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1]
<극장전> 극장에 도착하다 [2] - 리뷰 ①
2005-05-24
글 : 김봉석 (영화평론가)

반복은 반복된다. 영원히

인생은 거대한, 아니 사소한 연극이다. 홍상수의 영화를 보면서, 늘 그런 기분이 들었다. 그들은 지식인을 자처하지만 추잡하고 비열하다. 자신이 만들어낸 이미지에 집착하고, 고상하게 예술이나 학문을 말하면서도 진창 속에서 허우적거린다. 묘하게도, 그 조롱은 자신을 향한 것이었다. 그것이 홍상수의 영화를 허무에서 끌어냈다. 그냥 예리한 비난이거나 신랄한 조소였다면, 무시하고 지나쳐버릴 수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들의 위선 혹은 위악은, 스스로를 돌아보게 만들었다. <오! 수정>을 보면서는 가슴도 저렸다.

데뷔작인 <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은 돌연한 살인극으로 끝나고, 근작인 <생활의 발견>과 <여자는 남자의 미래다>는 모험에 나선 남자들이 길 위에서 방황하는 모습으로 돌연 멈춰버린다. 자신의 위치를 확인할 수 있는 달조차도 보이지 않는다. 막막했다. 어디론가 가야만 했다. 이제 <극장전>의 동수는 혼자 거리를 걸으며 되뇐다. 생각을 해야 한다, 생각을 해야만 갈 수 있다, 라고.

10년째 감독 데뷔 준비를 하고 있다는 동수란 캐릭터는 흥미롭다. 그는 잘나지 않았다. 동문 모임에 가면 자기를 싫어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을 분명하게 알고 있다. <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의 효섭처럼 자아도취에 빠져 있지 않다. 동수는 언제나 ‘글쎄’라는 단어를 달고 다닌다. 길을 나서도, 어디로 갈지조차 모른다. 그러면서도, 마음에 떠오른 말은 그대로 내뱉는다, 행동한다. 가식으로 덧칠하고, 잘난 척 쏘다니던 그들이 아니다. 망설이며 내뱉어버릴 뿐이다. 그런 동수가, 자신과 닮은 남자가 나오는 영화를 본다.

<극장전>은 난해한 구조다. 영화 속의 영화가 있고, 영화와 현실을 이어주는 영실이란 배우가 있다. 영화 속의 주인공 상원과 그가 자신의 이야기를 바탕으로 만든 인물이라고 믿는 동수가 있다. 영화를 보고 나온 동수는 영실에게 이상형이라며 접근하고, 결국은 하룻밤의 정사를 나눈다. <극장전> 안에서 영화와 현실은 겹쳐진다. 동수는 상원의 모델이 자신이라 믿고, 영실은 영화에서와 똑같이 술을 먹은 후 배가 아프다며 주저앉는다. 하지만 영실의 말대로, 그것이 뭐 그리 중요한가.

홍상수의 영화는 언제나, 사실을 가장한 연극이었다. 혹은 연극을 가장한 사실이었다. 어느 것이 우위인지 주장하지 않고, 그들이 모험에 뛰어들도록 그저 내몰았다. 배우들이 자신의 평소 말투와 행동을 반복하게 만들었고, 현실과 픽션의 경계를 지워버렸다. 그런 홍상수의 영화 만들기 과정이, <극장전>에서는 그대로 구조를 드러낸다. <극장전>은 그동안 만들어온 영화에 대한, 스스로의 발언이다. 여기에서도, 저기에서도 남산타워가 보인다. 동수는 영화에 나온 장소들을 순례하고 다닌다. 별다른 이유가 없는 듯도 보이지만, 과연 그럴까. 그게 세상이고 현실이다. 영화건 현실이건, 섹스를 하지 말고 우리 죽자고 내뱉지만, 간암에 걸린 이형수 감독은 ‘죽기 싫어’라며 울부짖는다.

<극장전>은 전작들보다 웃기지 않고, 야하지 않다. 이건 영화에 대한 이야기다. 홍상수의 영화에 관한 영화다. 그걸 다시 영화 속 영화와 그 영화에 관련된 사람들의 일상으로 풀어놓는다. 영화는 현실을 어떻게 이야기하고, 현실을 묘사한 영화를 보면서 우리는 또 어떤 생각을 하는가. 어떻게 살아가는가. 우리는 극장 앞에서, 극장 안에서 펼쳐지는 영화의 이야기 속을 헤매고 있다. 죽음 직전에서 도망쳐 나와, 미망(迷妄)에서 방황하던 그 남자는 이제야 ‘그만 뚝!’이란 말을 들었다. 이건 과거 이야기에 대한 요설인 동시에 미래에 대한 예시다. 모든 것은 나선형의 반복이었던 것이다.

그 반복의 끝이 어디인지, 나는 보고 싶다. 그것이 단지 내 뒤통수일지라도.

관련 영화

관련 인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