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1]
일본 호러의 기수들 [2] - 만화가
2006-06-14
글 : 김나형

<소용돌이>의 이토 준지

그로테스크한 상상력이 뿜어내는 끔찍한 공포

<토미에 어게인>

음울한 얼굴의 고등학생이 안경을 번쩍거리며 말한다. “우리 같이 이 마을에서 탈출하지 않을래? 마을 전체가 내 신경을 마구 휘젓고 있어. 소… 소용돌이… 이 마을은 소용돌이에 오염되어 있는 거야.” 아무리 만화가 허풍이 심하다지만, 수은이나 핵 물질도 아니고 소용돌이에 오염된 마을이라니. 처음에는 개풀 뜯어먹는 소리처럼 들리게 마련이다. 그러나 <소용돌이> 1권을 채 다 읽기 전에 독자는 사태의 심각성에 빠져들게 된다. 마을은 정말로 소용돌이에 오염되었다. 평범했던 가장은 언젠가부터 소용돌이 형상에 광적으로 집착하더니, 자신의 몸을 소용돌이 모양으로 뒤튼 끔찍한 모습이 되어 죽기에 이른다. 그를 화장한 연기는 소용돌이가 되어 하늘을 뒤덮고 호수로 빨려 들어간다. 남편의 끔찍한 죽음에 충격받은 아내는 자신의 몸에 있는 소용돌이 모양을 없애려 지문을 벗겨내고 귀 속의 달팽이관을 파낸다. 등에서 소용돌이 모양 달팽이 껍질이 자라나기 시작한 사람들은 거대한 달팽이가 되어 마을을 기어다닌다. 모기떼 소용돌이에 피를 빨린 임신부들은 병원을 돌아다니며 사람의 피를 마신다.

만화를 그리 좋아하지 않는 사람들도 이토 준지의 이름은 알고 있다. 그의 출세작이자 대표작인 <소용돌이>와 <토미에> 시리즈가 포함되어 있는 <공포 콜렉션>은 엄청난 인기를 끌었다. 사람들을 매료시키는 것은, 비위 약한 사람들은 역겨워질지도 모를 그로테스크한 상상력이다. 상황 자체도 끔찍하지만 그를 눈앞에 현실화시키는 그의 그림이 놀랍다. 이토 준지가 만든 가공의 세계는 현실과 거리가 멀다. 그의 왕국은 순환하는 닫힌 세계다. 주인공들은 끔찍한 상황에서 벗어날 수 없다. 토미에는 몇번을 토막쳐도 되살아나고 또 살아난다. 그러나 가장 끔찍한 것은 그런 기괴한 세계에서 조금씩 갉아먹혀 결국 사라져버리는 사람의 인간성이다.

<드래곤 헤드>의 모치즈키 미네타로

꿈에라도 마주하기 싫은 현실적 공포

<좌부녀>

나는 히로시. 옆집에서 벨소리가 들린다. 문 두드리는 소리도 들린다. 밤새도록 들린다. 누군가 하여 나가보니 거인 같은 여자가 서 있다. 목상 같은 얼굴과 지저분한 머리, 옷, 신발이 징그럽다. 옆집 주인은 도통 대답이 없지만 그녀는 끈질기다. 잠깐 전화를 쓰게 해줬을 뿐인데 그때부터 그녀는 나를 스토킹하기 시작한다. 그녀는 번호를 알려주지도 않았는데 전화를 해오고, 열쇠를 복사해서 집에 들어오고, 여자친구를 위협한다. 귀신도 아닌데, 맞아도 불타도 죽지 않는다. 그녀에게는 이유가 없다.

모치즈키 미네타로의 만화에는 귀신이 등장하지 않는다. 다만 누구에게나 일어날 법한 재앙이 일어날 뿐이다. 당신도 <좌부녀>의 히로시처럼 단지 문을 열어주었다는 이유로 괴물 인간의 추적을 받을지도 모른다. <드래곤 헤드>는 좀 더 비일상적인 두려움을 다룬다. 수학여행을 가던 테루는 어둠 속에서 눈을 뜬다. 활기차던 기차 안은 어둠과 적막이 점령했다. 라이터를 밝히니 시체가 즐비하다. 기차는 터널 안에서 전복됐고 터널 입구는 무너져 막혔다. 비일상적이라 해도 역시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는 상황이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시커먼 심연은 인간의 본질적 공포를 깨운다. 같이 살아남은 남자아이는 공포에 짓눌려 미쳐간다. 간난신고 끝에 터널을 나왔지만 더 무서운 것이 기다리고 있다. 인간은 모조리 없어진 듯하고, 하늘은 새까만 재로 가득해 태양조차 보이지 않는다. 무슨 일이 일어난 거지? 핵전쟁? 지진? 살아남은 극소수의 인간은 공포에 미쳐, 귀신보다 더 위험하다. 그러나 가장 무서운 것은 돌아갈 집이 없다는 것이다. 그런 상황에서 집이 무사할 리 없건만, 아이들은 애써 현실을 외면하며 죽을힘을 다해 집을 찾아간다. 그리고 마지노선인 가족의 죽음을 확인하는 순간, 꿈에라도 알고 싶지 않은 현실적인 공포가 닥쳐온다.

