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리포트]
[현지보고] 마이클 만의 신작 <마이애미 바이스> 시사회
2006-07-26
글 : 황수진 (LA 통신원)
마이애미의 뜨거운 마약거래 현장

80년대를 떠올릴 때 빠질 수 없는 것은 <A특공대> <전격 Z작전> <맥가이버> 등 공중파에서 끊임없이 틀어주던 외화 시리즈에 대한 향수어린 기억이다. <마이애미 바이스>는 국내에서 방영된 적 있는, 미국에서 1984년부터 5시즌에 걸쳐 <NBC>에서 방영된 마이애미의 2명의 잠복근무형사의 얘기를 다룬 TV시리즈로 원색의 재킷을 쫙 빼입고 마이애미의 거리를 활보하는 소니 크로켓(돈 존슨)과 팝음악을 흥얼거리며 비키니 차림의 늘씬한 아가씨들을 곁눈질하고 다니는 리카도 텁스(마이클 토머스)는 당대의 아이콘으로 폭발적인 인기를 모은 바 있다. 그로부터 20년이 흐른 지금, LA의 거리는 차갑고 푸른 <마이애미 바이스> 포스터가 블록마다 장식하고 있고, 웹에서는 전설적인 돈 존슨의 소니 크로켓과 마이클 토머스의 리카도 텁스를 2006년에 콜린 파렐과 제이미 폭스가 어떻게 재현해낼 수 있을까라는 우려와 기대가 관련 게시판을 뜨겁게 달구고 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이 작품의 개봉일을 기다리게 되는 것은 입체적이고 다면적인 캐릭터 구성과 도시의 차가운 리얼리티를 그간의 작품들을 통해 누구보다도 효과적으로 그려내온 마이클 만 감독에 대한 신뢰 때문일 것이다. TV시리즈의 제작자였던 그는 2006년 <마이애미 바이스>의 각본에서부터 감독, 프로듀싱까지 맡았다.

7월15일 LA 아르크라이트 극장의 기자 시사회를 통해 모습을 드러낸 <마이애미 바이스>는 80년대 TV 시리즈와 별도로 그 자체로 완결성을 가지고 있다. 마이애미에서 마약범죄 관련 잠복근무를 하고 있는 두 형사 소니 크로켓(콜린 파렐)과 리카도 텁스(제이미 폭스)의 이야기라는 큰 틀을 가져왔다는 것뿐이지 그 안의 요소들은 2006년으로 세심하게 채워져 있다. R등급을 표방한 영화답게 TV시리즈에서는 보여줄 수 없었던 리얼리티를 보여주고 싶었다는 감독의 의도는 상당한 수위의 폭력과 섹스 장면들을 통해 잘 드러나는데 건조하고 잔인하면서도 그의 전작인 <콜래트럴>에서 엿볼 수 있었던 시적인 매력은 여전히 이 작품에서도 진가를 발휘하고 있다.

영화는 린킨 파크의 <Numb/Encore>로 가득 찬 마이애미의 한 나이트클럽에서부터 그 막을 연다. 느껴지는 것은 정신을 혼미하게 하는 열기다. 무언가가 정신없이 일어나는 마이애미를 배경으로 영화는 시작부터 긴장을 늦출 수 없이 빠르게 돌아간다. 20년 전에는 내부배신자로 정보가 새어나갔다면, 이제 상대편은 해킹 프로그램을 통해 정보를 빼내가고 있다. 마약거래에 대비해 잠복근무하고 있던 두 연방수사관이 정체가 탄로나 무참히 살해되고, 정보원인 동료의 가족 역시 살해되자, 소니 크로켓과 리카도 텁스는 범죄조직의 소탕을 위해 브라질, 콜롬비아, 마이애미를 오고 가는 새로운 마약상으로서 위험천만의 세계에 잠입하게 된다. 그 과정에서 소니 크로켓은 마약조직에서 돈세탁을 맡고 있는 여인, 이사벨라(공리)를 만나게 된다. 그리고 그는 마약조직의 보스 몬타야(루이스 토사) 곁에서 무심한 듯 그를 바라보고 있는 이 여인에게 마음을 빼앗겨버린다.

