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층 깊어진 포스트모던
‘홍상수 영화’는 늘 그렇듯, ‘무엇을’보다는 ‘어떻게’가 더 재밌다. <극장전>도 그렇다. 물론 내용만으로도 <극장전>은 충분히 독특하다. 깊고 세밀한 시선에 포착된 사실주의적 이야기는 여전히 매력이 있다.
그런데, 그의 영화가 정말 돋보이는 것은 그런 사실적인 이야기의 내용이라기보다는 그 내용을 전달하는 방식의 남다름 때문일 것이다. 좀 과장해서 말하자면 <극장전>에서 내용은 별로 중요하지 않다. 감독 데뷔를 희망하는 어떤 30대 남자가 혼자 헤매고 다니는 하루 동안의 이야기다. 홍상수 영화를 봐왔던 관객이라면 이야기가 어떻게 이어지리라, 대강 감잡을 수 있는 내용이다. 게다가 주인공으로 <생활의 발견>에서 경수 역을 맡았던 배우(김상경)가 또 나오므로, 서먹한 농담과 멋쩍은 유머, 그리고 실감나는 정사장면까지 상상할 수 있을 것이다.
<극장전>의 매력을 전달하는 데 좀 손쉬운 방법을 택한다면, ‘포스트모던’이라는 비평용어로 접근하는 게 좋을 것 같다. 이 단어가 내포하고 있는 가벼운 유희성 때문에 자칫 오해하기 쉬우나, 포스트모던은 자신을 스스로 돌아보는 성숙한 태도가 없이는 나올 수 없는 미학인 것은 분명하다. 시간 순서에 따른 미학의 발달과정에서 보자면 뒤쪽에 자리잡고 있는 게 포스트모던이다. 그래서 ‘어른의 미학’이라고도 해석된다. 유아는 자신을 돌아볼 줄 모르기 때문이다.
홍상수의 영화는 포스트모던하다. 영화 자체에 대한 자의식이 전제돼 있다. 이런 점에서 홍상수와 김기덕은 특히 돋보이고, 이들이 해외영화제에서 자주 주목받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영화 만들기의 다른 경우, 대부분 이런 본질적인 과정을 의식하지 못하거나 혹은 의도적으로 건너뛴다. 나는 <극장전>을 이전의 홍상수 영화보다 더 흥미롭게 봤는데, 영화 매체에 대한 감독의 시선이 더욱 복잡해졌고, 더욱 발전했기 때문이다.
언젠가부터, 아마도 <오! 수정> 이후로는 본격적으로, 홍상수의 영화는 자기반영적인 세상 속에서만 펼쳐지리라는 게 짐작됐다. 영화의 현실 재현성의 문제가 이야기 전개의 저변에 항상 깔려 있었기 때문이다. 우연히도, 그때부터 영화 속에는 매번 감독, 배우들이 주인공으로 등장했다. 그래서 그가 허구와 현실의 경계를 질문하는 영화를 만들어내리라는 것은 어렵지 않게 예상됐다. <극장전>은 그 예상의 기대치다. 속된 말로 올 게 온 것이다.
<극장전>은 영화 속에 영화가 등장하는 형식을 갖고 있다. 일종의 극중극인데, 두 허구 사이의 경계는 물론이고, 두 허구와 현실 사이의 경계까지 흐릿해져 있다. 영화가 현실을 반영하는지, 그 반대로 현실이 영화를 반영하는지, 그리고 허구는 어떻게 다른 허구를 반영하는지까지 슬쩍슬쩍 자문케 한다. 자크 리베트 같은 의식 과잉의 프랑스 감독들이 종종 사용하는 방식이다.
그런데, <극장전>은 자칫 엘리트의식으로 흐를 수 있는 극 분위기를 아주 흥겹게 만들어놓았다. <여자는 남자의 미래다>에서도 그랬지만, <극장전>에선 유머가 더 경쾌하게 사용된다. 포스트모던이니 하는 골치 아픈 말을 전혀 의식하지 않아도 충분히 즐길 수 있게 이야기가 흘러간다. 영화매체의 본질을 더욱 의식하고 있지만, 그 의식은 허구가 제공하는 재미 속에 살짝 가려져 있다. 그래서 <극장전>은 성숙한 영화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