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식적 낯가림’은 사라진건가?
-<극장전>의 특징 가운데 하나는 서울에 관한 일종의 지도를 그리고 있다는 점이다. 동선은 남산타워를 중심으로 움직인다. 지금까지 영화는 어떤 공간에서 다른 곳으로 이동하는 경로에 있었고 그러다 한곳에 멈춰 이야기가 진행된다. 이번엔 공간이 바뀌는데 다시 그 공간이다. 일부러 등장인물의 위치에 대한 정보를 자세히 알려준다는 느낌이 든다. 그건 어떤 힘이 지배하는 동심원처럼 보이기도 한다
=같은 공간에서 반복된다는 느낌이 좋았다. <강원도의 힘>도 좀 그랬다. 지금 불타버린 낙산사 공간이라든지. 남산타워는 왠지 내게 신경쓰이는, 웃기는 물건이다. (웃음) <오! 수정>에서도 올라가다가 말고 그런다. 그래서 쓴 거다. 올라가보고는 싶은데 막상 올라가면 되게 심심하다.
-<여자는 남자의 미래다>는 팬으로 왔다갔다하는 운동을 했다. <극장전>의 맴도는 운동은 이번 영화에서 많이 쓴 줌 기법과 연관된 것 같기도 하다. 어떤 공간에서 인물로 들어갔다가, 다시 빠졌다가. 줌은 모두 컷을 해야 할 듯한 순간에 쓴 것인가.
=대체로 그렇고 줌의 원래의 특이한 효과를 사용해보고 싶어서 한 것도 있다. 하여간 인물에 가까이 들어가야 하는데 그걸 컷으로 하고 싶진 않았다.
-예전에는 움직임이 없고 컷도 잘 쓰지 않고 ‘형식적 낯가림’이랄까 하는 게 있었는데, 그것이 사라져가는 느낌이다. 실은 줌이나 내레이션처럼 새로 도입한 요소가 굉장히 영화를 바꿨다거나 하는 느낌은 없다. 그래서 오히려 전에는 이 기법들을 왜 쓰지 않았는지를 묻는 것이 올바른 질문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말이 된다. 물론 전작들을 찍을 당시에는 그런 생각을 하지 않았다. 고정된 한계지만 나한테 그 한계 안에서 뭘 끼워넣는 즐거움이 있었나보다. 지금은 다른 걸 쓰고 보니, 그때도 쓸 수 있었을 것 같지만 그때로 돌아가면 어떨지는 모르는 거다. 내 영화에 엄격하게 최소한의 몇 가지 도구만 쓰자는 생각이 있었다. 하여간 줌은 편리하고 배우들의 흐름도 가로막지 않고 좋다. 예컨대 1부에서 상원과 영실이 남산타워 쳐다보며 걸어갈 때 카메라 움직임 같은 건 줌의 사용으로만 가능한 뭔가가 있다. 그리고 막상 써보니깐 그런 인위적인 카메라 움직임을 거슬려하지 않는 것 같았다.
-보이스 오버 내레이션 이야기도 해보자. 크게 보면 홍상수 영화들이 관습적 서술,‘내레이션’과 불화하는 영화들인데, 아예 보이스 오버를 집어넣었다는 점이 놀라웠다. 그런데 1부의 영화 속 영화에서는 빈번히 상원의 생각과 이야기 전개를 전하는 내레이션을 썼는데, 2부에서는 내레이션이 내내 없다가 결말부에서 뜻하지 않게 동수의 내레이션을 넣는 차이를 뒀다.
=내레이션을 처음 써봤다. 내레이션은 후시녹음이니 나중에 쓸 수도 있는 것인데 나 스스로 약속을 하고 다른 대사나 마찬가지로 현장에서 썼다. 이기우의 목소리도 현장에서 일단 다 땄다. 영화 속에서 아주 확실한 건 아니지만 동수의 주장에 따르면 1부에서 상원의 행적은 2부의 동수가 옛날에 했던 일일 수도 있다. 어느 순간까지는 자연스럽게 성장하다가 사회화하고 제스처를 배우며 단절을 겪은 사람의 경우를 생각했다. 그런 사람은 흔히 과거의 첫사랑에 지나치게 연연하고 의미를 부여하는데 2부의 남자가 영화를 보고 흔들린 하루가 지나 그 끝에 이르렀을 때 들떴다가 이렇게 가라앉는다는 걸 그 내레이션이 보여준다. 그렇게 1부와 강하게 연결되는 형식적인 효과를 의도했었다. 1부와 2부 사이의 내레이션의 빈도 차는 영화 속 영화와 현실 부분을 층지게 하는 유일한 장치였다.
