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1]
<씨네21> 10주년 기념 영화제 [8] - 아시아영화 베스트 ③
2005-04-20
글 : 정한석 (부산국제영화제 프로그래머)
글 : 김소영 (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원 교수)
글 : 심영섭 (평론가)
글 : 정성일 (영화평론가)

아직 따뜻하고, 이미 완전한 오즈의 세계

오즈 야스지로의 <태어나기는 했지만>

오즈 야스지로는 1903년 12월12일 태어났다. 그리고는 1963년 12월12일 60살 되던 생일날 세상을 등졌다. 습관처럼 오즈에 대한 이야기를 이렇게 시작하고 나면, 우연이든 운명이든 시작과 끝을 일치시켜 삶을 살다간 그의 윤회 과정에 언제나 소름이 돋는다. 2003년 겨울, 도쿄 외곽 사원에 있는 그의 묘지를 찾았을 때 그는 다른 이웃들과 거기 그렇게 조용히 묻혀 있었다. <태어나기는 했지만>이라는 제목을 중얼거리는 순간 그 묘지의 차갑고도 평온한 풍경이 떠오른다. 태어남과 죽음이 같은 의미로 공존하는 오즈의 영화이어야만 가능한 연상일 것이라고 믿는다.

오즈가 일본영화를 대표하는 작가가 된 것은 친구 야마나카 사다오를 경쟁자로 삼아 형식을 고민하고, 미국영화를 무척이나 즐기면서 보냈던 그 전전 초창기 시절 이후의 일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알고 있는 오즈적인 것은 대부분 전후 영화를 기초로 한 그의 영화형식을 가리킬 때가 많다(거기에는 물론 오해도 많다). 자기 세계의 완숙함에 들어선 오즈는 한때 요시다 요시시게 같은 쇼치쿠 누벨바그 세대들에게 넘어야 할 구세대로 치부되기도 했었다. 하지만 요시다조차 오즈의 영화에는 전대미문의 반복과 불일치가 있다고 오랜 세월이 흐른 뒤 고백적인 감회를 던진다. 그리고 이웃 나라 대만의 허우샤오시엔은 오즈 탄생 100주년을 맞아 <카페 뤼미에르>라는 헌정영화를 만들어, 오즈의 영화에서 배운 건 형식이 아니라 정신이었다는 평소 주장을 남김없이 이 한편으로 입증했다. 오즈는 일본영화의 스승일 뿐 아니라, 아시아 영화의 스승이라고 불러도 손색이 없다.

<태어나기는 했지만>(1932)은 오즈가 첫 유성영화 <외아들>을 만들기 전에, 그의 중·후반기 영화들의 초석이라 해도 무방할 <만춘>을 만들기 훨씬 전에 완성한 무성영화이다. 이 영화는 오히려 오즈의 중· 후기작을 통해 그의 영화세계를 부분적이고 강박적으로 이해하고 있는 관객이 더 보아야만 하는 영화다. 요컨대 유작 <꽁치의 맛>에서처럼 딸을 시집보내고 외롭게 앉은 홀아비의 처진 어깨나 감정을 담고 홀로 끓고 있는 주전자만이 오즈 영화의 전부는 아니다. 사물의 인공적이고 고정된 자리 및 형상을 통해 삶 전체의 냉엄한 정감을 느끼도록 하는 것이 오즈 영화의 기적인 것은 사실이지만, 그것이 처음부터 불변의 종류는 아니었다.

종종 착각하는 것과 달리 오즈의 영화에는 침묵이 거의 없다. 그의 영화는 말이 많다. 게다가 이 시기의 오즈는 과묵하지 않을뿐더러 웃길 줄을 안다. 말하자면, 여기서의 침묵과 말이란 비단 언어의 차원이 아니라 영화적인 말걸기의 차원을 의미한다. 초창기 무성영화 <일본식 싸움친구>나 <즐겁게 걸어라> <낙제는 했지만>(<졸업은 했지만…>도 있다)에 등장하는 젊은이들에 관한 묘사는 <태어나기는 했지만>에서 주인공 아이들의 모습으로 탈바꿈되면서 그렇게 코믹한 상황을 자아낸다. 오즈가 아이 같은 어른들을 배제하거나, 그들에게서 웃음을 거둔 것은 전적으로 전후의 시대를 바라보는 그의 태도일 것이다. <태어나기는 했지만>에는 아직 온기가 남아 있다.

