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1]
한국영화 점유율 40% 시대의 고민 [2]
2001-08-17
글 : 문석
고민1 : 정말로 문제는 크기인가?

제작비 급상승 - 5년새 200% 증가, <쉬리>쯤은 비교가 안 된다

질문: “제작비 규모가 27억원 정도로 알려져 있는데 한국영화의 제작여건에서 너무 무리하는 것 아닌가.”

답변: “일단 돈이 많이 드니까 우려할 만도 하다. 하지만….”

1998년 7월 <씨네21>이 당시 <쉬리>를 제작중이던 강제규 감독과 가진 인터뷰에서 나온 이 대화는 한국영화 제작비의 상승곡선이 얼마나 가파른지 단적으로 보여준다. 불과 3년 전 “너무 무리하는” 수준으로 평가됐던 총제작비 27억원은 한국영화계에서 이제 ‘평범한 수준’이 됐다. <씨네21>이 자체 조사한 2001년 시네마서비스, CJ엔터테인먼트, 튜브엔터테인먼트의 투자배급작 28편의 경우, 총제작비 평균은 무려 33억원대에 이른다(<표> 참조). 이중 50억원 이상이 투입되는 대작영화 5편을 논외로 해도 총제작비 평균액은 24억7천만원이다. 1995년 순제작비 9억원, 마케팅비 1억원이었던 한국영화 한 편당 평균제작비는 1997년 각각 13억원, 2억원으로 올랐고 2000년엔 15억원, 6억5천만원으로 급상승했다. 결국 총제작비 기준으로 따지면 5년 사이에 두배 이상 올랐다는 결론이 나온다.

한국영화는 바야흐로 `돈걱정 없는 시대`를 맞이한 것처럼 보인다. 현재 영상 관련 투자조합의 규모는 5월 말 현재 19개, 1661억원에 달하며 기타 자본까지 포함하면 한국영화 제작에 쓸 수 있는 자본의 규모는 2천억원대에 이른다. 투자조합이 결성된 뒤 5년 이상 지속된다는 점이나, 투자수익률도 그리 나쁘지 않다는 점을 고려하면 당분간 한국영화는 안정적인 재원을 확보해나갈 것으로 전망된다.

`돈 걱정 없는 시대` 도래

마케팅 비용을 포함, 총제작비용 50억원을 웃도는 거대 프로젝트가 동시에 여러 개 진행되고 있는 현재의 상황은 이같은 투자원의 안정화에 힘입은 바 크다. 현재 순제작비 기준으로 45억원대의 <화산고>, 50억대의 <무사> <흑수선>, 60억원대의 <성냥팔이 소녀의 재림> 등이 제작을 마쳤거나 제작중이며, 60억원대의 <청풍명월>, 50억원대의 <내추럴시티> <튜브> 등이 올해 안으로 제작에 들어갈 예정이다. 이들 대형 프로젝트를 제외한 영화의 평균제작비도 크게 올랐다. 권병균 시네마서비스 제작관리실장은 “멜로영화의 경우, 지난해만 해도 14억원 정도만 들이면 찍을 수 있었는데 이젠 17억∼18억원 정도는 들여야 한다”고 설명한다. 차승재 싸이더스 부사장도 “해마다 30% 정도 오르는 것 같다”고 말한다.

이처럼 순제작비가 상승하는 첫 번째 요인은 스타배우를 중심으로 인건비가 천정부지로 뛰고 있다는 점. 몇몇 스타에게 작품이 집중되다보니 개런티가 계속 오르고 제작비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높아지는 추세다. 또 현재로선 극히 일부에 불과하지만, 촬영 등 일부 스탭의 경우 제작자들이 선호하는 몇명을 중심으로 수급불균형이 일어나 비용이 급상승하고 있다. 제작자와 투자사들은 또 스탭의 처우도 점진적으로 향상돼야 하기 때문에 인건비의 상승은 불가피하다고 내다본다.

두 번째로는 블록버스터 경향을 꼽을 수 있다. 블록버스터영화는 멜로 등의 장르와는 달리 컴퓨터그래픽, 특수효과, 음향, 의상, 분장, 미술, 스턴트 등에 대한 상당한 추가부담이 생긴다. 특수효과와 컴퓨터그래픽을 어느 정도 사용하면 1억원은 훌쩍 넘어가고, 군중장면이 나온다면 의상과 분장에도 많은 비용이 든다. 게다가 보통 2대 또는 3대씩 동시에 사용하게 되는 카메라 대여료도 만만치 않다. 35mm 카메라의 경우 하루 대여료가 100만원 정도 되는데, 블록버스터는 보통 100회 내외로 촬영이 진행되므로 다른 영화에 비해 카메라 대여료에서만 1억원도 넘는 차이가 날 수밖에 없다. 이런 사정은 조명도 마찬가지다. 스탭 수가 적어도 60명, 많으면 100명 이상의 규모까지 늘어난다는 점 또한 부담이 된다. 스탭 수의 증가는 단순히 인건비와 숙식비 등 로케이션 비용의 증가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권병균 실장은 “스탭 수가 50명이 넘어가면 실내장면 등을 찍을 수 없어 세트를 지어야 하는 추가부담이 생긴다”고 이야기한다.

