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1]
<극장전> 극장에 도착하다 [4] - 리뷰 ③
2005-05-24
글 : 유운성 (영화평론가)

허구와 현실 사이의 지적인 유희

<극장전>은 홍상수 스스로가 그간 자신이 만들어온 영화들과 그것들을 에워싸고 있는 다양한 평가와 해석들을 염두에 두고 내놓은 유머러스한 논평이라 할 만하다. 여전히 홍상수의 남자들은 하릴없이 거리를 배회하고, 여자를 만나 술을 마시고, 그녀와 섹스를 하고, 결국엔 혼자 남겨진다. 이 과정은 <극장전>에서 두번 반복된다. 한번은 ‘영화 속 영화’의 주인공인 상원을 통해, 또 한번은 그 영화를 보고 나온 극중 주인공 동수를 통해서이다. 이때 그 둘을 잇는 고리는 ‘영화 속 영화’의 주인공 역을 맡은 여배우 영실이다. 허구와 현실의 관계, 기억의 애매성, 모방, 차이와 반복, 그리고 일상성 등등 이른바 ‘홍상수적 주제’라고 하는 것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어김없이 불려나온다. 홍상수의 시선은 그 어느 때보다도 넉넉해 보이고, 팬, 틸트, 줌 등의 촌스러운 기법의 현란한 활용에 의해 얻어진 일종의 ‘메이킹 필름 스타일’까지 더해져, 영화를 보는 관객은 그 허허로움에 쉬이 감염될 수밖에 없다.

그런데 정작 극장 문을 나서는 순간 우리는 어리둥절해진다. 영화를 보고 나와 극장 ‘앞’(前)에 서는 순간 무언가 다른 ‘이야기’(傳)가 시작될 것만 같은 기묘한 느낌이 서서히 퍼지기 시작한다. 기시감과 예지가 혼란스럽게 뒤섞여 우리를 엄습해오는 이 낯선 시공으로부터 탈출하기 위해서는 적지 않은 시간이 필요하다. 범속함이 생경함으로, 일상이 판타지로, 미소가 불안으로- 혹은 그 역도 가능하다- 바뀌는 찰나, 문득 홍상수가 우리를 멋지게 속여넘긴 것이라는 데 생각이 미친다. 유령과 하룻밤을 지새우고 나서 바야흐로 폐허가 된 집터에 홀로 남겨져 있을 뿐임을 깨닫곤 하던 오래된 괴담(怪談)의 주인공들처럼, 우리는 망연해진 채로 거리를 헤맬 수밖에 없다. 홍상수의 영화를 두고 행해졌던 그 숱한 애정고백들과 비판들 대부분이 결국 허깨비와의 섹스에 지나지 않는 것이었음을 인정하기란, 물론 쉽지 않은 일이다. 우리는 홍상수의 영화가 그저 우리네 일상에 대한 현미경적 해부에 지나지 않는 것이 아니라, 여주인공의 이름마냥 그림자(影)와 실체(實) 사이를 오가는 지적인 유희였음을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다.

홍상수는 여기서 우리가 영화를 빌미로 삼아 만들어내는 너무도 그럴듯한 온갖 억견들과 겨뤄보기로 작정한 것 같다. 예컨대 홍상수의 영화들은 많은 이들로 하여금 그를 영화 속의 남성주인공들과 동일시하게끔 이끌곤 했다. 오래전 소설가 최수철이 <배경과 윤곽>이라는 작품에서 언급한 바, “남들의 사생활에 대한 비상한 관심과 평범하고 지극히 현실적이어서 진부하기까지 한 이야기를 감상과 역설 혹은 독설로까지 끌고나가는 데에 온통 바쳐진 그의 오관에서 느껴지는 인상”은 고스란히 ‘홍상수적 리얼리즘/모더니즘’의 근원인 양 간주되었다. 자신의 이야기를 영화의 소재로 써먹은 선배 영화감독에 대한 동수의 불평은 위와 같은 태도를 고스란히 ‘반영’- <극장전>을 보고 난 이후엔 어쩐지 조심스러워지는 단어이긴 하다- 한다. 이에 대한 홍상수의 답변은 아마 다음과 같은 영실의 대사에서 찾아야 하지 않을까 싶다. “동수씨는 영화를 완전히 잘못 보신 것 같네요.”

결국 <극장전>의 숨은 주제는, 강력하기 짝이 없는 실재의 인상으로서의 이미지/사운드가 환유와 유사성의 위험을 감수하면서 ‘영화-되기’가 얼마나 힘겨운 것인가에 관한 것이라 하겠다. 영화 속에서 동수는 허구와 현실, 거울의 이편과 저편 사이의 대차대조표를 만들려 시도한다. 여러 항목들의 자리는 뒤바뀌고 가치 또한 달라지는 탓에 각각은 질적으로 다른 배열을 만들어내지만 동수는 거기서 오직 유사와 차이의 벡터만을 그려내려 시도한다. 이 악순환의 고리를 탈출하는 방법은 하나뿐이다. (홍상수의) 영화라는 세계를 ‘있는 그대로’ 그저 받아들이는 것이다. 하지만 현실이라는 이름의 강력한 이데아에 사로잡힌 이들에게 영화란 결국 상(像)들의 유희일 수밖에 없으며 바로 그 유희를 통해서만 현실성을 획득하게 된다는 걸 납득시키기란 어려운 일이다. 홍상수 또한 그 어려움을 알고 있다. 그런 까닭에 그의 영화의 수용은 언제나 오해 덕택에 가능해지며 오해야말로 그의 유일한 주제가 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차이와 반복 사이에서 모방의 덫에 사로잡힌 홍상수의 주인공은 바로 그 오해의 현현에 다름 아니다. 이러한 사실을 끔찍할 만큼 우스운 낯빛으로 천연덕스럽게 이야기할 수 있는 감독, 그가 바로 홍상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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