<학교괴담>의 이누키 가나코

탐욕스럽고, 어리석은 욕심이 불러오는 공포

<서약>

부유한 덴코는 사토루라는 남자를 짝사랑한다. 사토루는 가난하지만 아름다운 사유리를 사랑한다. 사토루는 말한다. “나는 네가 예뻐서 사랑하는 게 아냐. 언제라도 내가 널 지켜줄게.” 덴코는 사토루를 뺏으려, 심각한 빚에 시달리고 있는 사유리에게 얼굴을 팔라고 한다. 사유리는 처음엔 거절하지만, 얼굴은 어째도 상관없다는 사토루의 말을 떠올리며 제안을 받아들인다. 덴코는 사유리의 얼굴을 이식받고, 사유리는 피부가 없는 흉측한 얼굴이 되어버린다. 사토루는 금방 마음이 변하여 아름다워진 덴코에게로 떠난다. 사토루는 울부짖는 사유리를 향해 “지금 너의 마음이 얼굴보다 더 추하기에 떠나는 것”이라고 외려 큰소리를 친다. 덴코는 계획대로 사토루를 얻었지만 수술 부작용으로 목 아래가 썩어들어가기 시작하고, 사토루는 그녀가 두려워 벌벌 떤다. 덴코는 깔깔 웃는다. “무슨 일이 있어도 날 사랑할 거라고 했지!” 아름다운 얼굴이 그녀의 괴물 같은 몸에서 툭 떨어진다.(<웃는 면피>).

이누키 가나코는 괴담을 쫓아다니는 작가다. 골목에서 ‘다 숨었니?’라고 묻는 유령이 나타나 ‘찾았다!’하며 사람을 잡아간다는 얘기, 악마와 계약을 한 4명의 친구들이 한명씩 죽어간다는 등의 괴담들이 그의 단편집을 가득 채우고 있다. 그의 만화는 일본 공포만화의 원조세대인 우메즈 가즈오의 고전성과 이토 준지의 그로테스크함을 뒤섞어 놓은 듯하다. 그는 괴담이라는 말초적인 소재 아래 ‘인간이란 얼마나 추악한가’에 대한 고발을 한결같이 깔아두고 있다. 탐욕스러운 덴코와 진실이라곤 없는 사토루, 얼굴까지 팔아버린 사유리의 어리석음 모두 흉측하다. 이토 준지의 단편 중에도 피부를 벗기고 다시 입는 것을 소재로 한 일화가 있는데, 이토 준지가 광기가 주는 섬뜩함만을 취하는 것과 달리 이누키 가나코는 언제나 (권선)징악을 준비해두고 있는 것이 재밌다.

<시오리아 시미코>의 다이지로 모로보시

허무하고, 코믹한 이상한 세계 속 공포

계속되는 공포 타령에 머리를 쥐어뜯게 되었다면 다이지로 모로보시 품에서 쉬어가자. 1949년생인 그는 말 그대로 할아버지 작가다. <이상한 세계의 이야기> <서유요원전> 같은 그의 만화들은 요괴가 출현하는 산골짝을 배경으로 도술이 힘을 쓰는 푸근한 괴담을 풀어놓는다. 그의 작품 중 가장 매력적인 것은 <시오리와 시미코> 시리즈다. 소녀잡지에 기재된 만화임에도 정말이지 못 그린 그림으로 유명한데, 공포물이라는 딱지만 붙었지 실은 지독하게 웃기다.

<이계록>

“우리 동네에서 토막난 시체가 발견됐습니다. 공원 화장실 옆 쓰레기장에 팔다리 일부가 담긴 쓰레기 봉투가 버려져 있었던 것입니다.” 시리즈의 한편인 <살아 있는 목>은 이렇게 시작된다. 주인공 시오리는 의논할 일이 있다면서 친구 시미코를 집으로 부른다. 그리고 아이스박스에 담긴 목을 보여준다. 시미코: (덤덤하게) “뭐야 이게?” 시오리: (덤덤하게) “머리야. 지금 경찰이 찾고 있는 토막살인 사건의.” 시미코: (역시 덤덤하게) “왜 이게 여기 있어?” 시오리: (드디어 난처한 표정으로) “반투명 쓰레기봉투에 들어 있더라고. 이거 굉장한 걸 발견했구나 싶어서 나도 모르게 가지고 와버렸어.”

이런 식이다. 나사 몇개 빠졌다는 소리를 듣는 시오리와 헌책방 딸이자 책 마니아인 시미코는 늘 난처한 표정을 지으며 마을의 괴상한 일에 휘말려다닌다. 아, 그래서 머리를 어떻게 했냐고? 시미코가 헌책방에서 <살아 있는 목의 사육법>이라는 책을 갖다준다. 큰 수조를 준비해서 목을 넣고 물고기 밥을 주라는 내용이다. 두 소녀는 머리에 류노스케라는 이름까지 붙여주고 기르지만 아무래도 음침하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책에는 뭐라고 되어 있니?” “‘질리거나 기를 수 없게 됐을 때는 강이나 바다로 돌려보내줍니다’라고.” 그 다음은 “안녕, 류노스케, 건강해∼”다. 목이 개천을 떠내려가며 자신들에게 인사를 했다는 것이 시오리의 주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