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1]
한국영화 10년, <씨네21> 10년 [10] - 2003년
2005-05-04
글 : 오정연
Top 웰메이드 열풍
<스캔들-조선남여상열지사>
<올드보이>

<살인의 추억> <스캔들-조선남녀상열지사> <올드보이> <장화, 홍련>. <씨네21>이 선정한 그해의 한국영화가 아니다. 전국관객 300만명 이상을 동원하면서 2003년 한국영화 흥행 5위 안에 포함된 영화들이다. 이는 변형된 조폭코미디 <가문의 영광>이 서울 160만명을 동원하면서 2002년 최고 흥행작이 되었던 것과는 분명 다른 현상이었다. 시나리오부터 촬영, 연출, 연기, 미술 등 제작 전반에 걸쳐 흠잡을 데 없는 완성도에 투철한 작가정신이 결합한 수작들이 양산되어 관객의 폭넓은 사랑을 받고, 또 다른 논쟁을 불러일으킨 탓에 2003년 한해는 제작자와 관객, 그리고 영화저널 종사자들 모두에게 행복한 한해가 됐다. 실제로 이해 연말 <씨네21>이 설문을 돌린 제작자 10명 중 8명이, 한국 영화계의 주목할 만한 변화로 웰메이드 영화의 성공을 꼽았다. 상업영화의 당연한 미덕에 불과한 웰메이드가, 한국영화의 화두로 떠오른 것에 대한 우려도 있었다.

2003년의 영화

한국 영화계의 반역작_<지구를 지켜라!>

전국 6만8천명의 흥행성적에도 불구하고 <씨네21>이 선정한 올해의 영화가 됐다. 물파스 고문을 등장시키는 악랄한 상상력, 지구를 통째로 폭발시켜버리는 통 큰 결말 등이 기존 한국영화의 한계를 뛰어넘는 ’반역’을 낳았다는 평이다. 끝까지 진위여부를 알 수 없었던 영화 속 외계인만큼이나 생생하고도 괴이하며 일관된 장준환 감독의 상상력이 낳은 최고의, 그러나 저주받은 데뷔작.

공공의 지적, 공공의 치적_<여섯개의 시선>

전주영화제 개막작이었고, 그해 말 극장에서 개봉된 인권영화 프로젝트 <여섯개의 시선>은 근근이 시도된 옴니버스영화 제작을 주류로 끌어올린 계기였다. 아시아의 감독 3인이 디지털 혹은 공포를 주제로 함께한 ‘디지털 삼인삼색’과 <쓰리>, 네명의 독립영화 감독이 성(性)을 주제로 만든 <사자성어>와 달리 박찬욱, 정재은, 박진표 등 당시 충무로에서 활발하게 활동 중인 감독들이 참여한 이 영화 이후 환경영화제, 포털사이트 다음 등에서 충무로 감독들로 하여금 옴니버스영화를 제작하도록 하는 시도가 이어졌고, 현재 두 번째 인권영화 프로젝트가 진행 중이다.

TREND

<동갑내기 과외하기>

인터넷 소설 영화화 본격화

인터넷 소설이 스크린으로 걸어들어왔다. 영화화된 인터넷 소설의 원조 <엽기적인 그녀>는 전지현 신드롬과 맞물려 제대로 부각되지 못했지만, <동갑내기 과외하기>는 달랐다. 이 영화가 500만명에 가까운 전국관객을 동원하며 슬리퍼히트를 기록하자 제작자들은 너나 할 것 없이 인터넷의 바다에 뛰어들기 시작했다.

<키노> 폐간

만개한 시네필 문화를 기반으로 1995년 창간된 영화전문지 <키노>가 통권 99호를 끝으로, 드라마틱한 작별을 고했다. 발행기업 부도와 교체 등 우여곡절을 겪으면서도 진지하고 급진적인 영화주의와 작가주의를 포기하지 않았던 <키노> 폐간의 직접적인 원인은 만성적인 적자. 여기에 영화담론의 대중화, 월간지가 수용할 수 없도록 빨라진 한국 영화시장의 리듬 등이 근본적 원인으로 지적됐다.