-1부 상원의 이야기 안에는 현재시제가 멈추는 ‘구멍’이 두번 있다. <손숙의 어머니> 연극을 한참 보여줄 때와, 두 차례 섹스가 실패하고 상원이 꾸는 사과먹는 서양 여자의 꿈이다.
=연극도 극장에서 하니까. 연극 마지막에 “엄마!”라고 부른 것이 어머니와 불편한 관계를 갖고 있는 상원의 마지막 외침과 공명했으면 했다. 엄마랑 관계가 안 좋은 소년이 첫사랑을 만난 다음, 마침 그런 연극을 본 거고, 그리고 첫사랑 여자와 술을 마시고 여관을 갔는데 섹스가 안 된다. 이런 것들이 겹쳐지면서 죽고 싶다는 이야기가 나온 건데 여자도 같이 죽자, 하고 나오게 되는 거다. 꿈장면은 촬영날 몸도 안 좋고 섹스 두번을 포함해 찍을 것도 무척 많아서 현장대본을 질질 끌고 있었는데, 갑자기 소년이 섹스가 안 되어 잠깐 자는데 꿈을 꿀 것 같았다. 헌팅한 여관방에 문이 두개가 마주 붙어 있어서 일부러 그 방을 촬영할 방으로 정해놨었는데 그것과 연결되면서 그 문 밖에 뭐가 있을 것 같다는 느낌이 왔고, 그래서 꿈 생각을 하기로 한 거다. 처음에는 자두 먹는 거구의 60대 아르헨티나 남자라고 썼는데 쓰면서도 그런 사람 그 시간에 못 구할 것 같았다. 그래서 괄호 열고 (금발의 젊은 백인 여자)라고 썼다. 결국 자두도 제철이 아니라 사과 먹는 여자를 구해서 찍었다. (웃음)
김상경과 다시 작업한 이유는?
-감독이 <생활의 발견>의 경수를 좋아하고 김상경을 좋아하고 <극장전>의 동수를 좋아한다는 느낌이 든다. 로베르 브레송의 <시네마토그래프에 대한 단상>에서 두 영화에 같은 모델을 캐스팅하지 말라는 말이 있다. 한 영화에 필요한 캐릭터가 다른 영화에 필요한 캐릭터와 같을 수 없다는 입장이었던 것 같은데 <극장전>은 김상경을 다시 썼다. 동수와 경수가 다르지 않아도 된다는 생각이 있었던 것 아닌가.
=아까 말한 대로 1부는 <생활의 발견>의 원형 같았고 그래서 당연히 김상경이 떠올랐다. 2부의 주인공을 김상경으로 한 것은 믿는 구석이 있는 친구에게 마무리 타자를 맡기겠다는 생각도 있었다. 내가 연기를 끄집어내는 방식은 이렇다. 배우 전체를 부드럽게 만들고 대사나 행동을 자석처럼 그 앞에 놓으면 그 사람의 요소가 스스로 빠져나와서 자석에 붙는 식이다. 그러니까 준비할 수도 연습할 수도 없다. <생활의 발견> 때는 그렇게 해서 했는데 <극장전>에서는 조금은 다른 인물을 만들어야 한다는 강박이 김상경도 나도 있었던 것 같다. 그래서 그의 몸풀이 속에다 제한을 두었고 그것 때문에 상경이 많이 힘들어했던 것 같다. 풀라고 하면서도 어떤 부분은 깁스를 하는 식이었던 것 같다. 첫 촬영날 상경으로서는 자연스럽게 나오는 몇개의 표현들을 일부러 틀렸다고 말하고 그런 깁스를 만들기 시작했다. 그래서 상경이 두통약을 먹어가며 골치아파했던 것 같다.
