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1]
2004년 송년특집 편집위원 3인 좌담 [5]
2004-12-21
정리 : 김혜리
정리 : 이성욱 (<팝툰> 편집장)

동시대성을 보여주는 디지털 장편의 매력

<마이 제너레이션>

허문영 l 디지털 장편은 예전에는 이야기 매체로 일정한 결함이 있는 듯했으나 올해는 완결된 구조의 영화들이 나왔다. 그중 <마이 제너레이션> <양아치어조> <신성일의 행방불명>의 세 영화는 각기 다른 방식으로 감독이 지닌 영화 매체에 대한 관심과 세계관을 끌어냈다는 점에서 의미있다. <양아치어조>는 비교적 관습적인 이야기 방식을 채택하면서도 자기 번민의 감독적 독백에 그치지 않고 적극적으로 사건을 만들어내는 주인공이라는 점에서, <신성일…>은 감독의 개성에 걸맞게 누구도 생각하지 못했던 고도의 우화를 만들어냈다는 점에서 놀라웠다. 전체적으로 디지털 장편에 대한 기대나 호감은 그것이 지닌 물질적 제약 때문에 오히려 주류영화들보다 등장하는 인물도, 공간도 함께 살고 있다는 영화의 동시대성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비롯된다.

정성일 l 그것과 상관없는 이야기인데 <시실리 2km>의 성공에 대해 사람들이 말하지 않고 넘어간 대목이 HD로 찍었다는 점이다. 대부분 제작자들은 여전히 상업영화는 필름으로 찍어야 하고 관객은 필름이 아닌 것에 관심이 없다고 여기고, HD는 저예산용이라고 생각하는데 이 영화는 관객이 화면의 질료성이 필름이든 뭐든 매체의 질료와 아우라에 대해 관심이 없다는 걸 증명한 것 같다. 스토리와 캐릭터만 좇아가면 된다는. 한편으로 <시실리 2km>의 성공은 한국영화의 대중이 아날로그와 필름의 아우라에 더이상 관심없다는 작별인사라는 느낌이 들었다. 그건 그렇고 두분에게 올해의 얼굴은 누구였나.

허문영 l 역시 백윤식이 아닐까. 어떤 배우가 화면에 등장했을 때 얼굴만으로 화면의 톤을 장악한다는 느낌을 주는 경우가 많지 않다. 백윤식은 사람이 지닌 주름의 깊이, 그것만으로도 사람을 사로잡을 수 있구나 하는 느낌을 줬다.

정성일 l 올해의 얼굴 대신 올해의 이미지를 뽑는다면, 김선일의 이미지를 들고 싶다. 그 이미지에 내내 사로잡혀 있다. 그 이미지는 영원한 악업의 귀환이 될 것 같다. 2004년을 한국에서 어른으로 통과한 사람들이 벗어날 수 없는. 그것에 대해 한국영화가 침묵으로 일관한 것은 이해가 안 된다. 그 정도의 이미지라면 이미지의 트라우마가 영화 속에 나타나는데 한국영화는 어떤 정신적 외상도 입지 않았다는 점에서 한국영화가 갖고 있는 양심에 대한 외면 같은 걸 느꼈다.

<양아치어조>

김소영 l 원칙적으로 동의하는데 그 트라우마가 영화 속에 드러나는 것은 시간적으로 좀더 기다려야 하지 않을까. 올해의 이미지라고 하면 전지현이 흥미로웠다. 한류 스타이지만 배용준은 일본에서의 인기만큼 한국에서 현상이 없는데, 전지현은 한국에선 CF도 폭발적이고 결혼하고 싶은 여자로 꼽히며, 디카 문화 등 시대의 패션을 정신적이든 물질적이든 전면적으로 재현해왔다. 흥미로웠던 건 인터넷에서 본 지오다노 광고였다. 홍익대 앞 클럽의 댄스장면은 어떤 한국 여자배우의 육체보다 감각적이고 성숙한 육체였다. 진짜 짜릿한. 엽기적인 소녀로 소개된 여자가 완벽한 여자로 나타났는데 그 순간 결혼하니 어쩌니 하는 스캔들이 나오면서 추락하는 느낌도 주고. 소녀에서 여성으로 가는 조짐에서 벌어지는 일 같다.

정성일 l 추가하고 싶은 이야기가 수입영화에 대한 것이다. 올해 개봉한 외국영화 184편의 목록이 너무 형편없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한국의 영화관객, 영화문화가 지금 만들어지고 있는 세계의 영화라는 것의 동시대성으로부터 다시 동떨어지고 있구나 하는 느낌이다. 한국 관객에게 외국영화는 <역도산>이다. 이런 환경이 아니고선 95%의 90억원짜리 자막영화를 만들 용기를 어떻게 내나.