세 번째는 완성도를 높이려는 노력에서 기인한다. 자본 여력이 생기다보니 좀더 좋은 영상과 음향 등에 대한 욕심이 생겼고 이는 고스란히 제작비에 반영된다. 빛에 더욱 민감한 카메라가 도입된다면, 이에 따라 조명 광량이 커지게 되고, 그럴 경우 거기에 맞는 분장을 해야 하는 식이다. 좀더 정교한 완성도를 위해 외국에서 믹싱작업을 한다든가 현상하는 일도 빈번해졌다. 현장에서는 완성도 때문에 비용 상승이 가장 높아진 부분으로 미술, 세트부문을 꼽는다. 갈수록 디테일이 살아 있는 영상을 요구하다 보니 미술의 비중이 상당히 높아졌다. 그 외에도 동시다발적으로 많은 프로젝트가 진행되다보니 각종 기자재의 대여비용이 올라간다거나 프리 프로덕션 기간이 길어지면서 부담이 커진다는 점도 빼놓을 수 없다.

순제작비 7억원, 마케팅 비용 5억원의 모순

그러나 평균제작비의 상승을 불러오는 요소 중 가장 두드러지는 건 단연 마케팅 비용이다. <표>에서 볼 수 있듯 마케팅 비용은 순제작비 상승률을 훨씬 넘어서면서 급속도로 늘어나고 있다. 우선 스크린 수가 늘어난 만큼 프린트 수가 증가했다. 석동준 CJ엔터테인먼트 한국영화팀장은 “<해피엔드> 같은 영화는 프린트를 80벌만 만들면 됐지만, 요즘 그 정도 영화라면 최소한 150∼160벌은 만들어야 한다. 프린트 한벌당 가격을 250만원만 잡아도 추가비용이 2억원 발생하는 셈”이라고 하소연한다. 온라인 매체 증가도 마케팅 비용 증가에 한몫했다. 웬만한 작품의 경우 온라인 홍보에만 1억원 이상을 쏟아부어야 한다는 게 업계의 정설이다. 신문지면과 방송 등을 통한 고전적인 마케팅 규모도 커졌다. 최근 개봉한 한 영화의 경우 개봉 전 신문광고에만 2억원대를 들인 것으로 알려졌다. 한 영화사 관계자는 “영화사마다 마케팅 비용이 고민거리가 되다보니, 서로 만날 때마다 ‘우리 이러지 맙시다. 과다하게 마케팅에 지출하다보면 모두 망합니다’라고 손을 붙잡고 뜻을 모으지만 결국 개봉에 몰리면 ‘믿을 것은 마케팅밖에 없다’는 심정으로 많은 비용을 넣게 된다”고 털어 놓는다. 이처럼 마케팅 비용의 기본 단위가 상승하다보니 기형적인 제작비 구조도 나타난다. 싸이더스에서 제작하는 한 영화의 경우 순제작비는 7억원에 불과하지만 마케팅 비용은 5억원을 책정하고 있다. 튜브엔터테인먼트가 투자하는 한 작품 역시 순제작비 7억4천만원에 마케팅 비용 5억6천만원 정도가 들 것으로 보고 있다.

이처럼 문제가 없지 않지만, 충무로에서는 대체로 제작비 상승을 한국영화가 한 단계 발전하기 위한 불가피한 과정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이은 명필름 이사는 “<쉬리>에서 보듯 기존 제작비의 2배를 써서 그보다 높은 이익을 만들어낼 수 있다면 제작비 상승을 두려워할 이유가 없다. 특히 투자자산이 많아졌으며, 국내시장뿐 아니라 해외시장도 커지고 있는 지금의 기회를 적극 활용해야 한다”고 말한다. 작품의 질이 떨어져 실패한다면 모르겠지만, 시장의 크기가 작아서 제작비를 건지지 못하는 상황은 이미 지나갔다는 얘기다. 그의 말마따나 최근 몇년 동안 한국영화의 시장은 엄청난 속도로 확장돼왔다. 우선 멀티플렉스가 전국적으로 급속하게 보급되면서 관객의 절대적인 숫자가 늘었다. 서울 기준으로 지난해 1년 동안 2700만명이던 관객 수가 올해 상반기에만 1500만명선으로 크게 증가했다. 이에 따라 관객의 1인당 영화관람 횟수가 상승해 지난해 1.3회에서 올해는 1.8회까지 늘어날 전망이다. 두드러진 성장세를 보이고 있는 한국영화의 경우 지난해 1년 내내 880만명이 들었으나 올해는 상반기에만 570만명 이상이 관람하는 급상승세를 기록했다. 특히 멀티플렉스 개관에 따른 지방관객의 증가추세를 고려한다면 지난해를 척도로 미래를 전망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라는 얘기도 나온다. 갈수록 확장되고 있는 아시아 중심의 해외시장도 아직 변수는 많지만 가능성은 무한하다는 견해가 지배적이다. 또 대형 프로젝트 몇개가 무너진다 해도 충분한 자금이 대기중이므로 높은 부가가치를 만들어낸다고 검증된 제작사, 제작자, 감독 등에 대한 투자는 지속적으로 이뤄질 것이라는 견해도 많다. 몇 차례의 시행착오를 겪다보면 불필요한 곳에 지출됐던 비용도 많이 줄어들어 제작비 증가세가 둔화되리라는 전망도 있다. 황우현 튜브엔터테인먼트 이사는 “영화가 완전한 산업으로 인정된다면, 할리우드처럼 기업의 PPL이나 공동 프로모션 등을 통해 마케팅 비용의 부담을 줄일 수 있을 것”이라고 낙관론을 보탠다.