-사실 영화는 표면만 슬쩍 건드리지만 언뜻언뜻 나오는 단서에 따르면 상원도 영실도, 영화 속 인물 상원의 모델일 수도 있는 동수도, 가족관계나 성장과정이 파란만장하다. 인물들의 숨겨진 스토리를 정해놓았었나.
=대강은 만들어놓은 게 있다. 막연하게 이럴 거다 하다가 배우가 물으면 그때 구체화시킨다. 예컨대 영실이는 정릉에 살 것 같다든가. 그러나 백 스토리가 너무 각이 딱 잡혀 있으면 배우와 일할 때 별로 안 좋은 거 같다. 구체적인 이미지가 있을수록 배우에게 덧씌우려고 하는 게 많아진다. 배우에게서 끌어낼 정도의 구체성만 있으면 된다.
-<극장전>의 주요한 모티브 가운데 하나는 뭔가를 계속 지연시키는 데서 오는 긴장감이다. 전반부에선 자살시도가 지연되는데, 눈이나 담배 등등이 방해를 한다. 후반부에선 동수가 병문안 가는 것이 지연된다. 에릭 로메르의 <모드 집에서의 하룻밤>이 떠오르기도 했다. 당신은 영화마다 어떤 키워드를 지정하기도 했는데 <오!수정>이 기억, <생활의 발견>이 모방, <여자는 남자의 미래다>가 플래시백, <극장전>은 지연이 아닐까 싶다. <여자는 남자의 미래다>는 부천에 가자고 하면 바로 가고, 여자랑 자려고 하면 자는데 <극장전>은 일이 그렇게 되지 않는다.
=사람들이 사는 것에서 보는 게 그런 거다. 사람들이 목표는 과잉으로 설정하고 성취하는 건 별로 없지 않나. 그러니깐 영화에서는 지체를 보여줄 수 있을 것이다.
-<여자는 남자의 미래다>의 마지막 장면은 여자가 택시를 탄 뒤 혼자 집에 돌아가지 못하는 남자 문호를 비추고 있었다. 문호는 집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 문호가 집으로 들어가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궁금해지는 장면이었다. <극장전>의 전반부에서 집으로 돌아가는 주인공 상원이 등장한다. 상원이 집으로 돌아가는 과정은 그가 자살을 시도한 다음이다. 그런데 집에서 듣는 말은 “나가 죽으라”는 엄마의 말이다. 그러니까 집에 가봐야 나가 죽어라라는 소리밖에 못 듣는 거다(웃음). 어쩐지 <여자는 남자의 미래다>의 문호가 집에 들어가도 그랬을 거라는 느낌이 든다. 아내가 자는 모습이 너무 예쁘니 뭐니 그런 말을 헌준에게 했지만 집에 가면 죽는다는 두려움이 있는 것 같다. 집 또는 가정을 자세히 그린 적도 없지만 당신 영화에서 집은 안전한 공간이 아니라 어떤 체제, 틀, 구조에 질식당할지 모른다는 느낌이다. 또는 <강원도의 힘>의 아파트 앞 장면이 떠오른다. 자동차에 아이가 칠 뻔한 대목. 집 밖을 떠돌아야 하는 것, 또는 기존 틀에서 벗어나는 것, 거기에서 삶의 구체적 형태가 드러나는 것일까.
=난 집에 들어가고 싶은데 왜 그럴까. (웃음) 우선 집 밖을 벗어나야만 이야기가 시작된다. 집 안에 들어가서 하는 이야기는 사실 하고 싶지 않다. 나이가 그런 거 같다. 오래 살지 모르지만 집 얘기를 나중에나 할 거 같다. 나는 내 인물의 모델이 된 사람이 영화를 보고 불쾌해할까 신경을 많이 쓰는 것 같다. 그가 영화를 보면 어떻게 느낄까 생각하며 쓴다. 그런데 가족은 아직 못 건드리겠다. 살짝 건드리고 도망가는 식이다. <강원도의 힘>에서의 주차장신이나, 이 영화에서의 거실신처럼. 지금 집안으로 깊이 들어가면 내가 활동을 못하거나 상투적이게 될 거 같다. 더 기다려야 할 거 같다. 다른 인물들을 만들면서도 시간이 충분히 지나가기를 기다리거나 여러 모델을 섞어서 씀으로써 삶의 모델들로부터의 부담감이 충분히 줄어드는 수준을 계속해서 추구한다.
