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1]
제59회 칸영화제 중간보고 [7] - 스크린쿼터
2006-06-02
글 : 김현정 (객원기자)
사진 : 서지형 (스틸기사)
글 : 이다혜
대책위 시위 및 심포지엄, 칸 공식 지지 속에 각국 영화인들 동참

5월18일 칸영화제가 열리는 팔레 드 페스티벌에서 사소한 몸싸움이 일어났다. 프랑스 경찰이 스크린쿼터 사수 영화인 대책위원회(이하 대책위)의 촛불시위를 단속하면서 홍보대사인 최민식과 시위대를 밀친 것이 발단이었다. 양기환 대책위원장은 며칠 뒤에 영화제 개막작 <다빈치 코드> 제작진이 100명 넘게 칸에 초대되었다는 사실과 그 시위를 비교하면서 한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 티에리 프리모가 예술감독으로 영입되면서 할리우드와 거리를 좁히고 있던 칸영화제는 올해 <엑스맨3: 최후의 전쟁> <헷지> 등 유독 많은 할리우드영화를 불러왔고, 그만큼 시위대의 마음은 쓸쓸했을 것이다. 그러나 21일 연례이사회를 소집한 칸영화제는 20명 만장일치로 대책위와 스크린쿼터 사수를 지지하겠다고 밝혀 때마침 심포지엄을 준비하기 위해 모여 있던 시위대에 커다란 선물을 안겨주었다. 최민식 또한 “싸움은 이제부터 시작”이라고 말하면서도 들뜬 기색을 숨기지 못했다.

스크린쿼터는 문화오염을 막기 위한 것

대책위와 자원봉사자 10여명으로 구성된 시위대는 15일 칸에 도착해 21일까지 시위와 심포지엄, 선전전 등을 벌이며 “No to FTA, Yes to Screenquota”를 알렸다. 양 위원장은 굳이 칸영화제에 와야만 했던 까닭을 묻자 “전세계 영화인들이 모이는 국제영화제에서 연대와 소통을 시도하고, 스크린쿼터 축소 문제를 국내에서도 쟁점화하기 위해서”라고 답했다. 스크린쿼터 축소가 발표되었던 1월 무렵에는 많은 이들이 영화인들의 투쟁을 이기적이라고 비난했지만, 그것이 한국 영화인만의 문제는 아니라는 사실을 알리겠다는 것이었다. 프랑스감독협회와 작가협회, 문화다양성연대 등이 칸영화제 기간 동안 꾸준히 투쟁에 동참했던 것도 그런 까닭에서였다. 프랑스 노동총연맹 공연예술부문 노조위원장 클로드 미셸은 “우리는 환경오염을 막고자 많은 자본을 투자하지만 문화의 오염을 막기 위해서는 그렇게 하지 않는다. 지금 전세계의 문화는 다양하지 못하고 한 나라의 이미지가 지배하고 있다. 나는 한국이 문화적 정체성을 지켜야 한다고 믿는다. 스크린쿼터가 무너진다면 한국 문화에는 도미노 현상이 일어날 것”이라고 말하며 연대의 의사를 나타냈다.

외국 영화인들이 한국과 미국의 양자간 무역협정에 반기를 드는 것은 뼈아픈 경험 때문이다. 촛불시위를 함께한 토론토국제영화제 프로그래머 콜린 게데스는 <스크린 인터내셔널>이 발행하는 데일리에 “캐나다도 같은 문제를 안고 있기에 이 시위에 참여했다. 캐나다영화는 자국 상영관을 얻기 위해 싸워야만 한다”고 밝혔다. 1991년 칸영화제 감독상을 수상했던 멕시코 감독 마리아 노바로도 대책위에 편지를 보내 북미자유협정이 체결된 다음 멕시코 영화산업이 붕괴했던 기억을 들려주었다. 그들은 50%가 넘는 점유율을 자랑하는 한국영화 또한 그렇게 될지 모른다고 믿고 있다. 내외신과의 기자회견을 진행한 김홍준 감독은 “오늘 한국에서 <다빈치 코드>와 <미션 임파서블3>가 스크린 70%를 점유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스크린쿼터 축소가 시행된다면 한국 문화에서 가장 빛나는 분야였던 영화가 빛을 잃고 영원히 회복하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비관적인 전망을 전했다. 이는 “스크린쿼터 축소는 영화산업의 가장 취약한 부분을 강타할 것”이라는 <버라이어티>의 예측과도 맞아떨어진다.

