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1]
제59회 칸영화제 중간보고 [2] - 봉준호 감독의 <괴물>
2006-06-02
글 : 이다혜
정리 : 김도훈
“공포와 코미디의 흥미로운 동거!”

칸에서 성황리에 상영된 <괴물>, 열광적인 호응 얻어

상상한 것과 다른 것을 보게 될 것이다. 칸영화제에서 두번에 걸친 상영을 성황리에 마친 <괴물>은 할리우드 블록버스터들이 생각하지 못했던 방식의 괴물영화다. “상상했던 것, 그 이상”의 규모에만 집착하는 할리우드 블록버스터와 다른 길을 선택한 <괴물>은 감독주간 상영관인 800석 규모의 노가 크로와제를 두번 다 가득 채웠고, 매번 열광적인 반응을 얻었다. 상영이 끝난 뒤에도 많은 사람들이 극장 앞에 모여서 영화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이 눈에 띄었고, 영화에 대한 반응 역시 호의적이었다. 5월23일에는 <버라이어티> 칸 데일리와 프랑스 일간지 <리베라시옹>이 <괴물>에 대한 리뷰 기사를 크게 실었으며, 같은 날 발행된 <할리우드 리포터>에서는 사람이 몰린 마켓 시사에 참석하지 못한 마켓 관계자들의 요청으로 <괴물>의 마켓 시사가 24일에 추가로 잡혔다는 뉴스가 실렸다. 매체에 실린 리뷰에서나 상영이 끝난 뒤 만난 외신 기자들이나 이구동성으로 하는 말은 “다르다”와 “재미있다”에 집중되었다.

파괴력보다는 영민함으로 승부하는 괴물

촬영현장 공개나 스틸사진 공개에 인색했던 <괴물>은, 한국에서 특수효과를 많이 사용했던 지금까지의 영화들보다 정교하고 강렬한 영상을 선보였다. 괴물 디자인은 봉준호 감독이 초기 디자인부터 장희철 크리처 디자이너와 함께 작업, <반지의 제왕> 특수효과를 담당한 웨타 워크숍과 함께 완성했다. 시각효과는 <헬보이> <투모로우>를 작업한 오퍼니지사에서 작업했다. 한강에서 돌연변이로 자라난 괴생물체라는 특성에 맞게 물에서 이동하기 편한 날렵하고 강한 꼬리와 육지에서도 활동할 수 있는 다리를 가지고 있는 괴물은 날렵하게 움직인다. <리베라시옹>은 괴물을 공룡 ‘T-렉스’에 비유했는데, 이는 괴물이 고질라처럼 거대한 몸집으로 파괴력을 자랑하는 게 아니라 영민함과 결정적 공격으로 승부하기 때문이다. 공격적인 면뿐 아니라 실수하는 모습도 보여지는 괴물의 캐릭터 역시 주인공들의 면면처럼 공들여 다듬어졌다.

알려진 바와 같이, <괴물>은 한 가족이 괴물과 사투를 벌이는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박희봉(변희봉)과 그의 아들 박강두(송강호)는 한강 둔치에서 매점을 운영하고 있다. 강두는 배달을 나갔다가 한강에 정체 불명의 괴물이 등장한 모습을 보게 된다. 괴물은 순식간에 둔치를 아수라장으로 만들고, 강두는 딸 현서(고아성)을 데리고 괴물을 피해 도망가다가 그만 손목을 놓친다. 현서가 죽었다고 생각한 희봉과 강두, 그리고 강두의 동생들인 남일(박해일)과 남주(배두나)는 슬픔에 빠지지만 현서에게서 걸려온 전화를 받게 된다. 거대한 하수구에 갇혀 있다는 현서의 말을 들은 가족은 현서를 구하기 위해 위험을 무릅쓰고 한강으로 향한다.