허문영 l 사실은 좀 된 이야기인데 이미 한국영화와 미국영화를 제외하고는 시장점유율 3%를 넘기 어려운 상황이다. 아시아영화이든, 유럽영화이든. 일종의 악순환이 된 것 같다. 이런 문화적 편식의 문제는 한 사람, 한쪽의 문제는 아닐 것 같고, 총체적으로 우리 문화가 가진 방향인 것 같다. 개인적으로 한국영화가 외국 나가서 어떤 흥행성적을 올릴지, 외국영화가 한국에서 어떤 흥행을 올릴지 대충 짐작되는데, 한국영화가 한국 관객과 만날 때 어떤 현상을 만들어낼지는 전혀 짐작이 안 된다. 여전히 한국 관객은 기호의 불안정성을 보여준다. 어디로 흘러갈지 아직 모르기 때문에 영화를 수입하고 제작하는 이들로선 큰 곤경이 아닌가.

정성일 l 산업적으로 한국영화가 돈 많이 벌지 모르나 문화적으로는 더 빈곤해지는 현실을 제작자들은 눈감아버리고 싶은 거 같고, 영화저널들도 큰 문제의식이 없는 것 같고, 더구나 비평가들도 언급하지 않는 게 상황을 더 악화시키는 것 같다. 그런 빈곤함이 반드시 한국영화의 빈곤함으로 옮겨왔다는 생각이 든다. 홍상수, 김기덕은 해방구라기보다 일종의 게토라는 느낌이다. 텍스트가 빈곤한데 담론이 풍성한 건 사기라고 생각한다. 부탁건대 <씨네21>이 이슈를 만들어내고 그래서 정책을 만들어내기를 바란다. 어쨌든 영화계의 오피니언 리더들이 이 책을 읽고 있으니까.

김소영 l 원칙과 바람은 동의하는데 지표 자체를 바꿔야 하지 않을까. DVD 시장, 그리고 인터넷에서 다운받아 보는 이들까지 지표에 넣어 공론의 장을 만들어야 하지 않을까. 보이지 않는 곳에 있는 시네필까지 포괄해서 말해야 절망에 사로잡히지 않을 것 같다. 걱정하는 점은 파일 공유를 하더라도 고전영화는 어려운데, 중국에는 거의 모든 고전영화들이 다 있어 지하전영 친구들이 영화제가 없어도 다 볼 수 있다는 거다. 한국영화보다 더 나은 상황이다.

새로운 청춘영화를 보고 싶다

정성일 l 내년의 기대와 전망으로 정리해보자

허문영 l 늘 그렇듯 전망을 잘 못하겠다. 계속 관심을 가지고 지켜보고 있는 요소는 대중영화의 영웅들이 어떻게 공동체와 만날 것인가이다. 김선일 이미지도 지금의 대중영화의 맥락에서는 그 이미지에 접근할 길이 과연 보일까 싶다. 굉장히 무겁고 중요하기는 한데, 접근할 영화문법이 대중영화에서 축적되지 않았다는 거다. 지금 국제적으로 각광받고 있는 젊은 작가들이 세트로의 안주에서 벗어나서 동시대의 거리와 사람들을 만나는 영화를 만들었으면 하는 기대를 갖고 있다.

김소영 l 시네마테크 문화가 더 활성화되고 자리잡을 수 있도록 공간이 마련됐으면 좋겠다.

정성일 l 한국영화의 올해 목록이 빈곤하게 느껴졌으나 임권택, 홍상수, 김기덕의 영화를 다 볼 수 있었다는 점에서 행복한 한해였다. 다만 내년은 최근 한국영화에서 사라지는 청춘영화를 보고 싶다. 대중영화에서 청춘영화가 사라졌다는 건 그 나라의 영화가 굉장히 빨리 늙어가고 있다는 것이다. 소년들이 울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소년들이 청춘영화로 나타나지 않은 것이 아쉽다.

김소영 l <마이 제너레이션>은 청춘영화가 아닌가? 어떤 게 말씀하시는 청춘영화인가.

정성일 l 고다르의 누벨바그, <맨발의 청춘> <이지 라이더>처럼 저항과 분노가 있는 청춘영화. 청춘들이 봤을 때도 세상사는 이 답답함을 대변해주는구나 싶은. 청춘영화의 특징 중 하나는 새 캐릭터, 새 이야기를 새 테크놀로지로 찍는 것이다. 예컨대 <엽기적인 그녀>는 나에게는 청춘영화였으나 <내 여자친구…>는 아니었다.

김소영 l 청춘영화라기보다 뉴웨이브를 기다리는 게 아닌가.

정성일 l 최근 2~3년 사이 단편에서는 청춘영화를 보는데 그들이 제도권으로 들어와 장편을 찍으면 그 청춘들이 다 사라진다. 이 불구성이 21세기 한국의 물질적 토대 위에 반영된 어쩔 수 없는 불구성일까. 그만큼 한국영화가 늙어가고 있는 것일까. 설경구, 최민식, 송강호가 최고 배우뿐 아니라 최고 스타의 자리까지 함께 갖고 있다는 점은 이상하다.

진행·정리 김혜리, 이성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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