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1]
한국영화 점유율 40% 시대의 고민 [6]
2001-08-17
글 : 문석
고민5 : “우리는 ‘아직’ 춥고 배고프다”

스탭 생존권- 직능별 조직 결성 등 다양한 처우개선안 마련 절실

지난 3월 영화진흥위원회 홈페이지 게시판과 4월 대종상 시상식장의 피켓 시위를 계기로 마른 벌판의 들불처럼 급속하게 번져갔던 스탭들의 기본 생존권 보장 요구는, ‘크고 비싸고 화려하게’라는 모토만을 좇고 있던 한국영화계에 내실강화라는 필요불가결한 명제를 던져줬다. 최근 상당수의 충무로 제작자나 투자자들의 입에서 “조수급 스탭에 대한 처우개선이 시급하다”는 이야기가 흘러나오는 것이나 영화진흥위원회를 비롯해 영화인협회, 영화인회의 등의 대안 모색 움직임은 이들의 문제제기가 빚어낸 결과다. 한국영화의 호기를 만들어낸 일등공신이 힌신적으로 노력해온 스탭들이라는 공감대가 이처럼 쌓이는 가운데 당사자들인 스탭들의 권리 찾기 운동도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고 있다.

각 분야의 조수급 스탭들이 ‘비둘기 둥지’를 중심으로 함께 목소리를 높이던 초기와는 달리 최근 들어서는 연출, 촬영, 조명 등 직능별 모임이 각자의 이해에 맞는 요구를 정리하고 조직 방도를 모색하는 분위기다. 이미 4월 분야별 모임을 구성한 촬영조수협의회는 참여한 영화가 도중에 제작 중단될 경우, 계약을 해지할 수 있도록 보장하는 것과 촬영이 연장될 경우 그에 상응하는 임금을 받는 문제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지난 6월30일 발족한 조감독협의회 준비위원회가 핵심적으로 요구하는 사항은 프리 프로덕션과 관련된 것이다. 프리 단계에서 일정액의 월급을 지급할 뿐 아니라 프리 프로덕션 인원을 최소화함으로써 조감독들에게 좀더 많은 작품에 참여할 기회를 보장해달라는 내용이다. 미술조수 준비모임도 6월중 결성된 미술조수 준비모임과 프로듀서모임 등으로 요구를 구체화하고 있으며 조명이나 음향 등 다른 분야도 차츰 논의가 활발해질 전망이다. 결국 스탭들의 요구는 그동안 자신을 희생해가며 한국영화 발전에 공헌한 점을 인정해 비현실적인 임금 수준을 정상화하고, 제작시스템을 합리화해 좀더 많은 작업에 참여할 수 있도록 해달라는 것으로 집약된다. 이렇게 될 경우 제작비에 어느 정도 부담은 되겠지만 다른 분야의 비용 상승에 비해 그리 큰 폭이 아니며, 다양한 작업 속에서 숙련도도 올라갈 것이고, 궁극적으로 자신의 업무에 더 애착을 갖게 돼 작품의 질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끼칠 것이라고 스탭들은 주장하고 있다.

이러한 스탭들의 요구에 대해 충무로 상층부는 대체로 공감하는 분위기다. 이들 역시 한국영화산업이 한 단계 도약하기 위해서라도 스탭에 대한 공정한 처우를 보장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현재 한 제작사는 스탭들의 개별계약, 제작기간 명시 등을, 또다른 두개의 제작사는 일정분의 러닝개런티 보장 등의 조치를 취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지나치게 급속한 변화는 부담이 될 수 있으니 점진적으로 개선해 나가자는 생각 또한 공통적이다. 또한 인건비 상승이 스탭의 전문화, 숙련화로 이어져야 한다는 것이 그 전제다.

이와 관련해 영화인회의는 8월중으로 ‘제작환경 및 근로조건 개선위원회 사업계획’을 영진위에 제출, 본격적인 스탭들의 처우개선 사업에 나설 계획이다. 광범위하면서도 구체적인 자료를 수집하고 연구를 통해 업무를 표준화하고 처우를 개선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할 셈이다. 영화인회의는 스탭들의 처우를 개선하기 위해서라도 전반적인 한국영화의 제작시스템을 바꿔나가야 한다고 진단하고 있다.