괴물에게 납치당하는 소녀 현서를 연기한 고아성을 제외한 주요 배우들인 송강호, 변희봉, 박해일, 배두나는 이미 <플란다스의 개>나 <살인의 추억>에서 봉준호 감독과 호흡을 맞춘 적이 있다. 시나리오를 쓸 때 이미 배우를 정해놓은 상태에서 쓰기 시작했다는 봉준호 감독의 말대로 배우들의 연기는 자연스러운 것 이상이다. 컴퓨터그래픽으로 괴물을 만들어내야 하는 영화의 특성상 촬영현장에서의 커뮤니케이션 문제나 시행착오를 피할 수 있었다는 점도 캐스팅의 이점일 것이다. 현서 역의 고아성 역시 인상적인 연기를 보여주었다.

잔인한 장면에서도 잃지 않은 유머감각

적을 처치하고 나면 애정관계에 상습적으로 빠져드는 남녀 주인공들이 등장하는 할리우드 괴물영화들과 <괴물>이 차별화되는 점은 바로 가족이 함께 괴물과 싸운다는 데 있다. 희봉과 강두, 남일, 남주는 액션영화의 영웅에 어울리는 캐릭터라기보다는 풀리는 일 없고 소심한 보통 사람들에 가깝다. 이들의 성격이나 배경은 공포 장르에 코믹한 요소를 불어넣는다. 슬픈 장면이나 잔인한 장면에서조차 폭소를 터뜨리게 만드는 봉준호 감독의 유머감각은 높은 점수를 샀다.

봉준호 감독의 전작들을 모두 보았다는 프랑스의 영화평론지 <포지티프>의 평론가 아드리앙 공보는 “봉준호 감독이 한국 사람들에 대해 가지고 있는 애정을 잘 살렸을 뿐 아니라 고군분투하는 주인공을 멋지게 그려냈다. 가장 좋았던 부분은 유머감각이었다. 봉준호 감독은 장르를 섞는 데 능하다. 공포와 코미디가 잘 섞여 있다”고 말했다. 미국 <프리미어> 기자인 글렌 케니 역시 “<괴물>이 보여주는 미국에 대한 비판의식이 인상적이었다. 이 영화는 비극과 코미디가 어떻게 흥미로운 동거를 할 수 있는가, 그리고 어떻게 휴머니즘으로 이어질 수 있는가를 보여주는 작품이다”라고 평했다.

<괴물>의 해외 세일즈는 현재 유럽 배급사들에서 호의적으로 반응하고 있으나 정확한 결과는 추가 상영이 끝나는 24일이 지난 뒤에 판가름날 예정이다. 한강에서 자라난 돌연변이 <괴물>은 한국에서 7월27일 개봉예정이다.

“장르의 틀을 깨면서 쾌감을 느낀다”

<괴물> 상영 뒤, 봉준호 감독 질의응답

-<괴물>은 장르영화지만 할리우드의 관습을 깨는 면이 있다.
=장르영화에서 출발하는 것도, 장르를 의식한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또한 그 틀을 깨면서 쾌감을 느낀다. 할리우드에서 흔히 하는 방식처럼 괴물이 등장하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리는 것도 아니고. 미국 장르영화에 대한 무한한 애정과 근본적 혐오가 내 안에 동시에 존재하는 것 같다.

-당신 영화들에서는 사디스틱한 유머감각과 리듬감이 돋보인다. 뿐만 아니라 슬랩스틱코미디를 통해 현실감을 잘 살리는 재능이 있는 것 같은데.
=슬랩스틱코미디를 넣어야만 한다고 생각하는 것은 아니다. 단지 드라마와 캐릭터의 흐름이 슬랩스틱코미디와 딱 맞아떨어지는 순간이 오는 것뿐이다. 예를 들어 진지해야 할 상황에서 슬랩스틱코미디가 펼쳐지는 일은 내게 사실적 연출의 일부일 뿐이다.