“자국영화 수호 정책 없다면, 칸도 없다”

지금까지 미 의회 한-미 FTA 청문회에 이의 의견서를 제출한 단체는 국제문화전문가 단체와 세계문화 NGO총회, 캐나다 국제문화전문가 단체 등이다. 스크린쿼터 반대 투쟁은 한 나라의 국민이 서로의 이익을 두고 다투는 행위가 아닌 것이다. 양 위원장은 한국이 무역협정에 문화산업을 포함시킨다면 나머지 아시아 국가들도 미국에 문화를 내줄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내다보았다. 그렇게 된다면 멕시코의 영화가 붕괴했듯 국제영화제에 새로운 기운을 불어넣었던 아시아영화도 무너지게 된다. 프랑스 문화다양성연대 위원장 파스칼 로가르는 “칸영화제는 전세계 국가가 자국영화를 지키고자 하는 정책을 유지하지 않는다면 존재하지 못할 것이다. 제59회 칸영화제는 한국인들을 향한 강한 지지의 태도를 보여야 한다”고 말했고, 칸영화제는 그 제안을 받아들였다. 그러나 스크린쿼터 반대 투쟁은 한국에선 아직도 외롭고 상처받는 싸움이다.

칸영화제 개막식이 열린 5월17일, 형광색 조끼를 입은 한국 영화인들은 몇 시간 동안 햇빛을 받아 발갛게 익은 얼굴로 레드 카펫 한쪽에 모여 침묵의 시위를 벌였다. 그들은 “모든 문화는 존재할 권리가 있다” “어떤 하나의 문화도 전세계를 지배해서는 안 된다”고 적힌 플래카드를 들고 왔다. 자국영화보호정책이 있는데도 인류 문화의 다양성을 지키고자 그들과 함께 섰던 프랑스 영화인들처럼, 한국에 돌아간 그들의 손을 잡아주는 이들이 있을까. 칸영화제 공식 지지의 기쁜 소식을 듣고 최민식이 말했듯, “우리 앞에는 길고 험한 여정”이 놓여 있다. 그리고 ‘우리’는 단지 영화인들만을 뜻하지는 않을 것이다.

시위현장 자원봉사자 독일인 베티나 그룬델

“최민식은 대단한 일을 했다”

독일인인 베티나 그룬델(29)은 칸영화제에서 있었던 스크린쿼터 사수 영화인 대책위원회(이하 대책위)의 시위 현장에서 자원봉사자로 일했다. 영화 제작을 전공하고 부전공으로 사진을 공부한다는 그룬델 은 오스트리아에서 한국어 공부를 하기도 했다. 그녀는 시위 현장에서 경찰과의 마찰이 있거나 해외 언론을 비롯한 관객이 시위에 질문을 해오면 답을 해주거나 설명하는 일을 맡아 위원회의 시위에 힘을 실어주었다.

-어떻게 대책위의 칸 시위에 참여하게 되었나.
=지난해 프랑크푸르트 북페어에서 필름 코디네이터로 일하면서 이명세 감독의 <형사 Duelist>를 상영했었다. 황지우 시인과 김홍준 감독을 그곳에서 알게 되었다. 올 여성영화제에 놀러갔다가 김홍준 감독을 다시 만났는데 칸에서 있을 시위에서 함께 일해보면 어떻겠느냐고 말을 듣고 좋은 기회라고 생각했다. 전단지를 어떻게 돌리는지는 잘 모르지만 열심히 하겠다고 했다. (웃음)

-외국 언론에 스크린쿼터에 관해 설명할 때 받은 인상은.
=프랑스 사람들은 언론 관계자가 아니어도 큰 관심을 보여주었다. 격려해주는 사람들도 많았다. “열심히 하세요, 더 열심히”라는 식으로.

-원래 한국영화나 문화에 관심이 많았나.
=어머니가 한국 분이라 나도 절반은 한국 사람이다. 독일에서도 한국영화를 많이 봤고 관심도 많았다. 한국영화가 독일에서 점점 더 많이 개봉되는 분위기이기도 하고. 이창동 감독의 <박하사탕>과 박찬욱 감독의 <복수는 나의 것>을 재미있게 봤고, 김기덕 감독의 영화는 거의 대부분 독일에서 개봉되어 많이 봤고, 좋아한다.

-가장 재미있었던 점은.
=최민식을 만나서 좋았다. 그는 올 칸에서 대단한 일을 했다고 생각했다.

-한국에서 공부할 생각이 있다고 들었다.
=김홍준 감독을 만났을 때 한국에서 공부해보는 게 어떻겠느냐는 제안을 처음 받았다. 한국에 갔을 때 영상원에 들르기로 했다. 내년 봄에 졸업하는데, 계속 영화를 공부할 생각이라 한국에 가서 공부하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 한국에 가면 3개월 정도 먼저 랭귀지를 밟고, 포트폴리오도 준비하고 면접도 봐야 하겠지. 그렇게 된다면 정말 좋을 것 같다.

사진 김유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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