이너리티 내부의 생존문제, 세대간 간극의 문제 등이 화두의 중심에 있기 때문에 나오는 장면 설정인 것 같다.

=그런 면이 있는 것 같다. 마이너라는 표현도 썼지만, 주변부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은 그 중심에 있는 사람들보다 인간관계가 더 농밀해질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든다. 그런 농밀한 인간관계 안에서 벌어지는 희비극이 난투극이나 소란 등으로 자주 표현되는 것 같은데, 때로는 희극적인 액션으로 때로는 <피와 뼈>에서처럼 정말 못 볼 만한 리얼 폭력으로 나타날 수도 있다. 그 둘이 동거하고 있다는 사실이 스스로 싫다고 느껴지지는 않는다.

-물론 둘 사이의 우정은 이미 유명하지만, 기타노 다케시를 김준평으로 캐스팅한 과정과 이유를 직접 듣고 싶다.

=많은 사람들이 설명하지만, 어느 선 이상은 잘 모르는 기타노의 가슴속 암흑, 바로 그 부분이 아무에게도 설명하지 않고, 또 설명되지 않는 영화 속 김준평의 이미지에 어울릴 것이라고 느꼈다. 소설을 읽으면서 김준평 역을 할 수 있는 건 기타노밖에 없고, 만약 그가 수락하지 않았다면 이 영화도 없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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