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1]
제 9회 부산국제영화제 결산 [2] - 이윤기 감독의 <여자, 정혜>
2004-11-08
글 : 심영섭 (평론가)

여자의 상처를 이렇게 촘촘하게 그릴 수 있나

부산의 발견1 - 이윤기 감독의 <여자, 정혜>

살다보면 한번쯤은 꼭 마주치게 되는 그런 부류의 여자가 있다. 생수 먹을 때 굳이 마개에 입을 대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여자. 잘 정리된 책상을 보면서, 저 여자 마음도 저렇게 잘 정리되어 있을까 궁금해 지는 여자. 떡볶이를 먹고 수다를 떨다가도 집에 있는 고양이 땜에 일찍 들어가봐야 한다고 부스스 일어서는 여자. 늘 있는 듯 없는 듯하는 여자. 불행한지 행복한지 외로운지 심심한지 도통 모르겠는 여자. 그러나 가끔은 아주 가끔은 여러 번 보아둔 남자의 뒤를 쫓아가 ‘오늘 저녁식사 하러 우리집에 오지 않겠냐?’며 말을 걸 수 있는 여자. <여자, 정혜>는 조용하고 차분한, 간만에 만나는 낮은 목소리의 한국영화였다.

<여자, 정혜>를 보다보면 두번 놀란다. 한번은 근자 한국영화 중 보기 드문 여성주인공의 캐릭터가 갖는 정교함에 놀라고, 이거 틀림없이 여성감독의 솜씨다 싶어 필모를 뒤적이다보면 이윤기라는 남성감독의 이름에, 남성감독이 만든 여성영화의 치밀함에 놀라게 된다. <여자, 정혜>로 데뷔하는 이윤기 감독은 촬영현장을 공개하며 이 영화가 “비올 것 같은 하늘 색깔과도 같은 영화”라고 설명했었다. 아닌 게 아니라, 식물적인 정혜의 삶에 ‘햇볕은 쨍쨍 모래알은 반짝’ 하는 순간은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나 닦고 쓸고 먹고 자고, 멍하니 TV를 보는 정혜의 삶을 바라보노라면 여성관객이라면 누구나 뜯지 않은 생리대 같았던 20대 시절의 삶, 먼지는 없지만 도통 색깔이 드러나지 않는 평범한 ‘나’를 떠올리게 만드는 구석이 있다. 그 흐릿한 삶의 일상성 속에서, <여자, 정혜>는 서서히 한 여자의 상처와 외로움을 번져가게 만든다. 도통 어떤 모양인가 감을 잡을 수 없었던 마음의 무늬결이 깊숙한 상처의 울림으로 되돌아오는 순간, 왠지 마음이 울컥해진다.

그러니까 이 영화에는 ‘밖에 차 세우신 분 딱지 떼요’ 같은 일상의 풍경화도 있지만, 정작 볼 만한 것은 한 여자의 행동 저편에 자리잡은 기억의 파편들이 무심하게 의식의 표면으로 나타났다 사라지는 그 방식이다. 한 여자의 기억의 틈새를 미세하게 파고드는 이윤기 감독의 솜씨는 8억원의 예산이 무색할 만큼 정교하고 치밀하다. 여자는 병문안차 찾아간 병원에서 어머니의 죽음을 떠올리고, 문득 구두에 묻은 얼룩을 보고 신혼여행에서 첫날밤을 치르다 그냥 돌아와버린 것을 기억해낸다. 주인공은 끊임없이 무언가를 치우고 ‘닦지만’, 이 영화의 첫 장면 역시 화분을 정성껏 닦는 여자의 손길로 시작하지만, 영화를 보면 볼수록 이 영화가 촘촘하게 한 여자의 무의식을, 내면의 퍼즐 무늬를 ‘채워간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게 만든다. 특히 다큐멘터리에서 자주 쓰는 들고찍기 방식을 100% 활용한 화면은 녹색 빛깔을 머금은 정혜의 색감과 절묘하게 맞아떨어지며, 들고찍기에 관한 새로운 연출 교본을 마련해야 할 것 같은 생각이 들 정도로 관조적으로 이용되었다(감독은 이러한 자신의 작업방식을 ‘1m의 시선으로 누군가를 바라보는 방식’이라고 말한다).

의심할 바 없이 <여자, 정혜>는 부산에서 발견한 흙 속에 묻힌 진주 같은 영화이다. 이 영화는 여러 가지 면에서 영화 만들기의 정도를 걷고 있다. 우체국과 편의점 정혜의 집은 중요한 공간이지만 손때 묻은 사실감으로 튀지 않고, 종종 화면은 사람의 목소리 대신 TV에서 나오는 기계음으로 채워진다. 같은 여자라는 생물학적인 종을 부여받은 관객으로서, 휘황한 남성 판타지를 등지고 자신만의 빛을 가지고 살아가는 그 여자 정혜의 삶은 오래오래 부산 바다의 등대 빛과 함께 가물가물거릴 것도 같다. 무엇보다도 TV에서는 별다른 감흥이 없었던 김지수란 연기자를 재발견하는 기쁨. 온갖 변칙적인 어지러운 장기자랑이 난무하는 상업영화들 속에서 <여자, 정혜>는 잊혀지지 않는 여운을 남긴다. 또박또박 정성스럽게 내려쓴 내 친구의 글씨를 볼 때처럼, 그 결은 바르고 곱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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