장국영 자살

사스의 공포가 유령처럼 전세계를 강타했던 그해 봄 만우절. 장국영이 호텔방에서 뛰어내려 생을 마감했다. 우울증, 연애문제 등이 원인으로 거론됐고, 유작인 <이도공간>과 자살의 유사성이 화제가 되기도 했다. 여름엔 생활고를 비관한 주부가 세 자녀와 함께 투신했고, 정몽헌 현대아산 회장도 자살하는 등 유난히 투신자살이 많았던 해다.

<여우계단>
<4인용 식탁>

다양한 공포영화의 등장

그해 여름은 서늘했다. <여고괴담 세 번째 이야기: 여우계단> <장화, 홍련> <거울속으로> <4인용 식탁> 등 다양한 소재와 성격으로 무장한 한국적인 공포영화들이 관객에게 사랑받았다. 일본과 미국영화를 모방한 공포영화들이 줄줄이 선보였던 2000년과 달리 이 영화들에는 장르를 예술로 승화시키기 위한 흔적이 역력하다는 평가를 받았다.

문화예술인들, 공직 진출

참여정부 원년. 감독 이창동과 영화평론가 이효인이 문화관광부 장관과 한국영상자료원장으로 ‘공익근무’를 시작했고, 경직된 관료문화 속에서 문화계에 실질적인 변화를 위해 노력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이창동 감독은 1년4개월 뒤 장관직에서 물러났고 이효인 원장의 1차 임기는 앞으로 1년4개월 정도 남았다.

2003년 흥행 5걸

(당해 개봉작, 서울기준, 단위: 명)

<살인의 추억> 191만2725

<매트릭스2 리로디드> 159만6천

<동갑내기 과외하기> 158만7975

<스캔들-조선남녀상열지사> 129만2951

<반지의 제왕: 왕의 귀환> 122만1545

NUMBER

8 <장화, 홍련> 세트제작 비용 8억원

3 파리에서 2월26일 동시 개봉한 홍상수 감독의 영화 3편

65 한국영화 개봉작 수 65편

4,160,000,000 한국영화 평균제작비 41억6천만원(순제작비 28억4천만원)

1,019,470,000 전국 총관객 수 10억1947만명

CHRACTER

“향숙아∼”_백광호

“향숙이? 향숙이 예뻤다.” 작은 눈을 한껏 뜨고 혹은 게슴츠레한 표정으로 반문하는 그 모습. 꼬질꼬질한 ‘추리닝’과 낡은 운동화를 유니폼처럼 걸치고 알 듯 모를 듯한 진술로 관객의 애간장을 태웠던 백광호, 그 백광호를 연기한 배우 박노식의 이름을 기억하는 이는 그리 많지 않았다. 그러나 존재 자체로 한 시대의 부조리함을 표현했던 박노식의 백광호는, 자신이 목놓아 부르던 이름 ‘향숙이’로 남을 것이다. 캐릭터를 알아보는 데 귀신 같은 안목을 지닌 모 개그프로그램에서 재빨리 백광호를 패러디한 캐릭터를 선보이기도 했다.

PEOPLE

2003 최고의 발견_박해일

송강호-최민식-설경구, 한국영화 남자배우 빅3의 뒤를 이을만한 배우를 꼽으라면 조승우와 함께 박해일이 거론되지 않을까. 이 진지한 젊음의 가치는 <질투는 나의 힘>의 원상에서 단연 빛났다. 욕망과 윤리, 그 사이에서 갈등하는 그의 모습은 오래도록 잔상이 남았다. <살인의 추억>의 용의자 또한 창백하면서도 서늘한 기운을 안겨줬다. “아무래도 저는 영화가 오래도록 필요로 할 사람은 아닌 것 같거든요.” 이걸 믿어야 하나. 그는 지금 <연애의 목적>에 이어 <소년, 천국에 가다> 촬영에 몰두하고 있다.

찬욱流를 형성하다_박찬욱

<공동경비구역 JSA>로 재기에 성공한 박찬욱 감독, 2003년 <올드보이>로 최고의 전성기를 맞는다. <복수는 나의 것>의 흥행이 기대에 미치지 못하면서 다소 주춤한 듯 보였던 그가 명실상부한 흥행작가로 거듭난 것. 즉, 흥행과 작가, 공존이 불가능해 보이는 두 수식어를 모두 거머쥔 것이다. 다양한 영화를 섭렵한 영화광으로서의 경력, 재기발랄한 B급 취향, 어느 정도의 정치성을 바탕으로 한 그의 영화는 홍상수의 뒤를 이어 하나의 트렌드를 형성한다. 숱한 단편영화 감독들, 더 나아가 상업장편영화 감독들에게까지 영향을 끼친 것으로 평가된다.

