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김성희의 터치 디즈니! 월트 디즈니 신화 뒤집기
2006-02-20
글 : 김성희

월트 디즈니는 대단한 사람이었다. 멋진 일화와 영웅담도 많다. 그러나 그것이 모두 사실일까?

월트 디즈니는 이야기의 장면을 묘사한 그림들을 쭉 벽에 붙이는 방식의 스토리보드를 만들어냈으며, 상업적인 장편 애니메이션의 대가였고, 디즈니랜드라는 불멸의 테마파크를 만들었다. 그가 처음 애니메이션에 도입한 토키기법, 멀티플레인, 제록스 복사, 시네마스코프 등 여러 기술들은 현재까지도 애니메이션 제작에 많이 응용되고 있다.

하지만 영웅에게도 단점은 있다. 방송에서 보이는 온화한 웃음과는 달리, 자기 마음에 들지 않는 사람이 있으면, 그 사람의 공이 아무리 커도 애니메이션 자막에 이름조차 올리지 않았으며 심지어는 해고해버리기까지 했다고 한다. 1955년 디즈니랜드가 처음 문을 열던 날도, 갑자기 몰려든 사람들 때문에 놀이시설이 고장 나고 입장권이 무용지물이 되자 불같이 화를 냈다고 전해지기도 한다.

오는 3월 플래티넘 에디션으로 출시되는 <레이디와 트램프>(1955)에는 상당히 흥미로운 부가영상이 있다. 바로 월트 디즈니의 전설 뒤집기. ‘레이디와 트램프 이야기’라는 부가영상에서 월트 디즈니 회사에서 홍보용으로 만들어낸 전설을 여러 사람들의 증언과 자료를 통해 바로잡는다.

그동안 알려진 레이디와 트램프에 관한 월트 디즈니의 전설은 다음과 같다. 첫 번째 전설, 월트 디즈니가 어느 날 부인과의 저녁식사 약속을 잊어버리는 바람에 그것을 만회하려고 모자상자에 강아지를 담아서 선물했다. 이 일화가 레이디와 트램프의 시작이 되었다. 두 번째 전설, 레이디와 트램프의 마지막 부분에서 트램프를 구하기 위해 마차에 뛰어든 트러스티는 원래는 죽게 되어 있었다. 그러나 이 장면을 먼저 본 월트 디즈니는 밤비에서 엄마가 죽었을 때의 충격을 다시 재현하고 싶지 않아서 결말을 바꾸었다고 한다. 그러나 이 두 이야기는 사실이 아니다.

조 그란트

첫 번째 이야기의 진실은 이렇다. 레이디와 트램프의 중요한 모티브는 원래 개와 아기의 관계다. 주인 부부의 귀여움을 독차지하던 개가 아기가 태어나면서 관심 밖으로 밀려나는 레이디의 이야기는 원래 조 그란트란 디즈니사 아티스트가 실제로 겪었던 이야기를 스토리보드로 만든 것이다. 그는 이 이야기를 바탕으로 여러 가지 스토리보드를 그렸고, 두 마리의 샴고양이와 개의 갈등 등 재미있는 이야기를 추가하였다.

그러나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를 제작하면서 월트 디즈니와 사이가 벌어진 그는 디즈니사를 떠났고, 그가 떠난 뒤 6년 뒤에 애니메이션이 완성되면서 그의 이름은 자막과 자료에서 사라진다. 1990년대에 디즈니사에 재입사한 그는 <라이온 킹> <포카혼타스> <뮬란> <환타지아 2000> 2004년 작 단편 <로렌조>까지 다양한 작품에 캐릭터 디자인, 스토리 등을 담당하며 맹활약을 펼치다 2005년 향년 97세로 별세하였다. 2005년에 개봉된 ‘치킨 리틀’은 뛰어난 애니메이터이자 스토리작가였던 조 그란트에게 헌정되었다.

두 번째 이야기의 주인공은 페기 리라는 여가수다. <레이디와 트램프>에서 여주인, 샴고양이 두 마리, 여가수 개 페그역까지 1인 4역의 성우를 맡고, 주제가까지 부른 페기 리는 트러스티의 죽음을 반대했다. 그녀는 아이들이 충격을 받을까봐 걱정하면서 밤비의 예를 들어 결국 결말을 바꾸게 하였다.

페기 리 역시 디즈니사와 오랫동안 사이가 좋지 않았다. TV가 널리 보급되면서 디즈니 애니메이션은 극장용 필름뿐만 아니라 가정용 비디오로 출시되었고, 몇 년마다 재개봉되면서 엄청난 수익을 얻었다. 그런데 이후에 생겨난 수익에서 그녀가 받아야할 개런티가 지급되지 않았던 것. 처음 계약금 외에 추가수입에 대한 지분을 요구하던 그녀는 법정소송까지 해야 했고, 1991년이 되어서야 230만 달러를 받을 수 있었다. 그녀의 일화 역시 그녀의 딸과 역사학자들에 의해 밝혀진다.

스스로 잘못된 일을 바로잡는 것은 쉽지 않다. 고발 프로그램이나 역사 프로그램이 아니라 자신들의 DVD 부가영상에서 진실을 밝힌 디즈니사의 용기가 멋지다. 2장의 플래티넘 DVD를 국내에는 한 장으로만 출시한 것은 아쉽지만 말이다.

<레이디와 트램프>

관련 인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