-송강호가 굉장히 힘이 센 사람으로 그려진다. (웃음) 몸 상태가 극히 안 좋은 때에도 거의 007처럼 활약한다. 한국식 버전의 슈퍼맨은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는데.
=처음 구상했을 때, 괴물과 사투하는 사람들을 가장 안 어울릴 것 같은 사람들로 골랐다. 한심하고 평범한 사람들이 극한 상황에 몰리면서 극한의 힘을 발휘하게 되는 것이다. 내게 주어진 과제는 그런 인물들의 변화가 드라마 흐름에서 얼마나 자연스러운가, 내러티브 흐름에서 어떻게 해야 잘 이해시킬 것인가의 문제였다.

-괴물 컨셉 디자인은 직접 했나 아니면 도움을 받았나. 그리고 특수효과가 많은 영화를 찍으면서 기술적 문제점이나 힘든 점은 없었는지.
=리들리 스콧에게 HR 기거가 있었다면 내게는 장희철이 있었다. 1년 반 동안 시나리오를 쓰면서 괴물 컨셉 디자인을 한 장희철과 만나 괴물 디자인을 잡아갔다. 완성 단계에서는 웨타 스튜디오에서 최종 모델링에 대한 큰 도움을 받았다. 웨타 스튜디오에서는 장희철을 마음에 들어해 스카우트 제안을 한 상태라고 들었다. 촬영하면서의 애로점이라면, 배우들이 괴물이 없는 상태에서 허공을 보고 연기해야 했기 때문에 처음에는 공포심을 가지고 있었다는 점이다. 3D스토리보드인 애니매틱스 등을 이용해 프리 프로덕션 과정에서 비주얼 작업을 많이 해 사실적인 촬영이 가능했던 것 같다. 배우들이 허공을 향해 소리지르는 모습만 찍혀 있는 필름을 모아 놓으면 본편보다 재미있다. 나중에 DVD를 만들 때 서플먼트로 넣을까도 생각 중이다. (웃음)

탄성을 지른 그들, <괴물>을 본 해외 언론 반응

<괴물>, 지금까지 칸에서 본 최고 영화

<뉴욕타임스>_마놀라 다지스

칸에서 공개된 <괴물> 포스터

윤종빈 감독의 인상적인 데뷔작 <용서받지 못한 자>는 야만적인 군복무의 첫해를 보내는 (벨 앤드 세바스천 음반을 즐겨 듣는) 내성적인 청년에 관한 영화다. 이 작품의 복잡하게 얽힌 내러티브 구조(그리고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발생한 영사사고) 때문에 몇몇 관객은 중간에 극장을 빠져나가버렸다. 하지만 마지막까지 자리를 지킨 사람들은, 마치 로만 폴란스키의 <피아니스트>처럼 개인이 권력 시스템에 어떻게 산산이 부서지는가를 잘 묘사한 작품으로 인해 충분히 인내를 보상받을 수 있었다. 윤종빈 감독은 각본을 직접 썼을 뿐만 아니라, 가장 중요한 조연 중 하나를 연기하기도 했다.

지금까지 칸에서 본 최고의 영화는 영화제 공식부문이 아닌 감독주간에서 상영된 봉준호 감독의 <괴물>이다. 연꽃 모양의 입과 끝없는 식욕을 지닌 돌연변이 괴물에 대한 이 기가 막힌 혼성장르 판타지영화는 괴수영화나 SF스릴러라고 말할 수 있다. 하지만 <괴물>은 코미디이자 가족드라마이며, 정치적인 풍자극인 동시에 심각할 정도로 살떨리는 공포영화다. 봉준호 감독은 영화의 분위기와 음조를 즉각적으로 변환할 줄 아는 능력을 지녔다. 그래서 안목이 높은 척 허세 부리는 관객마저 재기 넘치는 대사들에 실소를 흘리지 못하고, 스티븐 스필버그의 <우주전쟁>에 나오는 장면들만큼이나 효과적으로 무시무시하게 만들어진 장면들을 보며 냅다 비명을 질러댔다.

