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1]
스페인 마지막 사형수의 인간적 비극, <살바도르>
2006-12-21
글 : 김현정 (객원기자)

1974년에 처형당한 살바도르 푸이그 안티흐는 스페인에서 교수형에 처해진 마지막 죄수였다. 스물여섯살까지밖에 살지 못했던 앳되고 검은 눈동자의 청년 살바도르는 독재자 프랑코가 사망하고 스페인의 민주화가 시작되면서 몇편의 전기와 다큐멘터리로 추모를 받았고, 역사 속에서 복원되었다. 그러나 살바도르를 장편영화 데뷔작의 주인공으로 택한 감독 마누엘 후에르가는 그를 영웅 혹은 희생양이라는 스테레오타입 안에 가두지 않는다. 후에르가는 살바도르에 관한 다큐멘터리를 제작하기도 했던 프란체스크 에스크리바노의 2001년작 <살바로드 푸이그 안티흐의 역사>를 원작 삼아 평범하고 철없던 대학생이 반(反)프랑코 운동의 상징으로 부상하기까지의 시간을 차가운 비극으로 바라보았다.

<살바도르>는 두개의 드라마와 두개의 스타일로 나뉘는 영화다. 체포되어 감옥에 갇힌 살바도르(다니엘 브륄)가 변호사 아라우(트리스탄 우요아)에게 들려주는 사건의 전말은 70년대 미국 범죄영화처럼 경쾌하고 속도감이 있지만, 국경 밖으로까지 퍼져나간 구명운동에도 불구하고 살바도르가 사형당하기까지의 시간은 푸른 형광등 불빛처럼 얼어붙어 있다. 딸이 많은 중산층 가정의 외아들로 태어난 살바도르는 프랑코 정권에 저항하는 친구들과 어울리며 학생운동을 하고 있다. 자금을 모으기 위해 장난처럼 은행강도가 되어본 살바도르 패거리는 뜻밖에도 쉬운 성공을 거두자 점점 대담해지기 시작하고, 갱단이나 다름없는 무기도 구입한다. 그러나 단서를 잡은 경찰이 살바도르와 친구들의 아파트를 습격하면서 그들의 로빈 후드 놀이는 끝장나고 만다. 좁은 아파트와 복도에서 벌어지는 총격전 와중에 형사 한명이 총에 맞아 사망하고, 그 자리에서 체포된 살바도르는 범인으로 지목당한다.

아라우는 형사를 살해한 총알이 과연 누구의 것인지 밝혀내 살바도르를 살리고자 하지만 점차 그 사건이 진실과는 관계없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그것은 살바도르도 마찬가지다. 착하지만 오만했던 살바도르는 자신이 운명을 지배할 수 없다는 사실을 절감하며 감옥 바깥, 비정한 세계를 향해 촉각을 곤두세운다. 그러나 과격한 좌파그룹이 정치가 카레로 블랑코를 암살하던 날, 살바도르는 그 폭탄이 자신의 생명 또한 앗아가리라는 사실을 직감한다.

이처럼 개인의 인권과 정치적인 상황이 맞물리는 첨예한 소재를 택했지만 <살바도르>는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모르는 채 아들과 남동생과 오빠를 빼앗긴 여인들의 슬픔 또한 침착하게 어루만진다. 후에르가는 살바도르의 어머니와 누이들이 그를 찾아와 흐느끼는 면회 시간과 형이 집행되기를 기다리는 기나긴 하룻밤에 많은 부분을 할애한다. 살바라는 애칭으로 불렸던 착하고 죄없는 청년. 어떻게 해서든 그 아이를 살리고자 모든 것을 던질 수도 있었던 여인들은 살바도르의 곁을 떠나 눈물을 흘리면서도 그에게 돌아가서는 애써 웃곤 한다. 감옥에 갇혀 한살씩 나이를 먹어가는 살바도르도 그 슬픔과 상실감을 짐작한다. 나이 어린 막내 여동생이 오빠가 죽는 자리에 오지 못하도록 막아달라고 청하는 살바도르는 더이상 치기어린 소년이 아니지만, 그처럼 성숙해진 삶을 살아보지도 못한 채 목이 매달려 죽어야만 한다. 처음엔 카탈로니아어가 아닌 스페인어로 이야기를 나누라며 살바도르 가족을 윽박질렀지만 차츰 그의 죽음에 의문을 가지게 되는 교도관 헤수스, 무력감과 용기를 오가는 아라우, 좌파인 아들과 대화를 끊었지만 홀로 아들을 걱정하는 아버지도 <살바도르>를 정치가 아닌 인간의 영화로 만들어주는 이들. 그 많은 이들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살바도르의 장례식이 치러지던 날, 관 위에 놓이는 장미꽃들은, 행복할 수도 있었을 어린 청년의 죽음을 오래도록 기억하게 만든다. 2006년 칸영화제 주목할 만한 시선에 초청된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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