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1]
한국영화 점유율 40% 시대의 고민 [5]
2001-08-17
글 : 이영진
고민4 : 지킬 건 지켜야 한다

스크린쿼터 폐지론 - 영상문화의 다양성 확보를 위한 마지노선 사수해야

1997년 10월11일. 제2회 부산국제영화제 개막 다음날이기도 했던 이날 파라다이스호텔에선 영화인들과 대선정지작업을 위해 지방을 순회중이던 당시 국민회의 김대중 총재와의 만남의 자리가 있었다. 이날 김 총재는 기자회견을 열어 이후 국민의 정부 영상정책의 골간이 된 ‘영상산업진흥정책’에 대한 공약을 발표했다. 이날 영화인들에게 약속한 골자 중에는 “한국영화 시장점유율이 40%가 될 때까지 쿼터제를 유지할 것“이라는 내용이 포함됐다.

여기서 잠깐. 당시 공약 내용을 고스란히 기억하고 있는 이들이라면 불필요한 오해를 가질 수도 있다. 하반기까지 모두 봐야겠지만, 만약 올해 한국영화 시장점유율이 40%가 넘는다면, 내년에는 쿼터제가 축소, 또는 폐지되어야 한다는 결론에 도달하기 때문이다. 또한 10월 부시 미 대통령의 방한 일정이 잡혀 있고, 덧붙여 최근 한 소식통에 따르면 김대중 대통령으로부터 한-미 상호투자협정의 진척이 여의치 않은 이유가 무엇이냐는 질책성 발언을 들은 외교통상부가 어떤 식으로든 공약의 문구만을 들이대며 한-미 협정 체결의 최대 걸림돌인 쿼터제를 축소, 폐지하라는 압박을 가해올 것이라는 추론이 가능해진다.

그러나 아직은 성급한 판단인 것 같다. 일단 ‘40%’의 의미에 대한 오해부터 풀어보자. “한국영화산업을 보호하는 의미에서의 쿼터제가 아님을 유의할 필요가 있다. 이는 세계 영상문화의 다양성을 위한 것이다.” 쿼터연대 양기환 사무처장의 말이다. 특정 국가, 즉 할리우드의 세계 영상시장이 지배적인 상황에서 자국영화가 일정한 시장점유율에 올랐다고 해서 쿼터를 축소 또는 폐지할 수 없다는 뜻이다. 문성근 쿼터연대 이사장은 지난 3년 동안 프랑스의 상황을 그 예로 든다. 올해 프랑스의 자국영화 시장점유율이 55%였지만, 지난해에는 25%, 1999년에는 35%로 굴곡이 심했다는 점을 지적한다. 적어도 40%대를 앞으로 4∼5년은 더 유지한 뒤에야 쿼터에 관한 이야기를 꺼낼 수 있다는 원칙이다.

또 한 가지는 “쿼터가 지금의 한국영화 시장점유율을 강제했다”는 유의 주장이다. 올해의 경우, 직배사의 입장에서 보면 불공정한 게임이었다고 ‘강짜’를 부릴 만도 하다. 여름 시즌을 포함한 상반기 내내 제대로 기 한번 펴보지도 못하고 한국영화에 내내 고전했으니. 그러나 극장들이 최대 성수기인 여름부터 쿼터 일수 채우기를 서둘러 준비했다는 건 상식적으로도 이해가 가지 않는다. 양기환 사무처장은 “쿼터제는 한국영화가 극장에서 일정기간 동안 상영될 수 있도록 유통의 기회를 주는 것”일 뿐이라고 지적한다. 장사를 하기 위해 좌판 몇개를 빌려주도록 한 것일 뿐, 재주를 부려 물건을 파는 것은 한국영화 자신이라는 말이다.

오히려 양기환 사무처장은 “시장점유율 40%는 터닝포인트”로 이해할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다양한 영상물을 만날 수 있도록, 즉 독립단편영화를 비롯해 극장 배급에서 고전을 면치 못하는 저예산 및 예술영화 등에 기회를 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한국영화 시장점유율 40%의 시대, 스크린쿼터는 지킬 건 지키되, 부족했던 부분은 메워야 하는 의무 하나를 더 짊어졌을 뿐 아직 건재하다.

문성근 스크린쿼터문화연대 이사장 인터뷰

“한국영화 상황, 외교적으로 이용해볼 때”

쿼터제가 왜 필요한가. 독과점 견제 아닌가. 상반기, 혹은 1년동안 한국영화 시장점유율이 40%가 됐다고 할리우드의 욕심을 누그러뜨렸다고 할 수 있나. 아직 멀었고 남았다.

일단 5년 정도 40%대를 꾸준히 유지해야 쿼터에 관한 논의를 테이블에 꺼낼 수 있을 것이다. 그때쯤 되면 외국 직배사들 중 2~3곳은 한국 직배사들에 위탁을 맡기고 본국으로 철수해야 하는 상황도 올 것이다. 한 가지 외교통상부에 부탁하고픈 것은 지금 한국영화의 상황을 어떻게든 깨려고 할 게 아니라 오히려 외교적으로 내세우거나 이용하는 쪽으로 생각해주었으면 좋겠다는 것이다. 사실 영국이나 독일이나 이탈리아나 쿼터가 망가지니 영상분야가 거의 잠식된 상태 아닌가. 그들에게 이런 사실을 알리면 얼마나 부럽겠나. 얼마 전 내한했던 아세안 관계자들도 쿼터연대가 제발 자신들의 나라에 와서 국회를 설득해달라고 부탁했었다. 이제는 저예산, 독립, 예술영화 등에 대한 지원을 해야 할 듯싶다. 이런 영화들이 극장 개봉할 경우, 제작비에 비해 홍보비가 더 많이 든다. 배급 자체도 어렵고, 따라서 거대 멀티플렉스의 1관 정도는 영진위로부터 지원을 받아, 많은 관객이 찾을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야 할 것 같다. 그건 모두를 위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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