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장전>이 극장에 빠진 날
10년 전 홍상수 감독이 첫 영화 <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을 세상에 던졌을 때, 사람들은 그가 남루한 일상과 현대사회의 부조리함을 유례없이 정밀하게 영화로 옮겨내는 감독이라고 규정할 뻔했다. 그러나 <강원도의 힘>이 나오고 <오! 수정>이 뒤를 따르고, 그의 영화가 <생활의 발견>의 회전문을 돌아나와 <여자는 남자의 미래다>의 길 위에서 난데없이 멈춰서는 광경을 지켜보는 동안, 홍상수 감독이 동시대인의 위선과 위악과 남루함을 까발리거나 탄식하는 시인이 아니라는 사실은 점점 명백해졌다. 홍상수는 메시지와 드라마투르기를 비워내고 대신 삶의 표면을 잇는 패턴을 발명하여 그 자리를 채우고 시간의 ‘골격’ 같은 것을 드러내는 작업을 아무도 예상치 못한 집중력을 가지고 거듭했다.
네 사람의 이야기를 잇댄 <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 두 사람의 시점을 연결해 하나의 사건을 그리는 <강원도의 힘>, 하나의 사건에 대한 어긋난 기억을 재현하는 <오! 수정>, 한 남자의 길을 곧장 뒤따르되 그 안의 사건과 행위가 복제되는 <생활의 발견>, 그리고 스스로 그린 패턴이 문득 갑갑해졌다는 듯 비죽이 튀어나온 구조를 실험한 <여자는 남자의 미래다>까지. 언젠가부터 그의 영화는 글을 쓰기보다 도표를 그리고 싶어지는 영화가 됐다. 이제 우리는 기하학적 환영을 이용한 모리츠 에셔의 판화를 마주할 때처럼 홍상수의 새 영화를 대할 때면 이번에는 또 어떤 도안으로 안과 밖이, 현실과 기억이 이어질 것인지 궁금해하는 처지가 됐다. 우리는 그렇게 홍상수의 여섯 번째 영화 <극장전>에 도착했다. 불이 꺼지고 영화가 시작하면 자살하려는 두 젊은이의 가련한 하루가 펼쳐진다. 그러다가 반환점쯤에서 영화는 갑자기 줌아웃하고 그들을 둘러싸고 있던 더 넓은 세계가 드러난다(영화는 다행히도(!) 한번 더 줌아웃하지 않고 거기서 멈춘다). 정작 또 한번의 줌아웃은 우리가 극장 밖으로 나왔을 때 현기증과 함께 찾아왔다. <씨네21>은 홍상수의 여섯 번째 영화 <극장전>을 본 네명의 평론가에게 극장 안에서 무엇을 보았는지를 물었고, 홍상수 감독에게 그가 ‘극장 앞’에서 본 것은 무엇인지 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