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중영화의 이상한 경향들
정성일 l 다른 해와 달리 올해 이런 이상한 경향, 증후가 있었구나라고 감지한 게 있다면.
김소영 l TV와 영화에 공통적으로 흐르는 경향이 일종의 망각술이다. 어떤 이유에서든지 자기 과거를 잊어버리고 과거의 사람을 새로운 정체성으로 만난다. 망각이 역사적으로 비정치화되는 거라고 볼 수 있는데.
허문영 l 상반기 좌담할 때 김소영 선생이 말한 한국영화의 세트에 대한 집착을 그 이후로 유심히 보게 됐다. 이를테면 여름 공포영화 대부분이 세트에서 촬영을 했던데 예컨대 어떤 학교인지 도무지 알 수 없는 외딴 곳에 세트를 지어놓고 공포를 만든다. <역도산>이나 <바람의 파이터>는 아예 무대를 일본으로 옮긴 경우에 해당하고. 괴담 유행의 시초였던 <여고괴담>은 그래도 의정부의 학교에서 직접 찍었다. 지금은 세트로 도피하거나 아예 무대를 딴 곳으로 옮겨간다. 이는 영화의 때깔을 높이려는 의도와 함께 제작비 규모의 상승과 밀접한 연관이 있는 것 같다. 디지털 장편을 새롭게 주목하는 이유 중 하나는 제작비 규모의 한계로 말미암아 우리가 살고 있는 이 거리와 만나게 된다는 것이다.
정성일 l 내가 본 한 가지 이상한 점은 유난히 시골영화가 많다는 것이다. 마치 시골영화라는 장르가 생긴 같다. <어디선가 누군가에 무슨 일이 생기면 틀림없이 나타난다 홍반장> <고독이 몸부림칠 때> <아홉살 인생> <마지막 늑대> <꽃피는 봄이 오면> 등등. 그렇다고 이곳에서 어떤 이데아를 찾는 것도, 탈도회적인 것도 아니다. 그렇다고 퇴행의 느낌도 아니고. 작가영화도 아니고 예외없이 상업영화인데, 대중들이 원하니까 기획이 됐을 텐데 왜 그럴까.
김소영 l 시골이지만 전원생활의 느낌이다. <…홍반장>이나 <귀신이 산다>에는 바다가 보이는 펜션형 주택이 등장하지 않나. <귀신이 산다>에서 차승원이 사는 집이 <범죄의 재구성>에서 박신양이 그토록 사고 싶어하는 거제도 땅이다. 바다가 보이는 펜션의 판타지가 있는 것이다.그리고 시골로 갔지만 주무대의 하나는 편의점 같은 도시적인 공간이다다. 전원에 대한 동경도 있지만 거꾸로 서울로 올라가는 영화도 있다
정성일 l <달마야 서울가자>는 <달마야 놀자>에 비하면 참혹하게 실패했다. ‘시골에서 서울’이라는 반대방향에 대한 대중의 거부감일까?
김소영 l 결국은 거주권에 대한 이야기가 아닐까. 근데 <달마야 서울가자>보다는 <귀신이 산다>가 약자 보호라는 점에서 좀더 전복적이다. <달마야 서울가자>는 이렇게 절충하는 영화가 다 있다 싶었다. 사찰 철거를 둘러싸고 싸우는 이야기인데 결국 도심 빌딩 위에 절을 세운다. 너무 순응적이다. 오히려 대중영화가 너무 순응적이면 안 보는 경향이 있다.
허문영 l 각각의 영화들이 이유가 있을 것 같긴 한데, <마지막 늑대>는 명백히 시골 대 도시로 원시성에 대한 회귀본능을 말하기 위한 것 같고, <…홍반장> <귀신이 산다> <시실리 2km> 등은 그곳이 꼭 시골일 필요가 없고 가만히 보면 시골도 아니다. 그 공간이 모델로 하는 장소는 서구식 교외 주택단지다. 즉 새로운 공간을 탐색한다기보다는 이 공간으로부터 그저 멀어져 판타지를 만들어내려는 것 같다. 현실적으로 존재하기 힘든 공간들인데, 한국영화가 지닌 이탈의 욕망과 연결된 듯하다. 어쨌든 한국영화가 공간을 만들어내는 형식은 앞으로 지속적으로 관심을 가지고 다룰 만한 비평적 소재인 것 같다. 특히 장르영화 중심으로 맹렬히 넓어지고 있기 때문에, 근교의 판타지, 농촌의 판타지, 완전히 독립된 공간의 판타지….
공간에 대한 거대한 판타지가 있다
김소영 l 더불어 지적하고 싶은 게 삶의 느낌이 안 묻어나는 실내 인테리어다. <정사>의 실내가 정구호의 디자인인데 그 이후 굉장히 미니멀하고 차갑게 영화 공간을 채워낸 듯 비워내고 있다. 제일 심한 게 <얼굴없는 미녀>다. 실내 미장센을 보면 도무지 신빙성이 안 간다. 정구호식 미니멀리즘 이후 아무런 정서도 담지 못하는 겉멋만 들린 이미지다.
정성일 l 아토피 걸릴 것 같은. (웃음)
김소영 l 페티시가 있는 것 같다. 교외와 전원에 대한 것처럼.
허문영 l 영화뿐 아니라 대중문화 전반이 그렇다. 아파트 광고, 뮤직비디오의 서울은 절대로 서울이 아니다. 한국사회에서 가능하지 않은 곳에 아파트를 지어놓고 와서 살 수 있다고 설파한다. 공간에 대한 판타지가 너무 거대해서 그것과 싸우는 영화와 수용하는 영화로 갈라지지 않을까 싶다.