이쯤 되면 <마이애미 바이스>는 80년대 TV시리즈보다는 영화 <카사블랑카>와 더 닮아 있다. <게이샤의 추억>으로 할리우드 신고식을 치른 공리는 빛에 따라 그 표면이 다양하게 반사되는 다이아몬드를 닮았으면서도, 상처받기 쉬운 연약함 역시 간직한 이사벨라의 그 속을 알 수 없으면서도 적극적이고 자유로운 팜므 파탈을 연기하고 있다. 조직에서 돈세탁을 맡고 있는 그녀는 자신을 보스의 연인이 아닌 비즈니스 우먼으로 정의하고 실제 그녀는 하바나에 미국인 연인을 자유롭게 데리고 올 수 있을 만큼의 권력을 가지고 있다. 그녀가 왜 소니 크로켓에게 빠졌는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그 둘이 위험한 사랑에 빠진 것은 분명하다. 미래를 기약할 수 없기에 그들이 공유하는 순간은 그들이 추는 춤만큼이나 강렬하다. 그리고 그런 두 사람을 각자의 자리에서 유심히 지켜보고 있는 다른 눈동자들의 움직임. 이번 작품에서 악역을 맡은 최고 보스 몬토야와 중간 보스 호세(존 오티즈)의 열연은 차갑고 위험한 세계를 관객에게 확실하게 체감하게 해주는 데 부족함이 없다. 촬영 전 각 캐릭터에 대해 배우들에게 엄청난 양의 정보를 제공해준다는 마이클 만의 꼼꼼한 연출 스타일과 실제 마이애미의 잠복근무 형사들과 함께 한 몇달간의 위험천만한 실습(?)이 효과를 발휘했는지 배우들의 나무랄 데 없이 진실한 연기는 <마이애미 바이스>의 리얼리티를 극대화하고 있다.

<마이애미 바이스> 리얼리티와 관련해 빠뜨릴 수 없는 것은 빼어난 영상 스타일로, 전작 <콜래트럴>을 통해 재미를 보았던 HD카메라의 사용은 이번에도 빛을 발하고 있다. 장면에 따라 각기 다른 종류의 카메라를 선택함으로써 장면마다 색다른 도시의 질감을 느끼게 해준다. 마이애미라는 도시의 분위기를 담고 있는 밤 하늘, 그 아래 물의 표면 위에서 멀리 흔들리는 빛의 포착, 캐릭터의 얼굴 위로 떨어지는 빛 등은 고독한 감수성을 불러일으킨다.

<마이애미 바이스>는 2시간을 훌쩍 넘는 러닝타임 내내 엄청난 양으로 쏟아지는 정보로 영화 초반에는 혼미해질 정도이다. 팝콘을 먹으며 액션을 즐기기만 하면 되는 전형적인 블록버스터가 아니기에 2시간26분이라는 러닝타임이 부담스럽다는 반응도 있을 것 같다. 하지만, 영화 엔딩 크레딧이 끝나고 집으로 돌아와 자리에 눕기 시작하면 장면 하나하나가 조용히 떠오른다. 도시의 밤, 자동차 밑에 숨어드는 개의 그림자, 화창한 남미의 아침 햇살 아래 열어놓은 문 사이로 지나가는 오래된 자동차 등의 정교하게 구성된 이미지들은 마이클 만식의 톤과 스타일을 여전히 세련되게 보여준다. 그러고보면 그가 그려낸 마이애미는 <콜래트럴>의 LA와 비슷한 것 같다.