삶에 대한 소시민적 애환과 넘치는 웃음과 형식적 고찰이 전부 자리잡고 있는 작품이 바로 <태어나기는 했지만>이다. 이를테면 두 아들은 화가 난다. 친구의 아버지인 사장에게 우리 아버지가 바보짓을 하면서까지 환심을 사야 하는 이유를 모르겠고, 왜 아버지는 사장이 아니라 직원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가난해도 대단한 사람들”의 삶을 인정하고, 때로 거기에서 교훈을 얻는 건 오즈의 영화에서 중요한 일이다. 이것이 언제나 극단의 형식과 함께하는 오즈식 홈드라마의 메시지라면 메시지다. 오즈는 훗날 이 작품을 몇 되지 않는 컬러영화 중 하나인 <안녕하세요>로 다시 만들어 애정을 표하기도 했다. 한편, 형식적인 특징들, 즉 무성영화 시절에 영화를 시작한 감독만이 고수할 수 있는 배우들에 관한 일괄적인 자세연출의 강박, 필로숏이라 불리며 화면 리듬을 조율해내는 기차와 빨래의 인서트 컷, 인물과 함께 일정한 거리로 이동하는 카메라 구도에의 집착, 장소를 건너뛰면서 시간의 나선형을 만드는 불가해한 편집기법, 화해와 긍정의 자세로서의 나란히 앉기 등등의 전조를 모두 이 한편의 영화에서 ‘이미’ 볼 수 있다. <태어나기는 했지만>은 오즈 세계의 전반을 한번에 볼 수 있는 중요한 작품이다.


영원히 끝나지 않을 어떤 미완성

왕가위의 <아비정전>

만일 당신이 만난 그 사람의 영화에 관한 취향을 알아보고 싶다면 간단한 질문이 있다. 그냥 왕가위 영화 중에서 어느 영화를 가장 좋아하십니까, 라고 물어보기만 하면 된다. 오우삼은 <열혈남아>가 심금을 울린다고 대답했다. 지아장커는 <아비정전>에서 새로운 화어권 영화를 보았다고 대답했다. 장이모는 그냥 <동사서독>이 가장 아름다운 영화라고 대답했다. 서극은 홍콩영화에 <중경삼림> ‘이전과 이후’가 있다고 대답했다. 리앙은 <타락천사>를 재미있게 보았다고 대답했다. 차이밍량은 한참을 망설인 다음 <해피 투게더>라고 대답했다. 허우샤오시엔은 망설이지 않고 <화양연화>라고 대답했다(이 대답은 서로 다른 자리에서 서로 다른 시기에 한 것이기 때문에 지금은 다른 대답을 할지도 모른다). 물론 여기서 누가 맞고 누가 틀린 것은 아니다. 그건 취향의 문제다.

왕가위는 그만큼 스펙트럼이 넓은 시네아스트이다. 그는 매번 우리를 놀라게 한다. 항상 그의 영화는 거기까지가 최선이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는 그 경계까지 밀고 나간다. 그러나 그 다음 영화는 그걸 가볍게 점핑한다. 그는 우리를 탄식하게 한다. 나는 그렇게 <2046>까지 이끌려왔다. 그런 다음 우연하게도 다시 <아비정전>을 보게 되었다. 그때 나는 그냥 이렇게 말할 수밖에 없었다. 결국 왕가위의 <아비정전>은 그 ‘이후’의 그의 모든 영화의 강박증과 히스테리 사이에서 오가는 그 어떤 불만족이다. 그는 이 영화를 미완성으로 끝냈다. 나는 그 다음이 너무 궁금해서 참을 수 없었고 그래서 물어보았다. 그는 <아비정전> 속편을 찍게 되지는 않을 것이라고 대답했다. 나는 속으로 나쁜 놈이라고 중얼거렸다. 하지만 정말 문제는 왕가위에게서 생겼다. 그 이후의 그의 모든 영화는 미완성이다. 왕가위는 의도적으로 이 발없는 새의 이야기를 피하려들거나, 그 반대로 무의식적으로 그 이야기를 반복한다. 단 한명의 사람도 볼 수 없는 한밤중의 텅 빈 거리에서 오직 등장인물들만이 존재하는 그 이상한 풍경을 보면서 나는 이 외로운 영화가 사실상 여섯명이 함께 꾸는 꿈이라는 생각을 했다. 그들은 깨어나지 않는 꿈 안에서 서로가 서로를 채워넣고 혹은 빼앗아간다. 그들의 꿈은 서로가 서로에게 부채관계이다. 왕가위는 그 채무 속에서 대차대조표를 써나간다. 그러므로 왕가위의 대답은 그들을 깨울 생각이 없다고 읽혀야 한다. 혹은 그 매듭은 풀어서 안 된다. 왜냐하면 왕가위의 모든 영화는 사실상 단 하나의 시나리오의 변주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는 시나리오를 쓸 이유가 없다. 그것이 촬영현장에서조차 혹은 편집실에서 거듭해서 이야기를 고쳐가면서 영화를 만드는 왕가위의 비밀이다. 그는 미루고 미루면서 같은 이야기를 하고 또 한다.