말, 말, 말

“키도 남들보다 작죠. 치아도 불규칙하죠. 가진 거라곤 평범함밖에 없어요.”(조승우)

“내후년까진 내가 파워 1위를 하겠지만 그렇게 되면 10번은 내리 하게 되는 건데, 그 이후에도 내가 계속 해먹어야 한다면 영화판 전체를 봐서도 안 좋다.”(강우석)

“이제는 정말 바뀌지 않으면 안 된다는 사실이 나를 계속 괴롭혔던 것 같아요. 스타가 아니라 배우로 불리고 싶다는 것이 이런 욕심을 가지게 된 출발점이겠죠.”(배용준, <스캔들-조선남녀상열지사> 촬영 중)

“최근에 김동주 대표 인터뷰에서 곽경택하고 나하고 박기형하고 허진호 얘기를 하면서 최신작이 다 실패했던 감독들이라 반성하는 걸 기대한다는 거 읽었다. 한순간에 이렇게 되는구나, 잠깐이구나, 그렇게 생각했지.”(박찬욱)

“가장 무책임한 기사가 ‘변신의 천재’, 뭐, 이런 거예요. 변신은 무슨 개뿔. 다 자기지. 배우들은 변신 못해요. 살빼면 변신인가?”(설경구)

“<복수는 나의 것> <살인의 추억> 같은 걸 보면 우와 세다, 그런데 나는 이런 ‘꽃가라’ 영화를 만들어야 하나 자학하기도 하고. 열심히 충만한 표정으로 꽃 다듬고 있는데 봉준호와 송강호가 “어이 감독님, 뭐 하시나” 하면서 내 꽃밭을 밟고 들어왔다.”(김지운, <장화, 홍련> 개봉 뒤)

“영화는… 아름다운 물귀신이랄까?”(튜브엔터테인먼트 김승범 대표, <튜브> 개봉 뒤)

“저한테 그렇게 큰 기대를 하신지 몰랐습니다. (웃음) 저 나름대로는 노력을 했는데 안 됐으니까 앞으로 여자문제는 관여하지 않겠습니다. 여러분들이 해주세요.”(임상수, <바람난 가족> 관련 최보은, 조선희와의 3각혈전 중)

월력

1월
<007 어나더데이> 상영반대 시위
다큐멘터리 <경계도시>, 국정원과의 갈등 심화
CJ 사무실에 소포 폭발물 배달

2월
<태극기 휘날리며> 크랭크인
노무현 대통령 취임
이창동 감독, 문화관광부 장관 취임

3월
이라크전쟁 발발
유오성과 진인사필름, 맞고소 취하

4월
장국영 투신 자살
CJS 연합 무산
조은령 감독 사망

5월
플래너스, 넷마블 흡수 합병

6월
영진위, 지역미디어센터 지원 결정
<반지의 제왕> 배급권, 시네마서비스에서 CJ로 넘어감

7월
월간 <키노> 7월호를 끝으로 폐간
이소룡 사망 30주년
생활고 비관한 주부, 세 남매와 투신자살
이효인 한국영상자료원장 취임

8월
정몽헌 현대아산 회장 투신자살
<영매> 개봉
아트서비스 스튜디오 개관

9월
태풍 매미, 한반도 강타
활력연구소 재개관

10월
<아리랑> 북한 시사
이승엽, 홈런 아시아 신기록 수립
신상옥·최은희, 안양신필름예술센터 개관

11월
<매트릭스3 레볼루션> 국내 개봉
노무현 대통령, 영화인들과 스크린쿼터 관련 면담 뒤 일방적으로 처리하지 않겠다는 답변

12월
박동호, CJ 대표로 취임
<반지의 제왕3: 왕의 귀환> 국내 개봉
<실미도> 개봉
활력연구소 문닫다

사진 <씨네21> 사진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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