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1]
제 9회 부산국제영화제 결산 [7] - 고레에다 히로카즈
2004-11-08
글 : 정한석 (부산국제영화제 프로그래머)

“오즈의 그늘에서 전진한다”

아시아 감독과의 조우2 - <아무도 모른다>의 고레에다 히로카즈

고레에다 히로카즈는 원래 시나리오 작가가 되기 위해 영화계에 뛰어든 사람이다. 그를 영화로 이끄는 데 주요한 계기를 마련했던 것은 20대 초반에 보았던 오즈 야스지로의 영화이다. 대학 신입생 때 오즈의 영화를 접했던 고레에다 히로카즈는 그전까지 몰랐던 이상한 형식의 힘을 느꼈다. 주인공의 의미없는 듯한 대사가 반복되는 가운데 어느 순간 리듬이 생겨난다는 것을 알아내고 궁금증은 더해졌다. 그리고는 그것을 모방하는 시나리오를 써보기 시작했다. 그의 20대 오즈 습작시기는 그렇게 갔다. 30살이 막 넘어가며 고레에다 히로카즈는 <환상의 빛>으로 데뷔한다. 그 첫 번째 영화는 수작이었지만, 오즈의 그늘을 벗어나지 못한 습작이었다. 그는 “내가 찍은 것이 정적인 느낌이라면 오즈의 영화는 표면적으로는 정적이지만 그 안에 역동적인 감정이 흐른다”고 뼈아프게 고백한 적이 있다. 그러면서 이제 자신이 추구할 태도는 오즈로부터 벗어나는 것이라고 다짐한다. 텔레비전 다큐멘터리를 만들던 시기의 자유분방한 감각으로 돌아가자고 스스로 종용한다. 이번에 부산을 찾은 그의 세 번째 영화 <아무도 모른다>를 보면 그 힘겨운 ‘독립’의 싸움이 진행 중이라는 사실을 엿볼 수 있다. 1988년 도쿄, 아버지가 서로 다른 네명의 아이들이 어머니에게 버림받고 아무도 모르는 아파트 한구석에서 몇 개월간을 버티며 살아가는 충격적인 사건이 있었다. 고레에다 히로카즈는 이 극영화를 정적인 다큐멘터리처럼 만들어냈다. 그렇다면, 이제 그는 오즈로부터 벗어난 걸까? 아직은 아닌 것 같다. 내년에 만들 시대극 <꽃보다 조금 더>에서 그는 오즈만큼 형식적인 영화에 도전해보겠다는 의욕으로 가득 차 있다.

-당시 이 사건은 일본인들에게 어떻게 받아들여졌나.

=그 사건이 일어났던 1988년 당시만 해도 지금처럼 빈번한 어머니들의 육아 포기 현상이 없었기 때문에 굉장히 충격적인 사건으로 받아들여졌다. 그건 도쿄에서만 일어날 수 있는 그런 사건이다. 많은 언론에서 다루어진 것은 아니지만, 나를 포함하여 몇몇 작가와 언론은 그 사건에 대해 강렬한 인상을 갖고 있다.

-어떤 동기로 시작했나.

=나는 이 사건이 일어난 도쿄에서 태어나고 지금도 그곳에 살고 있다. 주인공 아이의 눈을 통해 도쿄라는 도시를 그려내고 싶었다. 그러니까, 이 사건이 센세이셔널하긴 하지만, 영화의 중심은 이 소년이 만나고 헤어지는 성장과정에 있다.

-텔레비전 다큐멘터리 연출 경험이 있는 걸로 알고 있다. 그것이 극영화를 만드는 데에는 어떤 도움을 주는가.

=뭔가 세상에 일어나는 일에 관심을 갖고, 그것이 내 마음으로 들어와서 씨앗을 낳고, 그 사이에 물이 뿌려져서 점점 커지는 것이다. 지금까지는 다큐멘터리 감독 때와 별반 차이가 없다. 극영화로 그 꽃을 피우고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지금도 다큐멘터리 작업은 병행하고 있다.

-이 실화를 영화로 옮기면서 갖고 있던 각색의 원칙은.

=도입은 실화를 바탕으로 하고 있지만, 전체적으로 실화의 드라마화라고 받아들여지면 곤란할 것 같다. 실제 사건과 비교해보면 인물의 구성이나 연령 설정이 다르다. 버려진 네 아이들이 6개월간 어떻게 살았는지를 실제로 그러했던 것처럼 그려내자는 것이 아니었다. 상황을 가져오긴 했지만, 그것에 얼마나 접근할 것인가가 아니라 얼마나 떨어질 것인가를 고민했다. 그 점에서 이 영화는 재현드라마가 아니다.

-오즈를 벗어나기 위해 좀더 자연스러운 리얼리즘을 추구하겠다는 말을 한 적이 있다. 구체적으로 그 말뜻을 설명해달라.

=첫 번째 영화는 어쩔 수 없이 오즈를 의식하는 것에서부터 시작되었다. 두 번째, 세 번째 영화에서는 나만의 색깔을 가진 영화를 만들려고 노력했다. 그것이 바로 자연스러움의 문제였다. 그런데 그 시도들을 거치면서, 한번 더 오즈 감독의 형식에 대해서 생각해보게 되었고, 그전과 비교해 영역이 확장되었다. 그것은 처음 내가 의식했던 오즈 감독의 형식이나 위상과는 관계가 달라졌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래서 다음 영화인 시대극 <꽃보다 조금 더>에서는 좀더 인공적인 영화를 만들려고 계획 중이다. 이 시대극에서 오즈가 갖고 있는 그 부자연스러운 형식과 다시 한번 재회하게 될 것이다.

사진 장은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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