물론 우려의 목소리도 높다. 순제작비 50억원, 마케팅 비용 10억원을 더해서 60억원을 들인다면, 관객이 서울에서 100만명, 전국에서 250만명 정도 들어야 손익분기점에 도달한다는 계산이 나오는데, 지난해에 전국에서 100만명 이상을 동원한 한국영화는 4편에 불과했고, 외화까지 계산한다 해도 10편 남짓이었다. 또 한국영화에 몰린 서울 관객이 모두 880여만명에 불과했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서울에서 100만명 이상의 관객을 끌어들여야 간신히 적자를 면하는 대형 프로젝트 영화 모두가 성공할 수는 없다는 사실은 불을 보듯 뻔하다. 10∼20대에 치우쳐 있는 한국 관객층의 분포를 고려한다면 1인당 관람영화 수의 증가 또한 어느 정도 한계에 부딪힐 것이며, 멀티플렉스 역시 머지않아 포화상태가 될 것이라는 주장도 나름의 탄탄한 근거를 갖고 있다. 할리우드처럼 제작비가 통제불가능한 지경이 되다보면, 볼거리 위주의 오락영화가 주류를 이루게 돼 그동안 각고의 노력 끝에 끌어올렸던 한국영화의 완성도를 잃게 될지 모른다는, 작품성 저하에 관한 우려도 제기된다.

현재 한국영화계는 제작비 증가를 놓고 서서히 조정국면에 들어가는 듯한 분위기다. 내년에 제작에 들어가는 작품에 어느 정도 투자해야 할지를 고민중인 주요 투자사들은 다소 신중한 입장을 취하고 있다. CJ와 시네마서비스 경우 총예산 50억원 정도를, 튜브는 60억원 정도를 ‘심리적 마지노선’으로 삼아 그 이상의 비용이 들어가는 프로젝트에 대해서는 이전보다 조심스런 태도를 보인다. “극장 입장료가 올랐고 시장이 확대돼 이전보다 많은 수익이 나고 있지만, 비디오 경기 부진으로 판권료가 대폭 하락했고 평균제작비와 마케팅 비용이 늘어나, 전반적으로 수익 증가폭보다 지출 증가폭이 상회하고 있다”는 상황진단은 비단 석동준 팀장만의 것이 아니다. 이같은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 프리 프로덕션의 강화, 극장 전산화, 해외시장 확대, 인적, 산업적 인프라 구축 등 다양한 대안이 제시되고 있지만 최소한 당분간 평균제작비의 상승 추세를 막을 수는 없을 것이다. 이제 한국영화계도 완성도의 향상, 국제경쟁력 강화라는 긍정적 효과와 시장의 불안요소 증가, 작품의 획일화 같은 부정적 효과를 동시에 내포한, 제작비 상승이라는 공룡을 길들여야 할 중대한 상황을 맞았다.

<표>/ 한국영화 평균 제작비 추이

구분 / 1995년 / 1997년 / 1998년 / 1999년 / 2000년 / 2001년

총제작비 / 10억원 / 13억원 / 15억원 / 19억원 / 21억5천만원 / 33억1천만원

순제작비 / 9억원 / 11억원 / 12억원 / 14억원 / 15억원 / 24억원

마케팅비 / 1억원 / 2억원 / 3억원 / 5억원 / 6억5천만원 / 9억1천만원

*2001년 통계는 <씨네21> 조사. 시네마서비스, CJ엔터테인먼트, 튜브엔터테인먼트가 투자 및 배급했거나 할 예정인 28개 작품을 대상으로 한 것이며 2001년 상반기 개봉작의 제작비와 하반기 개봉예정작의 예상제작비를 평균한 것으로 영화진흥위원회의 통계조사 방식과 차이가 있을 수 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