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5-2004 한국영화의 불타는 연대기
“가수 김광석이 죽었다. 김광석이 활짝 웃고 있는 영정 사진을 보고 감독 허진호는 <8월의 크리스마스>를 떠올렸다. <8월의 크리스마스>는 촬영감독 유영길의 유작이 됐다. 유영길은 가짜와 진짜를 구별하는 눈을 갖고 있었다고 빈소에서 감독 이창동은 말했다. 이창동에게 메가폰을 들려준 건 제작자로 변신한 배우 명계남이었다. 스크린쿼터 집회에서 명계남은 명사회자로 통했다. 스크린쿼터 집회에는 감독 임권택도 빠지지 않았다. 임권택이 정부에 항의하며 삭발하던 날 배우 전도연은 울먹거렸다….”
지난 한국영화 10년은 꼬리에 꼬리를 무는 네버엔딩 스토리다. 한번 들어서면 출구를 찾을 수 없을 만큼 많은 일들이 눈앞에서 벌어졌고, 잊혀졌고, 다시 살아났다. 스크린쿼터는 바람 잘 날 없었고, 각양각색 전주(錢主)들이 으르렁거렸고, 덩치 큰 메이저 영화사들이 탄생했고, 무엇보다 3천편 이상 되는 영화들이 극장에 내걸렸다. 10년 전엔 할리우드 영화들의 놀이터나 다름없던 황무지 시장에서 한국영화는 무엇을 일군 것일까. 무언가 일궜다면 그건 매년 벼랑 끝에 선 위기감으로 상승과 하강의 롤러코스터를 탄 대가의 수혜가 아니었을까. 한국영화 10년을 곁에서 지켜봤던 <씨네21>로서도 그 순간 순간이 아찔하다. 여기, 한국영화 10년의 환희와 분노, 좌절과 희망의 순간들을 축약해 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