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1]
제 9회 부산국제영화제 결산 [3] - 노동석 감독의 <마이 제너레이션>
2004-11-08
글 : 변성찬 (영화평론가)

새로운 세대의 가능성을 보다

부산의 발견2 - 노동석 감독의 <마이 제너레이션>

이 영화는 어떤 ‘잃어버린 세대’에 대한 ‘놀라운’ 기록이다. 그 놀라움은 그들을 둘러싼 세상의 상투성과 그 상투성을 가로지르는 그들의 꿋꿋하고 새로운 태도 사이의 간극에서 비롯된다. 그 세대는 생각했던 것보다 잃은 것이 많다. 그러나 그들은 씩씩하고 꿋꿋하다. 그들의 일상은 정말 놀라울 정도로 테크놀로지에 둘러싸여 있다. 휴대폰, 컴퓨터, 게임기, 자동입출금기, 자동차, 그리고 무비 카메라. 그들은 그것들을 통해 세상과 접속하려 하지만, 그것을 통해 만나는 세상은 늘 그들을 배신하고 아프게 한다. 꼭 필요할 때 휴대폰은 응답하지 않는다. 또 꼭 필요할 때 자동입출금기도 반응이 없다. 인터넷은 거짓 응답만을 해온다. 그래도 그들은 세상을 원망하거나 비관하지 않는다.

재경(유재경)은 <고양이를 부탁해>의 그녀들을 떠오르게 한다. 그런데 그녀들보다는 한뼘쯤 성숙해 보이기도 한다. 무엇보다 그녀는 참고 기다릴 줄 아는 놀라운 인내심을 지녔다. 그녀는 ‘배 떨어지기’를 기다릴지언정, 그것을 ‘훔치려고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알고 실천한다. 그런데 배는 항상 뒤늦게 떨어진다. 그녀는 그가 흔들릴 때 ‘나쁜 짓 하지 마… 착하게 살자고!’라고 말해 줄줄 안다. 그리고 그를 위해서 ‘우리 빚’과 ‘내 빚’을 구분하자고 한다. 그리고, 병석(김병석)도 그녀를 위해 똑같은 것을 해준다. ‘하루 만에 잘려서 우울해진’ 그녀를 위로해주고, 그녀가 세상을 향해 위험한 도박을 하려 할 때 애정어린 충고를 해준다. 무엇보다 그는 ‘때려주고 싶은 형’밖에 없어도, 자신은 돈에 배신을 당한 적이 있을지언정 사람에게 배신당한 적은 없다고 믿는다. ‘가족’이 없는 그들은 서로에게 ‘유사가족’이 되어준다. 하지만, 가족이라는 이름하에 서로를 구속하려 하지 않는다. 그들은 아직 정주할 공간이 없으며, 길 위(자동차, 모텔, 공원)를 떠돈다.

병석은 영화감독을 꿈꾼다. 그래서 이 영화는 영화에 대한 이야기고, 영화 만들기에 관한 이야기가 된다. 하지만 그것은 매우 힘든 일이고, 위험하기까지도 한 일이다. 세상을 좀더 산 형들이 그것을 일깨워준다. 그들은 결혼 비디오를 찍을 때 자신만의 ‘스타일’을 꿈꾸는 것은 바보 같은 짓이며 아직 함께 일할 자격이 없는 것임을 훈계하고, 돈이 아쉬운 상태에서 ‘작품’을 찍으려는 것은 우스운 짓이며 자신의 일(성인 비디오 판매)이나 도우라고 조언한다. 그러나 병석이 아직 영화를 찍을 수 없는 것은, ‘무엇’을 찍어야 할지 아직 모르거나 그 ‘무엇’을 발견할 자신의 ‘눈’이 미숙하기 때문일 뿐이라고, 영화는 말한다. 그의 카메라는 찍으려는 파사체에게 거부당하거나(후배, 재경), 감히 아직은 찍을 수 없는 피사체와 만난다(공원 노숙자). 지금 그가 찍을 수 있는 것은 카메라를 응시하지 않는 무심한 피사체(공원 풍경, 강아지)이거나, 자신의 손과 발일 뿐이다. 그러나 그는 끝내 카메라를 포기하지 않는다. 중요한 것은 카메라의 성능이 아니라고 믿는다. 아직 그가 세상의 상투성을 벗어날 성숙한 ‘눈’을 갖지는 못했지만, 카메라는 언젠가 그가 그 상투성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해줄 수 있는 유일한 도구이고 희망일 것이기 때문이다. “내가 보지 못한 것은 없는 것”이지만, 그것은 ‘아직’ 그러할 뿐이다. 오늘 그가 그 카메라로 할 수 있는 것은 순수한 ‘유희’일 뿐이겠지만, 그것이야말로 자신만의 유목의 길을 발견하는 유일한 길이기도 할 것이다. 그는 ‘카메라와 차’ 없이는 살아갈 수 없다.

이 영화에서 컬러는 그 유희의 정신으로 찍은 것이고, 흑백은 그의 상투적인 일상과 미숙함이 ‘찍힌 것’이다. 그러나 그 유희와 미숙함의 간격은 감독의 세상과 영화에 대한 믿음과 인내심으로 견고하게 편집되어 있다. <마이 제너레이션>은, 영화를 영화이게 하는 것은, 세상의 상투성이 고스란히 담길 수밖에 없는 필름(재현의 내용)이 아니라, 그것 뒤에 있는 감독의 눈과 손길(관점과 태도)임을 새삼스러이 생각나게 하는 영화이다. 그 ‘세대’(generation)가 한국영화의 새로운 ‘발생’(generation)의 풍요로운 토양임을 믿어보고 싶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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