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1]
한국영화 10년, <씨네21> 10년 [9] - 2002년
2005-05-04
글 : 정한석 (부산국제영화제 프로그래머)
한국영화 세계 영화제 주요 부문 수상

한국영화의 예술성을 세계에 알린 해였다. 그동안 꾸준히 3대 영화제에 발을 들여놓던 한국영화는 2002년 들어 연이어 쾌거를 이뤘다. 2000년 <춘향뎐>에 이어 <취화선>으로 두 번째 경쟁부문에 진출한 임권택 감독은 제 55회 칸영화제에서 감독상을 수상했다. 영화제 후반에 시사를 하는 영화들이 주로 수상할 가능성이 높다는 관례에 따라 수상 예감은 이미 팽배했다. 폐막식 하루 전날 공식 시사를 가진 <취화선>은 “매혹적인 추상의 경지로 인도하는 정확한 연출의 소유자”라는 현지평과 함께 지난 세월의 노고를 세계적으로 인정받았다. 한국을 대표하는 임권택 감독의 영화제 수상은 한국영화의 수준을 상징하는 것이었다. 한편, 이창동 감독의 <오아시스> 역시 59회 베니스영화제에서 주요 부문을 수상함으로써 축포를 이어갔다. 비공식 부문 4개 부문을 비롯, 이창동 감독이 감독상을, 여자주인공 문소리가 신인여우상을 받았다.

2002년의 영화

홍상수의 터닝포인트_<생활의 발견>

홍상수의 세계가 넓고 깊어졌다. 전작 <오! 수정>으로 변화의 양상을 보였던 홍상수 감독은 춘천과 경주를 오가는 주인공 경수의 며칠간 여행기를 통해 인간에 대한 묘사와 그 형식에 대한 극단을 이어갔다. <씨네21> 올해의 영화 1위에 오른 <생활의 발견>은 홍상수 감독이 <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 이후 고수해오던 그동안의 자기 형식을 일단락짓는 것과 동시에 전환을 시도한 작품이다.

제작비 100억, 흥행은?_<성냥팔이 소녀의 재림>

2002년을 뜨겁게 달군 이슈의 영화는 단연 <성냥팔이 소녀의 재림>이었다. 작가감독 장선우의 액션영화라는 점에서, 제작비 100억여원에 이르는 큰 제작비라는 점에서 먼저 관심거리였지만, 영화가 흥행에 참패하면서 더 화제가 되었다. 이 영화 한편으로 투자사 튜브엔터테인먼트가 흔들렸고, 충무로 투자자본의 썰물현상이 일어났다.

TREND

<집으로…> 흥행돌풍

예상하지 못한 일이었다. 순제작비 15억원, 스타도 없었고, 액션도 없었다. 등장인물이라곤 시골에 살고 있는 할머니와 그 집에 억지로 떠맡겨진 꼬마뿐이었다. 하지만 흥행 대세는 엄청났다. <집으로…>는 4월4일 개봉 2주 만에 전국관객 100만명을 돌파했다. 비수기임에도 불구하고 전국 400만녕을 넘어서면서 블록버스터영화들을 무색하게 했다.

쇼박스 진출, 3강 예상

시네마서비스와 CJ엔터테인먼트의 2강 체제에 균열이 일어났다. 10월 말 출범한 오리온 그룹의 투자, 배급사 쇼박스가 3강 체제를 노리며 등장한 것. 작품은 <중독> <색즉시공> <이중간첩> <빙우> 등으로 이어졌다. 막강한 극장체인 메가박스를 보유하고 있다는 것이 차후 영향력 증가의 한 요인으로 손꼽혔다.

영화 관련 스포츠 기자들 뇌물 수수

난데없는 촌지 관행의 망령이었다. 검찰은 영화사 관계자들로부터 홍보성 기사를 실어주는 대가로 19차례에 걸쳐 1900만원을 받아 챙긴 <스포츠서울> 전 편집국장 이기종씨에게 징역 10월과 집행유예 2년, 추징금 2천만원 등의 실형을 선고했다. 영화 배급사 간부 및 촌지 수수 관여 기자 등 3인에 대해서도 벌금 및 추징금을 내렸다.

