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 타이틀]
김송호의 라이브 액션 <대괴수 바란>
2005-08-22
글 : 김송호 (익스트림무비 스탭)
마이너 괴수 영화의 진품

거대 괴수는 킹콩이나 고지라, 가메라만 있는 것이 아니다. 거대 괴수 영화의 효시라고 할 수 있는 <킹콩>이 발표된 해가 1933년(시리즈 총 4편). 그리고 킹콩과 함께 거대 괴수를 대표하는 고지라가 1954년(시리즈 총 28편), 고지라와 지명도를 양분하는 또 다른 이색 괴수인 가메라가 1965년(시리즈 총 11편)에 각각 나왔으니 거대 괴수 영화는 최소한 50~60여년의 유구한(?) 역사를 지닌 장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더욱이 1960~70년대 일본에서 다수 제작되었던 TV용 특촬 시리즈에 등장한 괴수들까지 합치면 그야말로 '무수하다'라는 표현도 어색하지 않을 정도로 숫자가 늘어난다. 이렇게 괴수들이 많이 있으니 잘 알려진 것들과 그렇지 않은 것들이 공존할 수밖에 없다. 이미 세계적인 아이콘이 된 킹콩이나 고지라, 가메라와는 달리 웬만한 괴수 마니아들이 아니면 그 존재조차 모를 괴수들도 부지기수다.

이번에 소개할 영화 <대괴수 바란>에 등장하는 '바란'은 고지라 시리즈를 낸 도호 영화사의 괴수들 중에서도 비교적 덜 알려진 편에 속한다. 바란의 출연작은 이 <대괴수 바란>(1958)과 고지라 시리즈 중 한 편인 <괴수총진격>(1968)의 단 두 편. 도호의 특촬 괴수 영화에서는 모스라나 라돈처럼 각각의 독립적인 작품으로 등장한 뒤 고지라 시리즈로 흡수되어 단골 게스트가 된 경우가 많은데, 바란은 상대적으로 그런 기회가 적었던 것이다. 바란은 게스트 출연한 <괴수총진격>에서도 단 한 커트만 등장하는 수모를 겪은 뒤 역사 속으로 묻혀버리고 말았던 비운의 괴수다.

바란은 문명의 혜택을 받지 못한 한 산골 마을에서 신으로 섬기는 괴수다. 마을 사람들 사이에서 ‘바라다기님’으로 불리는 바란은 물속에 살면서(날다람쥐라며!) 외부인에게 방해를 받으면 마을을 부수는 등 난동을 부린다. 그러나 희귀 나비를 채집하던 연구원들을 죽인 바란은 군대의 공격에 의해 산을 떠나 도시에 접근하고, 결국 인간의 막강한 화력에 의해 격퇴되고 만다. <고지라>의 혼다 이시로 감독과 쓰부라야 에이지 특촬감독이 참여한 <대괴수 바란>은 스토리의 가능성을 제대로 살리지 못한 단순한 내용과 밋밋한 연출, 기존에 촬영된 특촬 커트의 재활용 등의 단점 때문에 전체적인 완성도는 다소 떨어진다. 하지만 육해공의 모든 환경에서 활동이 가능하다는 설정과 날다람쥐를 바탕으로 한 독특한 디자인의 바란은 영화의 우울한 결말과 마이너 괴수라는 현실이 얽혀 묘한 매력을 발한다.

DVD의 가격 대 성능비는 최고

미국의 미디어 블래스터에서 <Varan the Unbelievable>이라는 제목으로 출시된 <대괴수 바란>(정가 19달러 95센트)은 영어 자막이 추가된 것 외에는 도호의 일본판 DVD(정가 5,040엔)와 사양이 완전히 같다. 따라서 국내에서는 저렴한 가격의 미국판을 구입하는 것이 이득. 화질과 사운드는 아무래도 세월의 흔적이 느껴지는 수준이지만 흑백 화면의 느낌을 잘 살린 영상과 개봉 당시의 3.0 채널 사운드를 수록하여 원본의 보존에 최대한의 노력을 기울인 흔적을 엿볼 수 있다. 2.0 및 5.1 리믹스 사운드도 함께 들어있지만, 특히 5.1 사운드의 경우 별다른 채널 분리의 장점을 살리지는 못했다.

부록 가운데 가장 재미있는 것은 ‘수험생을 위한 고교 조형 II’라는 부가 영상. 현역 조형사인 시나다 후유키가 이 영화에서 바란의 조형을 맡았던 대선배 무라세 케이조에게 실습을 받는다는 내용으로, 마치 교육 방송 채널의 프로그램인양 다 큰 어른들이 ‘시나다군은 아주 질문을 잘 하는 학생이에요!’ 라며 교사와 학생 흉내를 내는 연출이 가히 포복절도급이다. 약 30여분에 걸쳐 바란의 표피 등을 제작하는 광경을 통해 괴수 조형에 대한 개념을 알 수 있게 한다. 역시 무라세 케이조가 참여한 음성해설도 제작 당시의 다양한 일화를 달변으로 들을 수 있으며, 최근 발견된 TV 방영판의 음성을 본편 영상과 함께 편집한 귀중한 자료 영상도 수록했다.

고교조형 II의 타이틀 화면. 아주 작정하고 만든 센스가 빛난다.
바란의 조형을 실습하는 광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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