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꾼’의 기질에서 처연한 미학이
장 코르미에의 <체 게바라평전>
<반칙왕> 크랭크인 전날, 연출부 제작부와 간단한 저녁식사를 마치고 집으로 들어와 가방을 추렸다.
아무 생각없이 가방을 싸다가 “근데 가방을 왜 싸지?” 했다.
지방도 아니고 숙박하는 것도 아닌데. 싸다말고 가방을 골똘히 쳐다보니까 가방이 날 보고 이렇게 말하는 것 같았다. “이제 어떻게 할거야? 쌀 거야? 말 거야? 이 변덕아.”
그러다 이왕 싸기 시작한거 간편하게 시나리오랑 콘티만이라도 넣어 가기로 했다가…. 2분도 지나기 전에 이것저것 다시 집어넣기 시작했다.
C.D를 넣다 꺼냈다, 긴팔 재킷을 넣다 뺐다 갈팡질팡이었다. 매사 이렇다.
시나리오와 콘티마저도 넣다 꺼냈다 하는데 유독 가방 안쪽 한구석에서 출발을 기다리며 차 뒷자리에 자리잡은 아이들처럼 딱 버티고 있는 두권의 책이 눈에 띄었다.
안드레이 타르코프스키의 <봉인된 시간>과 <체 게바라>였다.
<봉인된 시간>은 이 시대의 숭배받는 영화작가인 안드레이 타르코프스키의 주옥같은 영화예술 에세이이며 그의 숭고한 미학관이 스며있는 명서라, 그렇다 치더라도 크랭크인 전날 게릴라 혁명가 게바라 평전은 왜 집어 넣은걸까? 반칙왕과 게바라랑 무슨 상관인가?
“나는 아르헨티나에서 태어나, 쿠바에서 싸웠고, 과테말라에서 혁명가가 되었다.”
앤드루 싱클레어의 <체 게바라>의 첫장은 이렇게 시작한다.
라틴아메리카가 낳은 불굴의 혁명가이자 전설적인 게릴라투사였던 게바라는 1928년 6월14일 아르헨티나의 로자리오라는 축구선수 이름 같은 곳에서, 꽤 유복한 가정환경에서 태어났다(부르주아계급이 게릴라가 되다니, 게바라의 인생역정은 한편의 드라마보다도 더 파란만장하다).
부에노스 아이레스로 이사하고는 의학공부를 시작했으며 그 당시 알베르토 그라나도스라는 친구와 함께 도보로 남미 전 대륙을 횡단하는 장도의 길에 올랐는데 여기서, 남미 전역에서 저개발의 고통스런 흔적을 체험한다.
이 여행은 훗날, 생사의 갈림길에서 모든 게릴라투사들이 감수해야 할 삶, 즉 처절하고도 필사적인 투쟁과 궁핍을 감당할 수 있다는 것을 확신하는 계기로 자리잡는다.
특히, 아마존 강변의 산 하브로 나환자촌에서의 기억은 “인간의 유대감과 사랑의 최고 형태는 고독하고 절망적인 인간들 사이에서 싹튼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또한 그는 “인간은 물질적으로 굶주렸을 뿐만 아니라, 무엇보다도 인간 존엄성에 또한 굶주려 있다는 것을 확신한다.”
게바라에게 있어 인간적이라는 말과 혁명적이라는 말은 동의어였다.
그리고 이 책에서 가장 감동스러운 부분은 그의 평생 혁명동지인 카스트로와 바티스타 독재정권을 무너뜨리고 카스트로가 쿠바혁명의 완성화에 힘을 기울인 반면 게바라는 거기에 안주하지 않고 또다른 혁명을 위해- 모든 의무 중에서 가장 신성한 의무를 위해- 볼리비아로 떠난다.
그때는 이미 고질적인 천식증세에 시달리는 중년이었고 수년간의 행정업무에 건강이 악화된 상황이었는데도 또다시 총을 잡은 것이다. 그는 타고난 혁명꾼이었다.
결국 게바라는 1967년 볼리비아군이 게릴라기지를 수색하면서 그의 사진을 찾아냈고 이 정보를 넘겨받은 미국 CIA는 볼리비아군과 합동수색활동을 시작했다. 그해 10월6일, 게릴라들은 정부군 1800명에게 포위되었고, 10월8일 게바라는 부상을 입은 채 생포되어 10월9일 볼리비아의 애송이 하사관이 처형을 자원하여 게바라에게 마구 총질을 가했으며 또다른 중위가 확인사살을 자원하는 등 비극적인 최후를 마친다.
비로소 그에게 평화가 찾아온 것이다.
그의 죽음은 세계 곳곳의 젊은 지성인들의 심장을 할퀴었으며 수많은 교실의 칠판 위엔 “게바라는 살아 있다”라는 문구가 유행처럼 번져 세계의 젊은이들은 1968년에 학생혁명을 일으킨다. 그의 죽음이 쿠바에 있지 않고 볼리비아 게릴라기지의 땀과 먼지 속에 있었다는 것은 전세계 학생들의 시위에 게바라의 초상이 들려 있는 것에서 알 수 있었던 것이다.
…여기까지 보면 게바라와 반칙왕이 아무런 관련이 없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런데 무슨 이유로 크랭크인 전날 게바라 평전을 가방에 곱게 모셔놓았을까?
내가 이 지면을 통해 내 영화관에(냉정하게 검토할 필요는 있겠지만) 지대한 영향을 끼친 수많은 예술서적을 뒤로 미룬 채 게바라 평전을 강추하는 이유는 딱 한 가지, “꾼”으로서의 기질을 통해 어떤 처연한 미학 같은 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헝가리 출신의 예술사가인 아놀드 하우저의 역작 <문학과 예술의 사회사>에서 나를 눈물나게 한 대목 “창부는 격정의 와중에서도 냉정하고, 언제나 자기가 도발시킨 쾌락의 초연한 관객이며 남들이 황홀해서 도취에 빠질 때도 그녀는 고독과 냉담을 느낀다. 요컨대 창부는 예술가의 쌍둥이인 것이다.”
자기가 이뤄놓은 모든 성취물에서 가장 멀리 떨어져 있는 존재들.
쿠바혁명의 성과물을 뒤로 한 채 또다시 산간과 밀림으로 뛰어든 혁명“꾼”의 미학을 통해
반칙왕을 준비하는 보잘것없는 이 영혼에 어떤 울림과 긴장을 주고자했던 것이 틀림없다.
그리고 내일을 준비하는 젊은 지성에게 강추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는 것이다.
게바라는 전쟁 속에서 자신의 평화를 찾았다고 한다. 다른 사람들을 자유롭게 해주면서 자기 자신을 자유롭게 한 것이다.
- P.S : 지금 큰 책방이나 대학가 서점을 가면 몇권의 게바라 평전이 나와 있다.
이 책은 80년대에 나온 책( ? )이라 그런지 게릴라이론에 많은 부분이 할애돼 있다.
그 이유는, 음, 그 당시엔 그랬다.
꼭, 앤드루 싱클레어의 게바라 평전이 아니어도 상관없을 듯하다.
왜냐하면 그의 빛나는 삶이 어떤 누구에 의해서 바래지거나 왜곡되진 않을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