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세대 감독들이 실패했던 부분에서 다시 시작한다”
아시아 감독과의 조우4 - <낮과 밤>의 왕차오 감독,/p>
왕차오는 이제 막 두 번째 장편영화 <낮과 밤>을 완성한 감독이다. 그러나 그는 데뷔작 <안양의 고아>로 중국의 현실을 포착할 수 있는 방식에 또 한 가지의 길을 추가한 사람이었다. 실업자와 창녀와 그녀의 아이를 통해 도시에서의 삶을 고찰해본 왕차오는 극한적인 롱테이크와 롱숏을 선호했다. 그 수준은 거의 고집에 가까운 것처럼 보인다. 특이한 것은 왕차오의 영화적 지향이 다른 6세대 감독들과는 좀 다르다는 사실이다. 그는 첸카이거의 영화에서 조감독을 맡았고, 나이로 치면 젊은 동세대 감독들보다는 조금 더 먹었다. 그런 영향도 있겠지만, 그는 독특하게 5세대 감독들이 가졌던 미학적 열망과 집착을 인정하는 편이고, 5세대가 변질되기 전에 갖고 있던 영화적 가능성을 현재의 지점에서 다시 시도해보려고 하는 드문 경우에 속한다. 이쯤에서 그는 다른 젊은 감독들과 차이를 보인다. 실제로 <안양의 고아>는 사회적 구조에 대한 정치한 질문보다 인간에 대한 현학적 질문이 확장될 가능성을 갖고 있었다. 그런 점에서 <낮과 밤>은 “산업 이행기에 놓여 있는 중국사회의 현실”을 배경으로 하고 있지만, 왕차오의 미학적, 철학적 관심사가 “인간 자체의 내면”, 혹은 원형적 고찰에 뿌리를 두고 있음을 증명한다. 그에게 현실의 포착은 인간의 풍경을 그려내기 위해 애쓰면서 저절로 동반되는 것이다. 그래서 자신이 속한 중산계급이 세 번째 영화의 질문이 될지도 모른다고 한다.
-제작 조건상 <낮과 밤>은 데뷔작 <안양의 고아> 때와 어떤 변화가 있나.
=<낮과 밤>은 중국과 프랑스의 합작영화다. <안양의 고아>를 만들 때 우리가 갖고 있던 것은 열정뿐이었다. 그러나 이 작품은 제작비도 100만달러 이상이고, 최고의 전문 기술력을 가진 스탭들이 만들었다.
-내몽골의 광산을 배경으로 하고 있는 이유는 무엇인가.
=광산의 인물들이 농업사회에서 산업사회로의 이행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여기에 살던 사람들은 원래 농민들이었는데, 그 지역에 광산이 생기면서 광부가 된 사람들이다. 이러한 신분의 변화는 지금 중국 현실에서의 외적인 변화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사회가 변해도 인간의 내면은 결코 변하지 않는다는 것을 말하고 싶었던 것이 더 크다. 주인공 광생은 징벌로 회귀를 거듭하는 시시포스와도 같은 인물이다.
-당신의 영화는 5세대가 보여줬던 초창기 미학과 형식의 가능성에서 다시 시작하려 한다는 느낌을 준다.
=그렇다. 나는 5세대 감독들이 실패했던 부분에서 다시 시작하려고 하고 있다. 국외에서 내 영화를 첸카이거의 <황토지>와 비슷한 점이 많다고들 한다. 내가 그 영화의 조감독을 했다. 그러나 <황토지>가 민족과 국가에 대해 말한 것이었다면, 내 영화들은 개인에 대해 말하고 있다. <낮과 밤>은 인간의 존재에 대해서까지 질문해보는 영화이다. 그게 차이다. 이 영화를 찍기 전에 <투게더>의 현장에 간 적이 있었는데, 내가 내몽골에서 영화를 찍는다고 하니까 첸카이거가 막 웃었다. 왜냐하면 <황토지>의 배경이 바로 그곳이기 때문이다. 물론 정확히는 다르지만, 두곳 모두 황허가 흐르는 곳이다. 사실, 인간의 내면심리를 표현하려는 영화는 5세대나 6세대 모두 찾아보기 힘든데, 바로 내가 바로 이 분야에 용감하게 뛰어든 것이라고 생각한다.
-차후의 영화들은 인물의 내면 안으로 더 들어갈 것인가, 아니면 현실로 다시 나올 것인가.
=두 가지 계획이 있다. 하나는 그전처럼 하층민들을 주인공으로 하는 것이고, 또 하나는 중산계급을 소재로 다루는 것이다. 이전에는 나도 노동자였다. 하지만, 지금은 중산층이라고 말하는 것이 맞을 것이다. 그렇다면 <안양의 고아>와 <낮과 밤>에서는 타인의 감정을 찍은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면서, 나의 감정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갖게 됐다. 자문해보았다. <안양의 고아>의 주인공 다강처럼 버려진 아이가 내 앞에 있다면 나는 그 아이를 과연 키우겠는가? 안 키울 것 같았다. 그러면서 갑자기 나 같은 중산계급의 문제가 더 심각한 건 아닐까 생각하게 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