“합리적인 제작 시스템을 만들려는 거다”
-자신의 제작사(<극장전>은 홍상수 감독이 설립한 전원사의 첫 작품이다)를 차리기로 한 것은 언제쯤인가.
=지난해 칸에서 그런 생각을 많이 했다. 비슷한 생각은 전부터 했는데 더 미루면 안 될 듯했다. 어떻게 보면 남이 하는 회사에 들어가서 감독만 하는 게 성격상 편하다. 집착하고 자질구레한 것에 많이 신경 쓰지 않을까 걱정도 많이 했다. 내가 만든 영화들은 (해외 세일즈를 합쳐서) 한번도 손익분기점을 못 넘었다. 제작 시스템이 조금 더 합리적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내가 언제까지 이렇게 영화를 만들 수 있을까. 좀 적극적으로 개입해서 제작비를 다운시켜야겠다고 생각했다. 남의 회사에서 하면 같이 일하는 스탭에게 덜 받으라고 할 수 없었다. 내가 만들면 스스로 적게 받으면서, “의미가 있다면 적은 보수라도 동참해다오”라고 부탁할 수는 있다. 이런 영화도 만들어져야 한다고 믿는 사람들에게 도움을 받으려면, 다른 사람이 아니라 내가 구심점이 돼야 한다고 생각했다. 합리적인 시스템을 만들려는 거다. 제작비가 충분히 내려가 내 영화가 불러모을 수 있는 극장 관객이 만들어내는 돈의 액수에 맞추어질 것이다. 그래서 손익분기점이 맞춰지면 영화를 계속 만들 수 있을 것이다. 이것도 안 되면 더 내려가서 디지털로 찍어야 할 것이고.
-실제로 <극장전>에서 좀더 제작비를 절감했나.
=줄었다. 순제작비가 8억몇천만원 들었다. 기본 스탭이 나까지 스무명이 될까 말까. 조명 세컨드 파트도 필요할 때만 했고 미술팀도 없다. 의상, 미술, 스틸, 메이킹 다 연출부가 한다. 소규모 팀이 나와 꾸준히 같이 가는 걸 원하고, 그런 사람들과 연을 맺고 싶다.
-김기덕 감독은 <활>의 마케팅과 배급도 자기 영화의 규모에 맞게 강행하겠다고 선언했는데.
=그렇게까지는 생각을 못했다. 배급이나 홍보는 남이 해주는 게 좋다. 그러나 <극장전>의 배급은 관수를 줄이고 다르게 가려고 한다. 배급시사가 끝나야 확정되겠지만, 최대한 펼치자는 식의 시장논리로 가면 1, 2주일 만에 떨어질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청어람 최용배 대표와도 처음부터 그렇게 얘기했다.
-<극장전>의 영어 제목은 무엇인가.
=영어 제목은 없고 프랑스어 제목은 <Conte de cinema>, ‘극장의 이야기’다.
-현대의 한국이 아니라 이방의 도시나 과거를 무대로- 이 경우는 물론 예산문제가 따르겠지만- 만들어진 당신의 영화를 보고 싶다는 생각을 가끔 한다.
=다른 도시에서 찍는 생각은 가끔 한다. 시대극의 경우는 문제가 있다. 헌팅을 하면, 그곳은 내가 만든 공간이 아니라 거기에서 뭔가를 발견하는 게 가능하다. 하지만 시대극은 세트라 내가 생각해서 처음부터 만드는 거다. 그런데 자기 생각이란 것이 대부분 100% 상투적이다. 상투적인 영화가 나올 가능성이 높은 거고 발견의 기쁨이 없어진다. 그래서 재미가 없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