정성일 l 시골영화 장르라고 했는데 시골가기가 일종의 길잃기와 맞물리면서 공포영화도 다 길 잃어버리는 이야기더라. <인형사> <령> 등이 그런데 같은 범주로 넣어야 할지 모르겠으나 <거미숲>도 그렇다. 확장시키면 <알포인트>도 그렇고. 공포영화에서 시골가기가 길잃기가 되고 멜로에선 상대 만나기가 되고 <꽃피는…>에선 자기의 실패를 만회할 수 있는 기회 만나기가 되는 등 여러 장르에서 모티브가 교집합처럼 어떤 매듭을 만들고 있는 것이 매우 이상하게 여겨졌다. 한국에선 서울이 너무 큰 곳이어서, 사실 서울과 ‘안서울’ 두곳밖에 없는데, 서울을 부정하는 것이 대중들이 어떤 환상을 만족시켜주기 때문에 만들어진 게 아닐까.
김소영 l 그것의 답은 <썸>에 있는 것 같다. <썸>이 실패했고 재미도 없지만 거기서 제일 중요한 것은 감시카메라가 CCTV로 작동하고 있고 그걸 벗어날 수 있는 길은 아무것도 없다는 점이다. 그 카메라에 대응하는 것은 인간의 예지력이다. 중요한 건 서울이란 도시가 얼마나 끔찍한가. 교통방송 한번만 틀어봐도 알 수 있다.
정성일 l 서울을 담는 방법은 재난밖에 없을까. 그걸 고스란히 드러내는 영화가 <귀여워>다.
허문영 l 맞다. 한국 감독들이 그런 면에서는 불행하다고도 생각하는데 감독에게 현실적으로 주어져 있는 공간의 극단적 단조로움 때문에 여기서 할 수 있는 이야기가 한정될 수밖에 없다. 돈이 없어서 할 수 없이 네댓명 젊은 애들이 움직이니까 아무도 통제하지 않아서 성공적으로 찍을 수 있었던 <마이 제너레이션>의 경험도 그렇고. 20, 30명이 서울 시내 공간을 찍으려 하자마자 큰 어려움과 돈이 든다.
김소영 l 그건 창의성과 전투력의 문제가 아닐까. 홍콩에 가면 사실 카메라 댈 데가 없는 대체 이 도시에서 어떻게 영화를 찍었을까 감탄한다. 액션영화나 왕가위 영화를 보면 도심의 시끄러운 공항도 상실과 동경의 메타포로 쓰인다.
정성일 l 시골에 감으로써 한국영화는 라이프가 없어진다. 시간적으로 영화가 거의 멈춰선 느낌이 들고 현실적 질료성이 사라지니까 점점 캐릭터 영화가 될 수밖에 없다. 비주얼한 영화적 가능성에서 재빨리 후퇴하기 시작해서 몇몇 영화는 차라리 TV를 보지 뭐하러 보고 있나 싶었다. 재미, 만듦새를 떠나서 영화와 TV의 변별성에 있어서 한국영화는 급속히 퇴행하고 있다. 시골에 간다 해도 TV처럼 축소됐다는 느낌이어서 해방감이나 향수조차 전달하지 못한다. 영화적 질료성의 포기가 심각한 위기를 가져왔다는 느낌이 있다.
김소영 l 그런 면에서 보면 이 영화들은 올해 영화는 아니지만 <생활의 발견>과 무척 대조적이다. 막상 관광지에 가서는 청평사에 안 가고 경주에 가서는 능을 무슨 낮잠자는 언덕처럼 쓴다. 해체적인 전통적 공간의 사용방식이다. 시골과 도시의 변증법을 긴장있게 끌어들이는 감독이 아핏차퐁 위라세타쿤인데, <열대병>에서 놀라운 것이 정글과 소도시의 대조도 그렇지만 도시에서 정글로 가는 도중에 먼지가 날리면서 매연이 나오는 걸 촬영한 방식이다. 촉감, 감각을 그대로 전한다. 이 점에서 젊은 감독들이 홍상수 감독이나 아핏차퐁에게 배울 게 많다. 영화적 경험은 외출이다. 외출해서 볼 만한 것을 보여주어야 하는 게 약속이다. 그런데 지금 한국영화들은 끔찍하게 평면적이 돼가고 있다.
허문영 l 홍콩은 공간은 그 지경이지만 워낙 영화적 요소들이 중첩돼 있으니까 홍콩의 야경 장르라고 말할 만큼 야경으로 멋진 스펙터클을 만들어낸다. 단순히 예쁜 게 아니라 홍콩 감독들이 불안하고 사멸해가는 느낌을 발견했던 건데 그런 정서를 한국에서 똑같이 기대할 수는 없고 지금으로서는 우리가 살고 있는 공간을 새로운 감수성으로 포착하는 영화를 기다릴 뿐이다. <귀여워>는 그런 영화의 한편이라고 생각된다.
김소영 l 그러나 <귀여워>가 기대만큼 공간을 치밀하게 사용한 것 같지는 않다.
정성일 l 정재영이 흑백화면으로 걸어오는 도입부를 생각하면 그런 걸 보여주겠구나 했는데, 결혼과 세리머니를 보여주어야 한다는 강박 때문인지 내가 어디서 찍고 있는가와 영화의 물질성을 놓친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