스크린 수 1천개 눈앞

멀티플렉스 건립 붐이 가속화되면서 스크린 수 1천개가 눈앞에 닥쳤다. CGV는 전국 11개 극장 92개 스크린을 확보했고, 메가박스는 부산 해운대와 대구를 합쳐 20개 규모의 멀티플렉스를 세웠다. 롯데시네마 역시 2003년에 대구, 안산, 일산, 전주, 영등포 등에 5개 극장을 건립하여 140개관을 확보하겠다는 계획을 세웠다. 또한 시네마서비스의 극장체인 프리머스가 출범하기도 했다.

서울영상위원회 출범

4월25일 서울영상위원회가 출범했다. 부산영상위원회, 전주영상위원회에 이어 한국영화의 질적 향상을 위한 또 하나의 기반사업조직이 자리를 잡은 것이다. 그 한 예로, 경찰청이 교통혼잡을 이유로 불가한 <오아시스>의 영화 속 중요 장면 청계천 고가다리 촬영이 서울영상위원회의 설득 이후에야 가능했다.

흥행 5걸

(당해 개봉작, 서울 기준, 단위: 명)

1 <가문의 영광> 160만5775

2 <집으로…> 157만6943

3 <공공의 적> 116만1500

4 <광복절특사> 105만6211

5 <2009 로스트 메모리즈> 85만6150

NUMBER

33 <성냥팔이 소녀의 재림>에 쓰인 총기 수(정)

100,000,000,000 <성냥팔이 소녀의 재림> 제작비(원)

98,000,000 박기용 감독의 저예산 디지털영화 <낙타(들)>의 제작비(원)

12 <YMCA야구단>에서 여주인공 김혜수가 입고 나오는 의상(벌)

144 <죽어도 좋아>의 두 주인공 박치규 할아버지(73)와 이순예 할머니(71)의 나이를 합친 수(살)

CHARACTER

슈퍼히어로 혹은 인간말종_<공공의 적>의 강철중

공공의 적은 내가 처리한다! 강동서 강력반 강철중에게 두려운 게 있을까. 인간말종 강철중을 두고 “<박하사탕>의 김영호의 처절함에서부터 <투캅스>의 박중훈의 경쾌함까지 한 호흡으로 펼쳐놓는데, 놀랍게도 이 인물에겐 작위성이 아니라 즉물적 생동감이 넘친다”고 한 평가는 절대 과하지 않다. 맨주먹과 깡 말고 가진 것 하나 없지만, 강우석의 적확한 유머를 꿰뚫는데다 설경구의 동물적 본성까지 지닌 강철중은 분명 <공공의 적>을 살린 슈퍼히어로임이 분명했다.

말, 말, 말

“그 100억원으로 차라리 수재의연금을 내지….”(<성냥팔이 소녀의 재림>의 제작비 100억원에 대해 어느 관객이)

“일부러 희한한 역할만 고르는 건 아니에요. 청순가련, 나도 하고 싶은데요. 늘 특이하고 요상한 역만 들어오는 걸 어떡해.”(<복수는 나의 것> 직후, 배두나)

“대본상에서의 북한은 서방세계를 향해 테러를 일으킬 수 있는 가장 유력한 나라라는 점을 끊임없이 인식시켜주는 듯했습니다.”(차인표가 <007 어나더데이>의 역을 거절한 이유에 대해 말하기를)

“뱃속의 아이가 궁금한 건 정작 부모가 먼저 아닌가?”(김득구를 빨리 보고 싶다는 기자의 질문에, 곽경택이)