그러나 사태는 걷잡을 수 없게 되었다. 이제 불만족스러운 <아비정전>은 영원히 불가능하게 남을 수밖에 없게 되었기 때문이다. 장국영은 호텔에서 뛰어내렸고, 그 자리는 비어진 채 내버려둘 수밖에 없게 되었다. 이제 그것은 유령의 채무관계이며, 영원히 미루어진 부채이다. 불만족스럽게 미루어둔 것이 불가능한 행위가 되었을 때 그 모든 시도는 절망하지 않기 위해 모르고 있다고 가정된 환상의 무아지경 안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나는 그래서 장국영의 자살 이후에 필연적으로 <2046>이 나왔다고 믿는다. 그것은 도착증의 왕국이다. 도대체 그렇게라도 하지 않는다면 어떻게 <아비정전>을 다시 반복하겠는가? 수리첸은 영원히 사랑이 돌아오길 기다리면서 사막에서 떠돌거나, 아니면 동방호텔에서 불륜의 상대와 아슬아슬한 감정의 게임을 계속해야 할 것이다. 아비의 형은 사막의 주막을 지키거나, 경찰복을 입고 중경 근처를 어슬렁거리거나, 그도 아니면 동방호텔에서 영원히 끝나지 않을 삼류 무협소설을 계속 써야 할 것이다. 아비의 친구는 계속해서 그 열차를 타고 목적지를 알 수 없는 여행을 계속 할 것이다. 수리첸의 자리는 홍콩(의 장만옥)에서 중국 본토(의 공리)로, 그런 다음에는 할리우드(의 니콜 키드먼으)로 자꾸만 옮겨간다. <아비정전>은 일종의 저주이다. 왕가위는 홍콩을 떠나서 상하이에 가고 싶어한다(택동영화사에서 밝힌 바에 따르면 왕가위의 다음 영화 제목은 <상하이에서 온 여인>(Lady from Shanghai)이다). 어쩌면 왕가위의 다음 영화는 그의 두 번째 데뷔작이 될지도 모른다. 그냥 내 생각이다. 아, 참 나는 <화양연화>를 가장 좋아한다. 물론 취향의 문제다.


중국의 오늘, 아슬아슬한 희망

지아장커 <플랫폼>

겨울, <플랫폼>에서 그려지는 중국 샨시성 편양의 이른 새벽 푸른빛은 아찔하고 음울하고 아득하다. 문화선봉대원들을 실은 트럭이 동트는 아침 속으로 떠날 때, 어둑한 푸른 들판에 붉은 모닥불이 지펴질 때, 그 푸른색은 쉽게 지우지 못할 잔영을 남긴다. 감독 지아장커와 촬영감독 유릭와이가 만들어낸 중국의 추운 겨울 벌판의 색감이다.

반면, 차이나 블루는 제국의 시대, 유럽에서 상하이로 들어가는 항로에서 만나게 되는 바닷빛에 붙여진 이름이었다. 중국 5세대 감독 장이모의 <붉은 수수밭>의 자기 오리엔탈화하기 과정에서 나타나는 홍고량의 붉은 색은 예의 차이나 블루와 역사적 보색 관계를 이룬다. 오리엔탈리즘의 양면인 것이다. <플랫폼>의 청색 기조는 제5세대의 민속지적 화려한 색깔과 확연히 구분된다. 차이나 블루도 아니고 붉은 수수밭도 아닌 그 푸른색은 중국 당대 젊은이들의 멜랑콜리와 그 안에서 막 잉태되려 하는 힘겹고 위태한 희망의 정치, 그것의 빛깔이다.

<소무>와 <플랫폼>의 주촬영장소이기도 한 샨시성 편양에서 태어난 지아장커가 베이징전영학원 문학과를 졸업한 뒤, 1997년 27살의 나이에 <소무>를 들고 유럽과 부산영화제를 찾았을 때 사람들은 중국영화에 일어난 변화를 순식간에 감지했다. <소무>는 자신의 전세대인 5세대 감독들의 영화들과 결별하고 오히려 <첩혈쌍웅>이나 허우샤오시엔을 인용하고 있었다. 또한 베이징과 상하이가 아닌 작은 도시를 파고든 개방 이후의 중국사회를 다루고 있었다. 검은테 안경을 눌러쓴 소매치기 샤오우가 건설 작업이 한창인 작은 도시를 배회하는 모습은 자본주의 체제를 받아들인 사회주의 국가 중국이라는 규율적이고 생산적인 국가 이미지와는 한참 동떨어진 모습이다. 샤오우는 경찰의 규제를 받지만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며, 또 아무것도 생산하지 않는다. 하릴없이 시간을 때우고 있을 뿐이다.