스탭 처우개선을 위한 움직임에서 영화인협회도 예외는 아니다. 유동훈 전 이사장이 사퇴 당시 밝힌 대로 영협은 영화인노동조합 결성을 본격적으로 추진할 전망이다. 유 전 이사장은 “만약 이대로 간다면 고급인력이 충무로에 남아나지 않을 것이며, 결국 자본이 없어서가 아니라 사람이 없어서 좋은 영화를 만들지 못할지 모른다”며 노조 결성의 필요성을 강조한다. 그는 최근 제작, 투자자뿐 아니라 젊은 조수급 스탭들과 모임을 갖고 영화인노동조합 설립의 당위성을 설파한 바 있다. 유 전 이사장은 “오는 20일 총회를 갖고 노조 추진위원회 결성을 논의할 생각이며 올해 안에 노조를 출범시킬 계획”이라고 밝혔다.

지난 6월 영화인회의의 간이조사 결과 조사대상인 30여명의 조수급 스탭 중 지난해 연봉 1천만원 이상 벌어들인 경우가 한명도 없었다는 사실은 화려하게만 보이는 ‘한국영화 르네상스’의 그늘이 얼마나 어두운지 잘 보여준다. 스탭의 기본 생존권 보장이 단지 파이를 나눠갖는 문제일 뿐 아니라, 더 큰 파이를 만들기 위한 투자라는 것을 영화계가 인식한다면 더이상 그들을 그늘 속에 버려둬서는 안 될 것이다.

이현승 영화인회의 사무총장 인터뷰

“제작 시스템을 바꿔야 한다”

-스탭문제에 관한 영화인회의의 입장은.

=스탭의 임금을 올려야 한다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요구다. 또 이 문제는 요즘 넓은 공감대를 얻고 있다. 우리가 제기하는 문제의 핵심은 한국영화 제작시스템을 바꿔야 한다는 것이다. 한국영화가 합리적인 제작방식을 갖는다면 낭비 요소를 줄일 수 있고, 이를 스탭의 급여인상에 더욱 적극적으로 반영할 수 있다. 제작시스템을 바꾸면 이렇게 양자가 서로 만족할 수 있게 된다. 물론 현행 제작시스템이 워낙 오랜 관행이어서 바꾸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바꾸지 않으면 도태되고 만다.

-8월중 영화인회의가 ‘제작환경 및 근로조건 개선위원회 사업계획’을 영진위에 제출할 것으로 알려졌다. 어떤 내용인가.

=제작환경을 분석 및 연구하며 임금조건에 관해 리서치, 자료수집 등의 활동 등을 펼친다는 것이다. 제작환경쪽의 경우 영화제작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비효율적인 요소를 찾아내고 개선안을 제시할 계획이다. 영화제작 현장에 들어가 사례연구도 진행하고 외국의 제작시스템을 연구해 모델로 삼아볼 작정이다. 임금조건의 경우, 직능별 임금조건과 계약환경 등에 관한 조사, 연구가 중심이 된다. 이를 통해 계약서의 표준항목 제시, 직능별 표준계약서 작성, 합리적 수준의 인건비 산정 등을 결과물로 내놓을 예정이다. 9월부터 본격 사업에 들어가 내년 5월쯤 최종 결과를 내올 것이다.

-스탭들의 권리 보장에 대한 제작자들의 입장은 어떤가.

=긍정적인 분위기지만 객관적인 데이터가 거의 없어 환경개선을 꾀하는 제작자들도 기준점을 못 잡고 있는 상황이다. 또 이를 주도해야 할 메이저 제작사들은 섣불리 스탭의 임금을 올렸다가 기타 중소업체들과의 균형문제가 생길까봐 적극적으로 나서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하지만 이 문제가 영화계 개혁의 차원에서 제기된다면 이야기는 달라질 것이다. 그래서 제작환경 및 근로조건 개선위원회의 사업은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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