“TV 시리즈의 정수(精髓)만을 골라 만들었다”

마이클 만 감독과 출연배우 기자회견

시사회 다음날 유니버설스튜디오에서 열린 해외 기자단의 기자 회견장에는 마이클 만 감독, 제이미 폭스, 콜린 파렐, 공리, 나오미 해리스(트러디 조플린 역)가 참가했다. 40여분 정도로 다소 짧게 진행된 기자 회견에서는 감독인 마이클 만과 마약복용에 대한 고백으로 한때 끊임없이 잡지 한면을 장식하곤 했던 콜린 파렐에게 주로 질문이 쏟아졌는데, 특히 콜린 파렐에게는 마약과 관련한 사적인 질문들이 인터뷰 내내 끊이지 않았다. 여기서는 <마이애미 바이스>와 관련한 마이클 만 감독과의 인터뷰를 간략하게 소개한다.

-80년대 TV시리즈를 20년이 지난 지금 다시 영화로 만들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
마이클 만=처음 앤토니 예코비치의 <마이애미 바이스> 파일럿 시나리오를 본 순간, 이건 장편영화 시나리오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미 <NBC>와 TV시리즈 계약으로 묶인 상황이어서 TV시리즈로 만들 수밖에 없었다. 폭력과 선정성의 수위를 늘 조절해야 하고, ‘해피엔딩’이어야 하는 TV시리즈의 제약에 늘 아쉬워서 언젠가는 영화로 만들겠다고 늘 마음에 담아두고 있었다. 그런데 무하마드 알리 기념일 파티에서 <알리>로 함께 작업했던 제이미 폭스가 농담 비슷하게 <마이애미 바이스>를 진짜로 만들어보는 것이 어떻겠냐고 하기에 그때부터 진지하게 생각해보기 시작했다.
제이미 폭스=그래서 이후 기자 회견장에서도 차기작 이야기가 나오면 나는 옆에서 TV시리즈 주제가를 흥얼대기도 했다. 정말 멋지지 않나. 멋진 차, 트렌디한 바, 멋진 캐릭터 등 쿨한 요소들이 다 모여 있다. 이미 TV시리즈의 성공으로 검증받은 상품성에, 마이클 만 감독이라는 보장받은 연출력, 그리고 그 위에 2000년대의 다양한 문화가 입혀진다면 대단한 무엇인가가 나올 것이라고 확신했다.

-수십편에 이르는 분량의 TV시리즈를 2시간 분량의 극장용으로 만드는 과정이 쉽지는 않았을 것 같은데 어땠나.
마이클 만=이 작품은 TV시리즈의 속편도 리메이크도 아니기 때문에 수십편에 이르는 이야기를 요약할 필요는 없었다. 마이애미라는 도시의 매력과 마약상으로 분해 위험한 경계선상에서 스스로도 혼란을 겪는 잠복근무 형사들이라는 시리즈의 정수(精髓)만으로 만든 전혀 다른 이야기이다.

-전작인 <콜래트럴>에서 LA가, 이번에는 마이애미가 또 하나의 캐릭터로 다루어지고 있는데, 마이애미에 대한 인상을 이야기해달라.
마이클 만=촬영 중에 허리케인을 겪었기 때문에 특히 드라마틱하게 시시각각 변하는 날씨가 일단 먼저 떠오른다. (웃음) 마이애미는 강렬한 색채, 아름다운 건축물, 그리고 그 밑으로 겹겹이 쌓여 있는 위험 등이 공존하는, 어느 곳에도 속하지 않는 중간계 같은 묘한 곳이다. 70년대의 라스베이거스와 비슷한 것 같다.

-<마이애미 바이스>는 무척 어둡게 다루어지고 있다. 이유는.
마이클 만=<마이애미 바이스>는 범죄조직에 깊이 침투해서는 아슬아슬하게 위험에 노출되면서, 스스로도 정체성 혼란에 빠지게 되는 잠복근무 형사들에 대한 이야기이다. 그들은 이 마이애미의 거리에서 스스로 위험한 역을 하는 배우들인 셈이다. 사람은 극도의 위험을 겪음으로써 내면에 깊이 깔려 있는 진정한 실체와 만나게 되는데 그 부분이 무척 매력적이다. 위험이 크면 클수록, 대립이 크면 클수록, 어두우면 어두울수록 내가 나타내고자 하는 테마가 더 분명하게 드러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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