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1]
<씬 시티> 미리 보기 [1]
2005-06-21
글 : 박혜명
글 : 김도훈
<씬 시티>는 어떻게 모방의 최고 경지에 이르렀나

미국 펄프 문화의 최전선

로버트 로드리게즈 감독은 프랭크 밀러의 코믹북 <씬 시티>의 영화화를 공식 발표하면서 자신이 원작만화와 작가의 오랜 팬임을 자처했다. 꼭 그렇게 공언하지 않더라도 로드리게즈의 <씬 시티> 영화화는 이상할 것이 없다. 로드리게즈는 미국의 펄프 문화를 즐겨왔고 그 자신이 같은 분야의 생산자임을 즐기는 감독이다. 온갖 장르의 싸구려 혼합물 <황혼에서 새벽까지>, 조악한 CG의 황당한 가족오락물 <스파이 키드>, 서부극 장르를 뻔뻔하고 유치하게 베낀 ‘엘 마리아치’ 신화담 <엘 마리아치>와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멕시코> 등 그의 영화들은 단순명쾌한 오락물들이다.

<씬 시티>도 감독이 저 하고 싶은 대로 만들었다는 점에서는 위의 영화들과 크게 다르지 않다. 다만 원작의 비주얼을 먹지대고 베껴내듯 은막 위에 옮겨보겠다는 결심이 로드리게즈를 다소 신중하고 진지하게 만든 듯하다. 조악한 장난기는커녕 시시껄렁한 농담 한마디 오가지 않는 대신(이 부분이야 원작 탓이겠지만) <씬 시티>에서는 감독의 심혈이 배어나온다. 이 영화는 거의 흠잡을 데 없는 비주얼로 만들어진 모사품이다. 미장센, 컬러링, 음영효과는 물론이거니와 편집 리듬까지도 원작을 닮았다. 대중예술의 한 장르가 다른 장르를 얼마나 근접 모방할 수 있을 것인가라는 질문 자체도 흥미롭지만 로드리게즈의 집념 어린 결과물은 기특할 따름이다. 원작이 낯설지 않은 미국의 평단들은 로드리게즈의 <씬 시티>를 더 적극적으로 지지한다. <롤링 스톤>의 피터 트래버스는 “끊임없는 생명력”이라는 구절로 <씬 시티>를 치환하면서 “대담하고 타협하지 않는 비전에 이미 할리우드는 굴복한 듯하다”고 평하고 있고, 로저 에버트는 “캐릭터의 묘사와 스토리의 축약은 마치 일기예보 지도 위에 날씨가 고스란히 얹힌 것 같다”고 썼다. 원작의 형질을 가늠해보게 만드는 영화 <씬 시티>는 영화 테크놀로지의 도달가능 영역에 관한 로드리게즈식 실험 보고서다.

영화 <씬 시티>는 원작의 열개 에피소드 가운데 세개의 에피소드가 묶여 완성됐다. 밀러의 첫 번째 정식 에피소드인 <힘든 이별>(이 에피소드보다 먼저 그려진 것은 48페이지짜리의 극히 짧은 단편이다. 주인공은 마브. 밀러는 이 에피소드가 예상외의 호응을 얻자 <힘든 이별>이란 제목으로 내용과 분량을 확장했다)은 험상궂은 외모 탓에 평생 제대로 여자를 가져본 적 없는 남자의 이야기다. 금발과 붉은 입술과 완벽한 가슴을 가진 여자와 일생에 다시 없을 하룻밤을 보낸 그는 이튿날 새벽 그녀가 죽어 있음을 발견하고 살인자를 찾아나선다. <빅 팻 킬>(The Big Fat Kill)은 말 그대로 ‘엄청나게 대단한 살인’에 관한 이야기다. 시작은 미미하다. 사소한 연유로 경찰을 죽인 남자가 범죄사실을 은폐하려다 베이신 시티의 사창가 골목에서 더 큰 혈전을 불러일으키고 만다. 노란 악당이 등장하는 <옐로 배스터드>는 은퇴를 앞둔 경찰관과 어린 소녀의 낭만적인 러브스토리다. 이 세개의 에피소드는 타란티노의 <펄프 픽션>처럼 공통적인 인물들과 공통의 공간을 통해 서로 느슨하지만 떼놓을 수 없게 얽혀 있다. <씬 시티>는 결국 울룩불룩한 보디라인을 과시하는 여자들과 트렌치코트 안에 장전된 총을 넣어둔 남자들의 이야기다. 시보다 아름다운 직유법이 동원된 건조하고도 멋들어진 대사가 오가는 동안, 비극적이면서 잔인하고 냉소적인 결말로 끝나버리는. 이 세계는 원작자 밀러의 것이며 로드리게즈의 손에서 창조된 것은 없다. 로드리게즈가 ‘프레임 바이 프레임’에 너무 집중한 나머지 탄력적인 스토리텔링에 소홀하고 말았다는 점은 아쉬운 대목이기도 하다.

결국 오는 6월23일 국내 개봉을 앞두고 영화 <씬 시티>에서 미리 들춰볼 만한 부분은 원작의 일란성 쌍둥이 같은 영화의 탄생 과정이다. 프랭크 밀러의 원작 이야기부터 시작해 로드리게즈와 밀러의 만남, <씬 시티>의 촬영과 후반작업에 대한 이야기를 담았다. 많고 다양한 캐릭터들도 간추려 미리 소개한다. 올해 칸영화제 경쟁부문 초청으로 직접 만나고 온 로드리게즈와 밀러, 그리고 배우들의 인터뷰를 마지막 3페이지에 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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