<플랫폼>은 중국 지하전영 제작방식의 한 특징인 프랑스, 일본, 홍콩 3개국 합작으로 제작되었다. 1979년에서 1989년까지 중국에 일어난 급격한 변화를 느릿느릿 롱테이크로 그리고 대부분 원신 원숏으로 따라간다. 그 십년 동안 문화선봉대원들인 루이지앤과 추이밍량, 장쥠, 중핑 이 4명이 겪는 변화는 사실 극심하나, 영화는 아주 침착하고 섬세하게 그들의 마음의 풍경과 외부 경관을 담아낸다. 처음에는 이념을 위해 공연을 하던 사람들이 국가의 지원이 끊기자 서서히 무너져 내리면서 다른 무엇으로 변화되거나 변화하지 못하는 모습이, 세 시간이라는 긴 영화적 시간 속에서 펼쳐진다.

영화가 시작되면 공연을 끝낸 단원들이 버스에 타고 단장이 단원들의 이름을 부르지만 이후 5분 동안 관객은 누가 누구인지 전혀 알 수가 없다. 감독은 바로 이 장면이 3시간 길이의 영화에서 일어나고 있는 집단에서 개인으로의 변화를 압축적으로 보여준다고 말한다.

이렇게 꼼꼼하게 계산된 압축성에다 <플랫폼>이 영화적 전율을 주는 순간은 일상적 순간을 대담하게 무엇인가 다른 차원으로 변환해버리는 때다. 사회주의 리얼리즘이 슬며시 마술적 리얼리즘의 광휘 속으로 걸어들어가는 순간이다. 네명의 주요 등장인물 중 하나인 루이쥐앤이 음악에 맞춰 춤을 추다가 갑자기 유니폼을 입은 채 오토바이를 타고 도시의 골목을 지난다거나, 평범한 시골 풍경이 롱테이크되다가 불시에 편집을 통해 도시 거리와 몽타주되어 영화의 전반적 기조와는 다른 비약이 일어난다거나 하는 것이 그 예다. 그리고 한 장면 안에서 현실과 그 현실을 초과하는 예감이나 전조가 현실적인 사운드와 동작을 통해 표현되기도 한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 이제 결혼한 추이밍량과 루이지앤의 집. 밍량은 잠이 들어 있고 루이지앤은 아이를 안고 있다. 주전자에서 물이 끓었음을 알리는 소리가 귀를 찢을 듯 울리고 루이지앤은 아이에게 위태로운 장난을 건다. 끓는 주전자 앞에서 포르트-다 게임을 하듯 아이를 앞뒤로 흔든다. 지아장커의 영화가 매개없는 현실의 재현을 추구하는 다이렉트 시네마 혹은 다큐멘터리와 거리를 두는 장면이며, 현실에 예지적, 심리적 긴장을 부여하는 순간이다. 이렇게 하여 아슬아슬한 희망의 정치학을 말하는 30대 젊은 감독의 <플랫폼>은 우리 시대의 걸작이 되어버린 것이다.

참고서적: <지아장커, 중국 영화의 미래>(현실문화연구 펴냄)


역사와 인간과 미학의 완전한 만남

허우샤오시엔의 <비정성시>

1947년 2월27일, 국민당의 전매국 소속 사복 감시반과 경찰이 타이베이 시내에서 불법으로 담배를 밀매했다는 죄목으로 한 여인을 구타한다. 사소한 사건이었지만 경찰이 옆에서 그 광경을 보다가 항의하던 대만인들을 총으로 사살하면서 사태는 일거에 확대되기 시작했다. 28일에는 타이베이시 전역에서 파업과 철시 및 데모대의 시위가 시가지를 휩쓸었고, 국민당의 병영과 비행기장, 시정부 및 국민당 당 지부들이 공격당하자 당은 본토의 국민당 군대를 급거 파견해 피비린내나는 탄압을 자행했다. 같은 해 3월8일부터 개시된 대토벌 작전에서 도합 2만여명의 본성인, 즉 대만의 토착민들이 학살됐다.