“별이야기가 나와서 말인데, 감독님도 내가 조감독 시절 보면 별에 신경 안 쓰는 척하면서도 굉장히 민감해 보여요. ‘흥행만 잘되면 돼’라고 해놓고서도 별 1개 반, 2개 반 받으면 은근히 다음 작품에서 부담 가졌잖아요.”(장규성 감독이 김상진 감독을 핀잔주면서)

“자율성과 다양성이 보장되지 않으면 문화는 죽습니다. 독립영화, 예술영화에 대한 지원을 대폭 강화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상업적 이익이 아니라 예술성과 현장성으로 무장한 실험영화들이 더 많은 관객과 만나야 영상문화 전체가 살찔 수 있다고 봅니다.”(대통령 후보 노무현씨가 <씨네21>과의 인터뷰에서 한 말)

PEOPLE

Too young to die_박치규, 이순예

<죽어도 좋아>의 주인공들은 두 사람이지만 한 사람으로 봐야 한다. 이들의 나이를 합치면 144살이 나오지만, 이들의 정열을 합치면 이팔청춘이다. <죽어도 좋아>는 좀처럼 한국영화에서 볼 수 없는 사회에서 소외된 자들을 주인공으로 다뤘다. 주인공 박치규, 이순예씨의 사랑은 흔히 볼 수 없는 것이기에 더 소중했다.

몸으로 전하는 영혼의 숨결_문소리

<오아시스>는 전과자 남자와 1급 장애인 여자가 사랑하는 내용의 영화다. 문소리는 여기서 장애인 여주인공 역을 맡았다. 그녀의 연기는 비슷하다는 의미를 넘어서, 진짜 감정을 전달하는 지점까지 갔다. 흔히들 너무 강한 역으로 데뷔한 배우가 고전하는 것과 달리 배우 문소리의 연기력은 <바람난 가족> <효자동 이발사>를 거치면서 점점 더 큰 신뢰를 얻고 있다.

월력

1월
주문형 영화채널(PPV: PAY PER VIEW) 서비스 시작
CJ 코스닥 등록
전국 시네마테크 연합체 한국시네마테크연합 1월25일 공식 출범

2월
한국영화조감독협회 출범
<엽기적인 그녀> 홍콩에서 개봉 첫주 박스오피스 1위

3월
로커스홀딩스-시네마서비스 합병 공식발표
노무현, 여론조사 결과 이회창 첫 추월

4월
격년제로 열리던 서울여성영화제 첫 연례화
서울영상위원회 출범

5월
영상미디어센터 ‘미디액트’ 개관
시네마테크 전용관 ‘서울아트시네마’ 개관
<씨네21>, 박찬욱, 류승완, 김지운, 장진 초대하여 “젊은 감독들, 관객을 만나다” 행사 개최
아트서비스 영화종합촬영소 기공
2기 영화진흥위원회 위원 9명 최종 확정. 위원장에는 이충직씨 위촉

6월
월드컵 본선에서 한국, 폴란드 누르고 48년 만에 첫승하고 연이어 16강 진출
6월 극장가 월드컵 붐으로 때아닌 한파

7월
7월26일 공개예정이던 <성냥팔이 소녀의 재림> 개봉 9월 초로 연기
노무현 대통령 후보, 스크린쿼터제 유지되어야 한다고 발언
<죽어도 좋아> 제한 상영가 등급 결정 논란

8월
<오아시스> 베니스영화제 경쟁 진출
대통령 후보 이회창씨 아들 병적기록표 조작 의혹 논란
프리머스 시네마 공식 출범

9월
<살인의 추억> 제작 발표.
유골 발견된 ‘개구리 소년’ 타살 의혹 제기

10월
쇼박스, <중독>으로 배급업무 시작
이두용 감독의 <아리랑> 평양에서 시사

11월
곽경택 감독 조직폭력배에게 거액의 돈을 건넨 혐의로 검찰 조사
<씨네21> 대통령 후보 4인 릴레이 인터뷰 시작

12월
노무현 후보 대통령 당선

사진 <씨네21> 사진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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