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1]
한국영화 점유율 40% 시대의 고민 [1]
2001-08-17
글 : 남동철 (부산국제영화제 프로그래머)
승리의 축배? 아직 이르다

시장점유율 50% 시대 임박, 새로운 과제 5가지 점검

“이보다 더 좋을 순 없다.” 요즘 한국영화의 활약상을 한마디로 요약하라면 이렇게 말하지 않을까. <친구>가 전국관객 800만명을 넘기며 상반기 한국영화 시장점유율을 38.3%로 끌어올린 데 이어 <신라의 달밤>과 <엽기적인 그녀>가 여름 시즌 흥행 1, 2위를 다툴 것이 확실시되는 지금, ‘시장점유율 40% 시대’는 먼 미래를 기약하는 구호가 아니라 이미 도래한 현실이 됐다. 관계자들은 2001년 한국영화가 유례없는 호황을 맞고 있다는 사실에 동의한다. 최소한 1988년 직배영화가 들어온 이후 한국영화가 지금처럼 관객을 불러모은 적은 없다. 직배사들이 “직배영화 의무상영일수 보장하라”며 시위하는 날이 오지 않겠느냐는 우스갯소리까지 나올 지경이다.

정말 스크린쿼터가 필요없는 시대가 온 것일까? 영화계 종사자들을 당황하게 하는 건 이런 활황이 대단히 느닷없어 보인다는 점이다. 한국영화가 90년대 중반 이후 꾸준한 성장세를 이어온 건 사실이지만 올해 초만 해도 40% 시장점유율을 당장 이룰 수 있으리라 예측한 사람은 드물다. 아니 <친구>가 흥행신기록을 세울 때도 가능성으로 남아 있던 숫자였다. 가능성이 현실로 확인된 것은 여름 극장가였다. 전국 400만명을 돌파한 <신라의 달밤>은 현재 여름 시즌 흥행 1위를 차지하고 있다. <신라의 달밤>을 쫓고 있는 유일한 영화는 2주 만에 전국 200만명을 넘긴 <엽기적인 그녀>. <진주만> <미이라2> <슈렉> <툼레이더> <쥬라기 공원3> <혹성탈출> 등 제작비 8천만달러(약 1천억원)가 넘는 할리우드 블럭버스터들도 엄두를 못 낸 전국 300만명 고지를 훌쩍 넘긴(혹은 넘길 게 분명한) 한국영화 2편은 난공불락처럼 보이던 여름영화 시장에 깃발을 꽂았다. 할리우드 블럭버스터의 시즌마저 점령한 지금, 한국영화 시장점유율이 50%까지 육박하리라 전망하는 것도 터무니없어 보이지 않는다. 9월 <무사> <봄날은 간다> 등으로 시작되는 가을 시즌은 대대로 한국영화가 강세를 보였다는 걸 고려하면 가능성은 충분하다. 관계자들은 이런 추세가 최소 2년은 지속되리라 예상한다. 현재 기획중이거나 제작중인 영화들, 영화계로 유입되는 자본과 인력, 관객의 기대치와 만족도 등 여러 가지 정황이 한국영화의 폭발력에 힘을 실어주고 있기 때문이다.

질문을 던져보자. 무엇이 점유율 40% 시대를 만들었는가? “한국영화가 좋아졌기 때문”이라는 뻔한 정답이 있지만 그것만으로 이 낯선 분위기를 꿰뚫을 지혜를 얻기란 난망하다. 헤아릴 수 없는 여러 가지 요인들이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만들어간 한국영화의 성장궤적은 90년대 이후 한국영화사를 어떻게 쓸 것인가라는 문제를 던진다. 재능있는 감독들의 등장, 한국영화 전문배급사의 출현, 멀티플렉스의 성공, 스크린쿼터의 효과, 젊은 프로듀서들의 기획력, 투자자본의 양성화, 기술분야의 도약, 제작비 규모의 증가, 배급전략의 변화 등이 맞물린 양상을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미래에 대한 예측도 달라질 것이다. 한 가지 흥미로운 건 업계 변화에 민감한 사람일수록 한국영화의 가능성을 높이 평가한다는 사실이다. 그들은 음반시장에서 가요가 팝을 누른 것처럼 한국영화가 외화시장보다 커질 가능성이 충분하다고 말한다. 한때 비디오 유통업에 종속된 채 불안정한 투자, 제작 시스템을 유지했던 한국영화가 투자, 제작, 배급이 분업화된 안정된 시스템을 확보했다는 사실이 잠재력을 높이 평가하게 만드는 근거다. 영화업이 명실상부한 영화산업으로 전환된 셈이다. 낙관론은 홍콩영화산업의 쇠퇴로 맹주가 사라진 아시아 영화시장에서 한국영화가 새로운 강자로 자리잡을 것이라는 예상으로 이어진다. 불과 3년 전만 해도 어림없어보이던 일이 현실적 목표로 다가온 것이다. <쉬리>와 <공동경비구역 JSA>는 자신감을 갖게 한 결정적 계기였다.

물론 샴페인을 터트리는 게 급한 건 아니다. 갑작스레 점유율 40% 시대를 맞은 한국영화는 분명 새로운 도전에 직면하고 있다. 제작비는 시장의 한계를 검증받지 못한 채 치솟고 캐스팅은 갈수록 어려워지고 있으며 시장의 간택을 받을 수 있는 영화는 제한되고 있다. “최저생계비를 보장하라”는 70년대식 구호가 현장인력들로부터 흘러나오고, 스크린쿼터는 위협받고 있다. 새삼스런 문제는 아니지만 돌파구를 찾아야 할 현안들, 그것은 제작비가 모자라고, 상영할 극장이 없어서 애태우던 90년대 초에 비하면 확실히 행복한 고민거리지만 결코 사소하다고 할 수 없는 일들이다. 풍년을 맞은 농부라고 내년 농사에 걱정이 없을 수 없듯 호황의 절정에 있는 한국영화 역시 헤쳐갈 길이 만만치 않다. 과연 한국영화는 지금 어떤 표정을 짓고 있는가? ‘한국’영화를 얻고 한국‘영화’를 잃어버린다면 그래도 잘하고 있다고 박수를 보내야 하는가? 지금은 만사를 재점검해볼 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