새로운 장르영화의 장을 열었다

<리베라시옹>_디디에 페론

감독 주간에서 2회 상영된 봉준호 감독의 <괴물> 상영은 대단한 성공을 거두었다. 봉준호 감독은 영화에 만족한 관객들에게 영렬한 박수를 받았다. 올리비에 페르가 감독주간에 선정한 이 영화는 새로운 장르 영화의 장을 열었다. 경쟁작 <판의 미로>(기예르모 델 토로)의 상영이 끝나면 이와 같은 새로운 장르 영화에 대한 인상은 더욱 깊어질 것이다. 봉준호 감독은 전작 <살인의 추억>으로 자국에서 5백만 관객을 기록한 성공을 거두며, 한국 영화의 스타 감독이 되었다. 그는 환경 오염의 파괴적 결과와 생태적 문제에 대한 자본주의의 무관심을 그린 우화, <괴물>을 완성하기 위해 삼년이라는 시간을 투자했다. (중략) 사회학을 전공한 뒤 한국 예술 영화 아카데미에서 영화를 공부한 봉준호 감독은 일본 만화에서 영향을 받았다. 이 그래픽 문화는 <괴물> 곳곳에, 그리고 감독이 특수 효과로 연출한 환상적인 액션 장면과 짖궂은 농담 속에서 인물들의 히스테릭한 양상을 그려내는 데에서도 발견된다. <괴물>은 할리우드 메이저 영화 스타일과 거리를 두며, 억지스런 해피엔딩을 고집하지 않았다.

컬트적 인기를 누리게 될 대담무쌍한 모험

<버라이어티>_데릭 엘리

거의 모든 레벨에서, 지금껏 <괴물>과 같은 괴수영화는 별로 없었다. <괴물>은 스스로의 장르를 터무니없이 파괴하는 동시에 여전히 순수 장르영화로서의 충격을 안겨주며, 관객의 평정을 끊임없이 흔들어놓는 무표정한 캐릭터 유머로 냉혹하게 빚어져 있다. 서울 한강에서 출현한 거대한 돌연변이 올챙이에 대한 이 흥분되는 거대 예산영화는 즉각적으로 컬트적 인기를 누리게 될 운명을 지닌 대담무쌍한 모험이다. 특수효과는 불안정한 수준에 머물렀던 최근 아시아 판타지영화들(<신화>와 <무극>)을 멀찍이 넘어서 있고, 전체적인 분위기에서 <플란다스의 개>가 보여준 정치적 우화와 <살인의 추억>이 간직한 캐릭터드라마의 중간 어딘가에 위치하고 있다. 예상 가능한 할리우드 타입의 스릴러보다는 예상 밖의 엉뚱한 전개에 열광하는 관객이 더 좋아할 영화다. <괴물>의 장르적인 유연함과 정치적인 여담들, 그리고 강렬한 캐릭터의 혼합은 래리 코언의 1982년 컬트영화 <플라잉 킬러>(Q; The Winged Serpent)와도 매우 비슷하다.

놀랄 만큼 특이한, 괴물영화 그 이상의 영화

<엠파이어>

사람들이 레드 카펫에서 휴 잭맨과 할리 베리를 위시한 엑스맨의 친구들을 기다리는 동안, <엠파이어>는 전혀 다른 종류의 돌연변이를 발견했다. 감독 주간에서 상영된 봉준호의 <괴물>은 놀랄 만큼 특이한 괴물영화로, 서울의 한강에 살고 있는 거대한 올챙이 생명체의 난동을 다루는 작품이다. 그러나 영화는 단순한 괴물영화 이상이다. 봉준호 감독이 상영 직전에 설명했듯이, <괴물>은 그저 괴물에 대한 영화가 아니라 혼란에 빠진 채 괴물을 사로잡으려는 한 사회부적응 가족에 대한 영화다. 슬랩스틱 블랙코미디로서, 감동적인 가족드라마와 호러영화로서, 또는 미국의 내정간섭에 대한 정치적인 비꼼으로서, 이 영화는 우리가 칸영화제에서 지금껏 보았던 영화들 중 가장 흥미진진하고 재미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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