<비정성시>는 이같은 피비린내나는 대만 역사와 그 그늘에 묻힌 슬픈 도시, 처연한 가족사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그러나 이것은 허우샤오시엔의 영화인 것이다. 역사와 가족을 이야기한다는 점에서 타르코프스키의 영화세계가 그러한 것처럼 허우샤오시엔의 영화에서도 집은 늘 중심이 되는 곳이다. 또한 매우 이상하게도 두 감독 모두는 공간을 잡아낼 때 딥포커스가 영화미학의 핵심이 되고 그 공간에서 문과 창은 공간을 나누는 분기점이 아니라 공간을 늘리는 하나의 통로가 된다는 점도 유사하다. 그러나 허우 샤오시엔의 모든 역사의식과 시선은 집 ‘내부’에서 나온다. <비정성시>에는 다른 영화감독들이 빈번하게 잡아내는 외부에서 집을 바라보는 방식의 시선이 없다. 즉 타르코프스키가 늘 집에 ‘다시 돌아간다’는 무의식의 지점에서 영화를 사색한다면, 대만 감독인 허우샤오시엔은 결코 그곳을 떠나본 적이 없는 자가 가족과 역사와 영화에 대해 사색하는 것이다. 허우샤오시엔이 바라보는 역사는 회귀하는 것이 아니라, 순환한다. 그곳에 머무른다.

그러므로 많은 이들이 허우샤오시엔의 롱테이크와 롱숏의 미학을 관조의 미학으로 부르지만, 나는 아니라고 본다. 그것은 관조라기보다 그곳에 머물기로 결심한 자의 미동없는 결기, 관조를 넘어서 어떤 일이 일어나도 이 땅을 이 집을 지키겠다고 결심한 자가 보여주는 ‘부동의 자세’ 같은 것이다. <비정성시>에서 허우사오시엔의 카메라는 그 어느 곳을 잡던 늘 고정된 장소에서 고정된 각도로 고정된 지점에서 동일한 공간을 잡아낸다. 장면이 여러 개 바뀐 뒤 다시 그 공간으로 되돌아와도, 술집을 잡을 때도, 술집의 골목을 잡을 때도, 병원의 복도를 잡을 때도, 문웅의 거실을 잡을 때도, 귀머거리 아들인 문청의 방을 잡을 때도 카메라는 어느새 같은 장소에 돌아와 똑같은 지점에서 똑같은 각도로 사람들을 바라본다. 사람들은 오고 가지만 카메라는 남아 있다. 그래서 <비정성시>는 그 어떤 영화보다도 역사의 순환성이 가족의 순환성과 맞물리는 지점에 놓여 있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끼게 해주는 영화가 되는 것이다. 다시 1947년 2월27일의 그 피비린나는 역사가 되풀이되어도, 남자들은 죽고 여자들은 역사의 증언자가 되어 고통을 받아도, 아이들은 태어나고 누군가는 사랑에 빠지고 삶은 이어진다. 출산, 장례식, 결혼식, 다시 출산으로 이어지는 에피소드들은 탄생-죽음-탄생으로 이어지는 이 거대한 동심원의 세계를 빠져나갈 수 있는 인간이란 없다는 진리를 묵묵히 증언한다.

그러므로 진정 <비정성시>에서는 컷과 컷이 어떻게 갈라지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컷과 컷이 어떻게 이어지는가 하는 점이 훨씬 더 중요하다. 막간 자막으로 삽입된 종이의 글귀나 술집 안에 있던 한 무리의 청년들의 노랫소리는 한컷과 다음 컷을 이어주는 접착제 노릇을 한다. 청년들의 노랫소리는 다음 컷에서도 이어져서 술집 밖으로까지 울려퍼진다. 아니 이어져나간다. 그것이 바로 공간의 안에 있어도 공간 밖, 혹은 세상과 역사라는 자기 인식의 밖을 포괄하는 허우샤오시엔의 영화미학의 핵심이다. 그것은 서구영화와의 속도전이나 행동을 기점으로 컷을 가르는 서구영화의 편집구조를 완전히 거절한 한 시네아스트의 자기 완결적인 영화미학의 본보기이기도 하다. 나는 이후 어떤 영화에서도 이렇게 자기 성찰적인 방식으로 한 나라의 비애와 한 인간의 고민과 영화미학이 함께 근접조우를 한 사건을 본 일이 없다. <비정성시>. 그것은 대만 영화역사의 시작이었으며, 허우사오시엔 영화역사의 시작. 비로소 전세계 영화사에서 보기 드문 영화속도의 사색가는 자신의 책갈피에 접힌 슬픈 도시에 관한 이야기를 시작한다.

관련 영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