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20일 칸영화제 비평가주간 데일리는 “황금종려는 뜨겁게 젖어 있다”는 선정적인 제목의 에디토리얼을 실었다. <다빈치 코드>를 신성모독이라고 공격하는 세력은 표적을 잘못 찾았는지도 모른다고 말하는 이 기사는 자세한 논평을 삼갔지만 올해 칸영화제에서 벌어진 육체의 향연이 정당한지 의문을 던지고 있다. 그들이 근심하는 대로 평이한 올해 칸영화제에서 이슈를 찾아보고자 노력한다면 단 하나 섹스가 나올 수밖에 없다. <스크린>에서 발행한 데일리도 지적했듯 칸영화제는 빈센트 갈로의 <빈센트 버니>와 클레어 드니의 <트러블 에브리 데이>, 데이비드 크로넨버그의 <크래쉬> 등으로 센세이션을 일으켜왔다. 그러나 올해는 그 양상이 다르다. 올해의 영화들을 보고 섹스신의 강도와 의미와 존재이유를 묻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2006년 칸의 섹스는 공허하다.
섹스의 강도와 빈도, 화제를 모은 정도에서 가장 눈에 띄는 영화는 <헤드윅>의 존 카메론 미첼이 연출한 <숏버스다. 사랑을 확인하고 싶어하는 게이 커플과 오르가슴을 느껴본 적이 없는 섹스 테라피스트 등이 등장하는 이 영화는 세명의 게이가 동그랗게 누워 서로 오럴을 해주는 장면이 범상하게 다가올 정도로 성기와 섹스를 끊임없이 보여준다. 이들에게 섹스는 감정을 담는 행위이고 새로운 세계로 인도하는 통로이다. 유머와 성찰이 있는 듯하던 <숏버스>는 점차 같은 말을 반복하며 지루해지기 시작하지만, 체위와 자위 자세만은 무궁한 변화를 계속한다. 존 카메론 미첼은 “<숏버스>는 포르노가 아니다. 이 영화를 보고 발기하는 사람은 없을 테니까”라고 말했는데 그것만은 맞는 말일 것이다. 두 시간 내내 발기가 되는 사람은 없을 테니까.
경쟁부문에 초청된 로우예의 <썸머 팰리스는 중국 정부의 검열을 받지 않은 상태에서 공개되었고 그 때문에 감독에게 5년 동안 연출 금지 명령이 내려질지도 모른다고 전해졌다. 문제는 정치성이라기보다 선정성이었다. 북한과 중국 국경지역에서 사는 유홍은 베이징에 있는 대학에 진학한 다음 만난 저우예와의 관계에 탐닉하게 된다. 유홍의 섹스는 80년대 후반 중국의 민주화 열기가 고조되는 것과 비슷한 리듬을 타며 점차 격렬해진다. 로우예는 젊은 여인의 성(性)의 행로와 중국의 정치적인 상황을 같은 궤도에 올려놓으려고 시도했지만, 정치는 침대 아래로 미끄러지고, 여인의 알몸만이 남았다.
비평가주간에서 상영된 장-클로드 브리소의 <천사 몰살시키기>는 “50대 남성 감독이 <로망스>의 카트린 브레이야와 같은 시도를 했을 때 무슨 결과가 빚어질 것인가”로 프랑스 내에서는 영화제 전부터 관심을 모았다. 여배우들이 영화에 성적으로 이용당했다는 이유로 감독을 고소했다는 뉴스도 그 관심에 불을 지폈다. 감독주간 개막작이었던 덴마크 애니메이션 <프린세스는 섹스에 더해 폭력으로도 자국에서 논란을 불렀다고 한다. 한때 신부였던 남자가 약물과용으로 죽은 여동생을 포르노영화의 세계에 끌어들였던 사람에게 복수를 하는 <프린세스>는 ‘프린세스’라는 예명을 가지고 있던 그녀가 활동하는 장면만은 캠코더로 찍은 듯한 거친 라이브 액션으로 처리했다. 포르노 배우 출신 감독인 HPG의 <우리는 존재하지 않아야 한다는 섹스신도 강도 높지만 자기연민이 담긴, 감독이 직접 연기한 주인공이 칭얼거리는 소리도 만만치 않았던 영화다. 이 영화는 상영 도중 불이 켜졌고 결국 상영이 중단되는 사고를 겪었지만, 많은 이들이 자리를 뜬 다음이었다.
<가디언>의 피터 브래드쇼는 섹스가 난무하는 칸의 올해 경향을 분석하는 코멘트에서 “센세이션에 굶주린 칸”이라는 표현을 썼다. 수십년이 지난 다음에야 걸작으로 등극하는 영화도 있으므로 올해 칸에 대한 성급한 판단은 보류해야 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곰곰이 생각해보면 깜짝 놀랄 정도로 적나라한 섹스장면들이 이토록 담담하게만 다가온다면, 연인들의 포옹장면이 밋밋하게 보이는 것처럼, 무언가 문제는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